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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역전마을 인터뷰 3 - 대를 이은 자전거가게

by 릴라~ 2020. 11. 30.

**10월부터 경산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인 지역 스토리텔링 부분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총 11분을 인터뷰해서 글로 옮기는 작업인데 내가 쓴 글이라 기록으로 남겨둔다. 


대를 이은 자전거가게, 박00씨

 

초등학생 때부터 배운 일

 

경산역 앞 역전네거리에서 경산교 방향으로 몇 걸음 걸아가면 바로 보이는 가게, ‘삼천리자전거’. 박00 씨가 약 30년째 운영하는 가게다. 안으로 들어서니 100평 정도 되는 매장에 다양한 종류의 자전거가 한가득이다. 한 칸은 성인용, 한 칸은 어린이용 자전거가 전시되어 있고 자전거 부품과 수리 용품이 있는 공간이 따로 있다. 박영석 씨는 이곳 역전마을 토박이로 대를 이어 자전거가게를 운영해오셨다.

 

지금 가게가 있는 자리는 경산에서 자전거 가게를 시작한 박00 씨의 아버지가 세 번째로 자리를 옮긴 곳이다. 박00 씨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 아버지가 빚을 내어 장만한 곳이라 한다. 어린 시절은 늘 이 빚을 갚느라고 후달렸던 기억이 많다고 한다. 삼시세끼 말고는 여유가 조금도 없으셨단다. 박00 씨는 초등학생일 때부터 아버지 가게 일을 도왔다. 그때 배운 일이 평생의 업이 되었다. 박00 씨의 동생도 경산 다른 곳에서 자전거가게를 하신다.

 

역전마을의 추억

 

박00 씨는 영천에서 태어나자마자 경산으로 왔다. 경산역 부근에서 오래 살다보니 기차와 관련된 추억이 많다. 어릴 때 증기기관차를 본 기억도 있다. 디젤기관차가 1970년대 나왔으니 6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박00 씨는 관광용이 아닌 증기기관차를 본 마지막 세대다. 가족끼리 기차를 타고 해운대 해수욕장에 놀러간 일은 지금도 생생하다. 통일호였는지 비둘기호였는지 역마다 다 서는 아주 느린 기차였는데 당시엔 기차에서 음식을 파는 분들이 많아서 가족끼리 각종 간식을 사서 즐겁게 나눠먹었다. 친구 어머니가 기차에서 구운 계란을 팔았는데 박00 씨는 어린 시절에 그게 그렇게 부러웠단다. 계란과 사이다는 그 당시 최고의 간식이었다. 기차에서 검표를 하지 않고 손에 도장을 찍어서 어디까지 가는지 확인했던 기억도 있다.

 

그 시절 경산역 주변에는 사과밭, 포도밭, 자두밭이 많았다. 현재 의료보험공단 뒤로도 사과밭이 펼쳐져 있었다. 고등학생일 때 친구 여럿이 모여 사과밭에서 서리를 한 것도 박00 씨에게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가을 햇사과처럼 달콤한,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청춘의 한 장면이다. 그때에도 말썽 핀 녀석들은 있었다. 학교에 내야 할 공납금을 집에서 받아와서 그날 노름으로 다 날려버린 고등학생도 있었다 한다. 박00 씨는 십 원 정도라면 몰라도 자신은 공납금은 안 건드렸다며 웃으신다.

 

자전거 판매왕

 

옛날에는 자전거가 꽤 귀한 물건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이 자전거 좀 태워달라고 조르면서 박00 씨를 부러워한 적도 있다. 30년 정도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며 박00 씨도 세월의 변화를 느낀다. 옛날에는 자전거가 출퇴근용이었는데 지금은 레저용으로 바뀌었다. 박00 씨는 레저용 자전거가 대중화되기 전에 아주 일찍 접해 보셨다. 80년대에 150만 원을 주고 산 블랙캣의 MTB자전거다. 그걸 타고 성암산을 올라보셨다 한다.

 

1998년은 박00 씨에게 특별한 해다. 자전거 판매 전국 일등으로 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전 해의 실적으로 받는 상인데 1997년 겨울에 IMF가 터지기 전까지 약 이천 대를 판매하셨다 한다. 전국 일등이 어디 쉬운가. 지역에서 신뢰를 쌓은 가게여서 가능했을 것이다. 박00 씨가 지금까지 자전거 판매를 돌아보니 교복자율화가 되면서 수요가 많이 늘었고, 최근 몇 년간 계속 시원찮다가 올해 재난지원금이 나오면서 자전거 판매가 좀 늘었다 하신다.

 

인터뷰 중에도 초등학생과 어른이 번갈아 자전거를 고치러 왔다. 박00 씨가 장비를 들고 나가시더니 능숙하게 자전거를 만진다. 작은 결함이었는지 수리는 금세 끝나고 아이는 자전거를 씽씽 달리며 길 저편으로 사라졌다. 돌아와 자리에 앉으시는 박00 씨의 손에 유독 눈길이 갔다. 검은 기름때가 마치 지문처럼 손에 새겨져 있다. 30년 넘게 자전거를 만진 손이다. 이 손으로 셀 수 없는 자전거를 고치며 묵묵히 한길을 걸어오셨다. 기름때 묻은 투박한 두 손이 그 어떤 말보다도 더 힘있게 박00 씨의 성실했던 그간의 삶을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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