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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기록/제주, 한라산

겨울 한라산, 어리목~영실 코스

by 릴라~ 2022. 2. 9.

눈이 너무 보고 싶었다. 전국에 흔한 그 눈이 올겨울 대구엔 한 번도 안 왔다. 눈을 못 보고 봄을 맞으려니 겨울을 그냥 잃어버린 듯한, 시간이 증발된 듯한 느낌이었다. 오미크론 무서워 꼼짝 않고 있다가 3차 맞고 비행기를 탔다.

올겨울 딱 하루지만 눈을 실컷 봤다. 도착한 날 저녁부터 한라산에만 펑펑 내린 눈은 다음날 햇볕 좋은 날씨를 선물했고, 아침에 제설이 되어 산간도로에도 택시가 올라갔다. 백록담 정상으로 가는 코스는 2월말까지 예약 마감이라 내가 택한 길은 예약 필요 없는 어리목-영실 코스.

난 한국의 ‘큰 산’이 넘넘 좋다. 두세 시간만 오르면 도착하는 천국. 세속에서 가장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곳. 어떤 여행지도 이만큼 빨리 모드 전환을 이뤄주진 않는다. 사람의 룰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야생의 자연 그 자체가 주인공인 세상. 그 풍경 속에 초대되어 머물다오면 등뒤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던 온갖 우울이 흩어지고 마음앤 자연의 생기가 반짝반짝 한다.

한라산은 사철 좋지만 겨울도 매력덩어리다. 젊을 때 히말라야에 두 번 간 적 있다. 한겨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4천미터에서 바라본 7천미터 이상 설산들은 저 세상 풍경 같은 까마득함으로 영혼을 놀라게 하지만 어떤 생명체도 그 안에서 살 수 없다. 눈과 바위만 있는 고적한 땅이다. 마치 우주처럼.

한라산은 눈길 닿고 발길 닿는 모든 곳이 생명으로 가득차 있다. 풀과 나무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으로 온산이 조각품이고 영실 코스에서 바라보는 백록담 남벽의 자태는 언제나 웅장한 감동(물론 분화구와 호수도 좋다). 저만치 앞에서 나 잡아봐라 하는 구름, 하산길에 실컷 보는 제주 해안선과 사람 사는 마을들, 그 너머 푸르른 바다까지 모든 게 사랑스럽다. 겨울엔 바람까지 잠잠하면 완벽한데 어제가 바로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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