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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수업 이야기

읽기, 만남인가 기능인가 (2022년 1학기 커리큘럼)

by 릴라~ 2022. 2. 20.

(2학년을 지원했으나 튕겨서 또 1학년. 재작년에 만든 재구성안이 있어 조금 손 보고 그대로 가기로.)

자전거를 타는 목적은 속도감과 풍경을 즐기기 위해서예요. 자전거를 타려면 물론 자전거의 여러 기능을 다룰 줄 알아야 하지만, 그게 자전거를 타는 목적은 아니죠. 균형 잡기, 페달 밟기, 핸들 조작하기 등을 잘하려고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죠.

글을 읽는 목적은 다른 세상과의 만남이예요. 작가는 세상을 더 넓고 깊은 시선으로 표현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우리는 읽으면서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죠. 읽기는 만남이고 타자와 마주하는 인격적인 경험이지 단순한 기능이 아니에요. “예측하기, 요약하기, 비유와 상징 이해하기” 등으로 잘게 쪼개진 기능을 숙련한다고 잘 읽는 게 아니에요. 작가에게 공감하고 그가 펼치는 세상에 매혹되는 게 잘 읽은 거죠. 그의 문제의식과 그것이 내 안에 탄생시키는 새로운 질문을 따라가면서 자기 삶의 의미를 더 깊고 넓게 탐구해야 잘 읽은 거죠.

하지만 국어 교과서는 읽기를 내면의 인격성과 분리된 ‘기능’의 숙련으로 접근해요. 예컨대 독도에 관한 설명문은 학생들이 독도에 호기심을 갖고 빠져들게 하려고 읽는 건데 요약하는 것이 제일 큰 목적이 되어버리죠. 교육과정이 정한 성취기준을 우선에 놓고 그 목표 실현에 적합한 글을 선택하다보니 ‘텍스트와의 소통’이라는 읽기의 본질을 놓치기 쉬운 구조예요(도구 교과라는 관념도 지나치게 강해요).

 

그렇게 성취기준 중심으로 교과서 대단원을 짜다보니 내용 면에서 서로 관련 없는 글이 한 단원에 묶이는 수가 많아요. 예컨대 요약하기 단원에 있는 A, B, C 글은 서로 관련 없어도 돼요. 글은 요약하기를 배우는 연습용으로 존재하고 그 글의 내용과 주제에 관한 탐구는 뒷전이 되니까요. 이런 식이어서는 학생들이 글과 깊이 있게 소통하는 경험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교과서 단원을 해체하고 글의 소재/내용/주제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새로 짜요. 읽기란 작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과정이므로 글의 소재나 주제를 살리는 방식으로 대단원을 설정해요(대단원 주제는 교과서 글과 외부 글을 7:3 정도로 배치하면서 글의 핵심 메시지를 고려해 학생들이 접근하기 쉽고 교육적으로 가치 있는 주제를 찾아요).

교육과정상 가르쳐야 할 기능(성취기준)들은 텍스트와의 소통을 돕기 위한 하위 학습활동으로 다루고요. 글을 가르칠 때 어휘, 줄거리, 글의 구조 등 텍스트의 기본 요소를 점검하고 심화 단계, 질문/비판/상상으로 나아가듯이 기능(성취기준)도 그런 맥락에서 다루고요. 기능을 다루되, 글과의 소통이라는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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