**10월부터 경산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인 지역 스토리텔링 부분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총 11분을 인터뷰해서 글로 옮기는 작업인데 내가 쓴 글이라 기록으로 남겨둔다.
역전마을에서 보낸 반편생, 박00 씨
코발트광산의 기억
경산역에서 남쪽 방향으로 철로를 따라 걸으면 철로와 인접한 곳에 옛모습 그대로의 단층집이 몇 채 보인다. 그중 한 집에 박00 씨가 살고 계신다. 박00 씨는 경주 보문단지 인근이 고향이었는데 스물 네 살 때 역전마을로 시집 왔다. 시어머니로부터 듣기를, 시집온 집이 예전에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밥해주던 집이라 한다. 광산이 폐업하면서 밥집이 매물로 나왔는데 꽤 큰 집이어서 집을 분할해서 팔았고, 시어머니는 가진 돈만큼만 집을 사셨다 한다. 사신 집이 코발트광산 밥집의 부엌 자리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경산 코발트 광산이 개발되면서 경산역 주변으로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지만 그때 흔적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박태순 씨의 집은 그 당시 기억과 더불어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역전마을에서 살아온 박00 씨의 삶의 자취가 구석구석마다 스민 정감 있는 집이다. 철로가 보이는 집의 뒷마당은 박태순 씨만의 공간이다. 빈터를 예쁘게 채운 아기자기한 화분들과 빨랫줄에 반듯하게 걸린 옷들이 집 주인의 온기를 느끼게 한다. 원래 집을 새로 지으려 하다가 집 뒤로 도로가 난다 하여 기다렸는데, 도로가 다른 방향으로 나면서 그냥 계속 살게 되셨다 한다. 이 집에서 1남2녀 자녀를 다 출가시키고 지금은 부부가 살고 계신다.
70년대 역전마을
박00 씨가 경산역을 처음 봤을 때는 역에 담장이 없었다. 역 뒷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철로 위를 그냥 건너다녔단다. 그게 위험하다 판단했는지 1979년, 박00 씨의 아들이 태어난 해에 경산역에 육교가 새로 생겼다. 역전마을 앞으로 흐르는 개울도 있었는데 박태순 씨 자녀분들이 어릴 때 한 번씩은 빠졌던 그 개울은 콘크리트로 덮어서 복개천이 되었다.
당시 역전마을 부근에는 연탄공장이 있어서 하숙도 많고 셋집도 많았다. 박00 씨가 시집오고 나서 그리 오래지 않아 연탄공장은 없어졌다. 하지만 경산역 주변에 경산중학교와 경산여고가 있고 남천면 등에서 열차 타고 통학하는 아이들도 많아서 박00 씨는 동네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십 년 정도 하셨단다. 장사는 쏠쏠하셨다 한다.
박00 씨 기억에 70년대 후반 정도까지 경산역에는 군인 집결지가 있었다. 군인들이 머리 깎고 집결했다가 각지로 이동하는 곳으로 울고불고 하는 가족들을 비롯하여 도장 파는 사람, 군번 목걸이 파는 사람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역 앞에 모여들었다 한다. 박00 씨는 아기를 들쳐업고 그 광경을 몇 번 구경한 적이 있다.
역전마을은 작은 동네라 그 시절 이후 지금까지 큰 변화는 없었다고 박00 씨는 느낀다. 도로가 나고 빌라, 원룸 등이 새로 생긴 것 정도인데, 제일 눈에 띄는 변화는 40년 가까이 버틴 경산역 육교가 2년쯤 전에 철거된 것이다. 육교를 뜯어낼 때 박태순 씨는 잠을 한숨도 못 주무셨다. 공사는 항상 밤에 이루어졌는데 그 큰 쇳덩어리를 베어내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육교가 사라지면서 경산역이 좀 넓어졌다 한다.
옛날이 인심이 영 낫지
박00 씨에게 역전마을의 추억을 여쭤보니 대번 화전을 떠올리신다. 동네 사람들이 어울려 일 년에 한 번은 화전 만들러 갔다 하신다. 주로 5월 모심기 후 어중간한 시기에 리어카에 그릇을 싣고 다같이 산에 가셨는데 정말 재미난 추억이었단다. 그뿐이 아니다. 2월엔 쑥떡 갈라 먹고 복날엔 다같이 국수를 말아 먹었다. 집집마다 다니며 ‘쌀 한 그릇 주세요’ 해서 밥하고 떡하고 고기도 사고 꽹과리 치는 농악대 불러 일 년에 한 번은 잔치를 벌이기도 했단다.
지금은 옛날 풍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박00씨는 요새는 윷놀이도 잘 안 한다며 아마 1985년 정도까지 그런 전통 풍습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고 하신다. 그때가 살기는 어려워도 인심은 영 좋았다고 기억하신다. 가진 게 없어도 뭐든 베풀고 나눠먹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잘사는데 인심도 박하고 갈수록 재미가 없단다. 너무 내 것만 찾는 세상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옛날이 영 좋았다고, 그때가 그립다 하신다.
인터뷰를 하는데 방바닥이 점점 뜨끈해져왔다. 아직은 가을 햇살 따스한 오후인데, 손님이 온다고 미리 보일러를 켜놓으셨다. 연탄재 버리기가 힘들어 1989년에 남편 분께서 대구에서 보일러를 사서 직접 공사한 그 방이다. 박00 씨는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로 생활하는 남편 분을 25년째 돌봐오셨다. 이제 자녀들도 다 키웠고 두 분이 오래 함께 지내는 것 말고는 다른 아무 바람이 없으시단다.
역전마을에는 어렵던 시절을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로 기억하는 소박한 분들이 살고 계신다. 박00 씨의 집을 나서면서 집앞 오래된 골목길이 그분 미소만큼이나 푸근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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