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이 좀 있는 교사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학생들의 감정 조절 능력, 대인 관계 능력,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초임 교사 때만 해도 학교 생활에서 '사회성'을 강조한 적이 별로 없었다. 독립성, 주체성 등이 중요했지. 그런데 요새는 교사들끼리 만나기만 하면 '사회성' 타령이다. 아이들의 전반적인 '사회성'이 떨어져서 학급에서 일 년 내내 크고 작은 문제들과 씨름하기 때문이다.
이 책 제목 '공감의 뿌리'는 저자가 캐나다에서 진행한 교육프로그램 이름이다. 생후 몇 달쯤 된 아기와 엄마를 한 달에 한 번 유치원이나 학교에 초대해서 일 년 동안 아기의 성장 과정을 함께 지켜보는 프로그램이다. 아기들이 상황에 반응하고 행동하고 움직이고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도 서로의 존재에 열린 마음을 갖고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능력을 키워간다. 한 인간의 성장에 대한, '사람'이라는 미완성의 따끈따끈한 존재에 대한 감수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어린 나이에도 타인을 보살피는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도 자신보다 더 어린 아이를 보살피는 경험을 통해서 배려심과 인간미를 배우게 된다. 형제자매가 많았던 시절에 저절로 배우게 되는 것들을 요새는 배울 수 없는 환경이다. 학급에서는 같은 나이의 학생들이 모여 있고 일찍부터 누구는 잘하고 누구는 못하는 경쟁 체제에 놓여 있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타인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래서 "'공감의 뿌리' 교실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어린 교사가 순수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면서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관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생후 일 년에서 이 년 안에 형성되는, 아기의 부모에 대한 유대감과 애착이 생애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여러 사례들과 함께 읽을 수 있다. 그 애착과 유대감이 '공감'의 뿌리이자 '자존감'의 뿌리이다. 그래서 가정은 어머어마하게 중요하며 공교육 또한 '공감'과 '자존감'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공감과 자존감은 '건강한 시민', 저자의 표현을 빌면 "공적으로 쓸모 있고 사적으로 충만한" 사람의 기본 조건이다. 여러 면에서 교육적 화두를 던져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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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 교육에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교육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기초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부모 교육 프로그램과 정규 수업 등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여 자기 나름의 의견을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자기 의견을 갖는 것은 자신감이나 자존감과 직결되고, 민주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들이 정말로 어떤 방식으로 배워나가는지 보여주는 증거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설교하고 야단치는 것보다는 머리와 가슴을 사용하는 의미 있는 경험을 통해서 배운다는 것이다.
'공감의 뿌리'는 수학이나 읽기와 달리 측정될 수 없는 학습의 감성적 측면을 다룬다. 교육의 목표는 산업역군을 길러내는 것보다 훨씬 원대하다. 교육에는 건강한 시민을 길러낼 책임이 있다. 단순히 직업에 필요한 기술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적응력과 감성 능력을 길러주며 공적으로 쓸모 있고 사적으로 충만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진정한 목표이다. 직업 기술은 있으나 사회적, 정서적 기술이 없는 학생은 직업을 갖더라도 이를 유지하거나 승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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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뿌리'에서는 아기가 교사 노릇을 한다. 아기는 경계나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직관에 따라 골고루 사랑을 나눠준다. 아기는 세상이 정해둔 차이를 모른다. 아이들이 어른의 세계에서 자라면서 겉에 드러난 차이만으로 누가 누구보다 잘났다는 편견을 갖는 순간 인종주의와 계급주의를 비롯한 온갖 '주의'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 (...)
아동기의 모든 능력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감성 능력이다. 감성은 우리를 인간으로 묶어주는 요소이다. 감성은 보편적이다. 서로에게서 인간애를 발견하는 능력은 관계 맺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아동 학대와 방치는 자식 세대로 대물림되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감성은 이러한 악순환을 끊음으로써 한 가정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감성은 정책에도 영향을 미쳐 사회를 갈등상태에 놓이게 하거나 타협으로 이끌 수도 있다. 더불어 감성은 세계시민이라는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감성 능력을 가르쳐주고 남의 입장에 서보는 능력을 길러주면 아이는 공격적이고 남을 괴롭히는 대신 협력할 줄 아는 문화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p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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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안에 시민의식의 씨앗을 심으려는 이유는 지역 사회 전체의 시민 의식을 높여서 무관심과 냉담이 다음 세대로 전해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지금은 비록 학생이지만 나중에는 부모가 되고 정책 입안자가 되고 유권자가 된다. '공감의 뿌리'는 바람직한 시민 의식을 기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다. 농부가 직접 곡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곡식이 잘 자라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유롭게 소통하며 감성을 이해하는 '공감의 뿌리' 교실에서 아이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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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완벽한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완벽한 세상은커녕 오히려 아이들을 둘러싼 냉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특히 서너 살 된 어린아이들이 첫날 교실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내 생각은 크게 달라졌다. 교실에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어떤 아이는 승자가 되고 어떤 아이는 패자가 될지 판가름이 났다. 첫발을 어떻게 떼느냐에 따라서 경쟁력에 차이가 생기고, 유치원을 마치고 학교로 올라가면서 마주할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능력이 달라졌다.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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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을 변화시키려면 그 출발은 가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유치원도 너무 늦다.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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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양육 프로그램의 과학적 진실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뇌를 키운다!"이다. 뇌 발달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세 가지 요건은 풍부한 영양, 애정어린 보살핌, 건강한 자극이다. 신생아의 뇌에는 수십억 개의 뉴런이 들어있지만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경로는 아직 발달하지 않았다. 생후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의 경험이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고 앞으로 학습에 필요한 기반을 다진다. 건강하고 사랑이 넘치는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아기의 욕구를 채워주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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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관련된 어휘만 배운다고 해서 저절로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 어른들이 감정을 잘 받아들이고 존중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아이의 감정을 존중해주면 아이는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가령 갓난아이가 무서워할 때 꼭 안아주고 달래주면 아이는 자기도 무서워하면 누군가 알아채서 반응해줄 거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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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뿌리'에서는 아이들이 아기의 생후 1년 동안 신체, 인지, 사회, 감성 면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자기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사회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인간 관계의 여섯 가지 요소(신경과학, 기질, 애착, 감성 능력, 진정한 소통, 사회적 포용)를 연결한다. 하지만 '공감의 뿌리'에서 이해는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는 먼저 아이들과 함께 이해의 과정을 거친 뒤, 이해한 내용을 더 발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만들어나가도록 한다.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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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읽고 쓰는 능력을 가르치는 일은 학교의 주된 관심사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 못지않게 감성 능력도 중요하다. 솔직히 나는 감성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빋는다. '공감의 뿌리' 시간에는 감정을 알아채고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설명이나 그림, 이야기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통제력과 자신감을 심어준다.
'공감의 뿌리' 교실에서 아이들은 아기가 어떻게 감정을 드러내며 그 감정들이 무엇인지 관찰한다. 나아가 스스로 감정을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감정에 관한 어휘들로 감정적인 경험을 표현하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사건을 어떻게 느끼는지 전달한다. 아이들은 감정을 이야기하면서 감정을 말로 소통하는 능력이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자신감을 굳히는 데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운다.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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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소통의 시대에 살고 있다. 기자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폭격의 참상을 위성 중계로 생생하게 보도하고, 비즈니스 관계자들은 인터넷 화상 회의로 몇 개의 시간대가 다른 지역의 사람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혼자라고 느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과 공동체 사회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고,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소통의 길을 잃어버린' 세상에 살고 있다. 인간이 인가다워지려면 생각과 감정의 미묘한 의미를 말로 전달하여 서로의 머리와 가슴을 연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공감의 뿌리'는 진실한 소통을 중심에 둔다.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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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콘힌 대학의 세스 폴락의 연구에 따르면 미취학 아동 대다수가 성인의 얼굴 사진을 보고 행복, 슬픔, 분노를 비롯한 다양한 감정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학대받은 아동은 중립적이거나 평온한 표정까지 위협적인 표정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세스 폴락은 이렇게 설명했다. "신채적으로 학대당한 아이는 어른이 언제 화를 내는지 알아내는 쪽으로 적응하기 때문에 분노와 관련된 영역이 넓어진다." 이 말은 아이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아이가 커서 성인이 된 이후에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학대가 사라지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못 해석하고, 있지도 않은 위협이나 위험을 지각하고, 자기를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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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제일 먼저 성취해야 하는 발달 과업은 애착을 형성하는 일이다. 애착의 질은 아기의 학습 능력과 이후에 맺는 모든 인간 관계의 기초가 된다.
애착은 아이와 부모 사이에 지속적으로 연결된 감정의 유대로서, 아기가 태어나서 1년 동안에 맺는 유대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애착은 아기와 부모가 오랫동안 소통하고 서로 반응하면서 형성해 가는데, 생후 2년 동안 이러한 애착 관계가 강화되면서 아기는 안전하고 편안하게 보호받는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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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하게 살피면서 그때그때 반응을 보여주는 부모는 아기에게 편안하고 안전하다는 믿음을 준다. 아기는 늘 중요한 질문의 답을 찾는다. 누군가 내 욕구를 충족해줄까? 누군가 날 이해해줄까? 날 사랑해줄까? 나는 중요한 사람일까? 여기에서 자존감의 뿌리가 뻗어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늘 완벽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부모도 아기가 왜 우는지 모를 때가 있고, 아기가 배고파서 깨도 엄마가 당장 달려오지 못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전반적인 태도이다. 아기가 불편을 느낄 때 관심을 가지고 반응을 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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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뿌리'에 참여한 학생들 중에서 특히 고학년 학생들은 애착을 이해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아기 때부터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언제까지 보살핌을 받을 거라고 믿으며, 소중한 사람으로 대접받은 아기는 어른이 되어서도 역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다. 따라서 모든 학생에게 인간 발달 과정에 관해 가르치는 것이 좋다. 인간 발달 과정을 배우면서 최초의 안정된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고, 아기를 한 개인으로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원천이 가족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생애 초기에 건강하고 단단한 애착을 형성하게 만드는 방법이 가족이나 지역 사회, 나아가 세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투자이다.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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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인 자극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공감은 우리에게 도덕적 기준을 발견하도록 이끌어준다. 공감을 통해 인간됨이란 무엇이고, 타인의 기쁨이나 슬픔,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다. 감성 능력이 있으면 마음 깊은 곳의 감정과 신념을 자각하고 표현할 수 있다. '공감의 뿌리' 교실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어린 교사가 순수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면서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관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수많은 '공감의 뿌리' 교실에서 아기들은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가르쳐준다.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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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 또한 '공감의 뿌리' 프로그램의 중요한 부분이다. 문학은 한 사람이 시간과 공간의 맥락에서 세상의 한 조각을 바라본 결과물이다. 따라서 문학은 모든 아이에게 감정의 문을 열어주고 공통의 경험을 제공한다. 강사는 이야기책을 읽어주면서 다양한 주제에 대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이야기로 표현되어 있는 감정과 학생들이 실제 생활에서 느끼는 감정을 연결해준다. 이야기책은 정규 수업을 보완하고 연령대에 맞게 토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책을 선택한다. 또래 괴롭힘을 다룬 이야기책을 함께 읽으면 이야기 속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혼자서는 창피하고 두려워서 돌아보지 않았을 경험을 돌아보고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 속 인물의 이야기를 탐색하면서 감정을 확인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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