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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수업 이야기

시 수업 설계하기 _ 이준관 '딱지'

by 릴라~ 2021.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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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수업은 단순하다. 화려하거나 복잡한 스킬을 구사하지 않는다. 무슨 대단한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의 결과물에 주목하지도 않는다. 화려하게 만들고 그리고 쓰고 그런 것도 없다.

내가 마음을 쓰는 것은 늘 다른 데 있다. 수업이 단지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는 과정이 아니라 글이 열어주는 세상과 만나는 경험이 되도록 구성하고자 한다. 우리는 텍스트를 통해 저자가 표현하는 세상을 만난다. 그 세상은 객관적인 세계가 아니라 저자가 자기 나름의 관점으로 파악하고 소화한 세계이다. 즉 글은 객관적 지식이 아니라 저자가 자기 식으로 소화한 인격적 지식을 담고 있다. 텍스트를 읽는 독자는 저자의 시선의 수준을 따라가면서 평소보다 좀 더 깊고 넓게 대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법을 배운다.

텍스트와의 만남과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국어수업은 두 가지 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일상에서 텍스트를 접할 때보다 텍스트를 더 '가깝게' 만나야 한다. 그 안에 무엇이 있을까, 학생들이 친밀감과 호기심을 갖고 텍스트를 바라보게 하는 것. 그래서 텍스트를 소재별로 묶어서 교육과정 재구성을 하면 좋고, 각각의 텍스트를 읽기 전에는 학생들이 지닌 '배경지식'과 '관련되는 경험'을 환기하는 과정이 요청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수업에서 도입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 맥락 없이, 교과서에 나온다고 해서 학생들이 흥미를 가질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요리로 치면 수프가 먼저 나와야지 스테이크가 맨 처음에 나오면 부담스럽다.

둘째는, 텍스트를 일상에서보다 더 '깊게' 만나게 하는 것이다. 작가가 표현하는 세상을 더 깊이 맛보고 이해하려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 활동이 '질문'과 '해석'이다. 질문하기, 해석하기, 비판하기, 평가하기, 입장 바꿔 생각하기, 상상하기 등 일련의 활동과 글쓰기가 필수이다. 손이 많이 가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보다 사고 과정, 지적 도전이 중요하다. 학생들이 진지하게 질문하고 생각하고 비판하고 상상하도록 하려면 텍스트를 자기 삶과 관련된 것으로 느껴야 한다. 그래서 도입 과정에서 텍스트와 관련된 경험을 환기하는 것이 이어지는 질문과 해석 활동에 힘을 불어넣는다.

사실 위의 모든 활동은 교사들이 모두 일상적으로 하는 활동들이다. 더 중요한 것은 활동 자체가 아니라 활동을 어떻게 '배치'하는가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많이 하는 수업활동 중 텍스트 이해에 본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들을 고르고, 그 활동들을 학생들의 사고나 경험의 단계에 걸맞게 순서대로 잘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들이 텍스트에 점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수업활동을 단계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수업 설계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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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지 / 이준관

나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칠칠지 못한 나는 걸핏하면 넘어져
무릎에 딱지를 달고 다녔다.
그 흉물 같은 딱지가 보기 싫어 손톱으로 득득 긁어
떼어 내려고 하면 아버지는 그때마다 말씀하셨다.
딱지를 떼어내지 말아라. 그래야 낫는다
아버지 말씀대로 그대로 놓아두면
까만 고약 같은 딱지가 떨어지고
딱정벌레 날개처럼 하얀 새살이 돋아나 있었다.
지금도 칠칠치 못한 나는 사람에 걸려 넘어지고
부딪히면서 마음에 딱지를 달고 다닌다.
그때마다 그 딱지에 아버지의 말씀이 얹혀진다
딱지를 떼지 말아라 딱지가 새살을 키운다.


교과서에 나오는 이준관의 시 '딱지'는 우리가 삶에서 입는 상처를 소재한 시이다. 어릴 때 넘어져서 입은 상처와 커서 입은 마음의 상처가 나란히 대비되면서 이 상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는 시다. 사춘기는 여느 때보다 더 예민하고 상처를 많이 입는 시기여서 문학적인 면 뿐 아니라 교육적인 면에서도 다룰 만한 가치가 있었다.

수업은 5단계로 나누었다. 현대 작가라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은 딱히 필요하지 않기에 가볍게 언급하고, 작품과 관련되는 학생들의 '경험'을 환기하는 데에서 수업을 시작했다.

1. 경험 읽기 : 상처에 대하여
- 나는 어떤 것에 상처를 입는가? 내게 상처를 입힌 말, 내가 상처를 받은 상황을 간단히 적어보자.
- 남 앞에 밝히기 어려운 내용도 있을 것 같아서 쪽지에 무기명으로 쓴 뒤 교사가 읽는 것으로 했다. 시험 못 치고 엄마가 나가 죽으라고 했다는 내용부터 온갖 비밀스러운 내용이 다 나와서 학생들이 집중하고 공감한 시간.

2. 느낌 읽기 : 공감 vs 질문
- 시 낭송 후에 시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짚어보는 시간. 학생의 시각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데에 도움이 된다. 항상 교사가 눈여겨보지 않은 대목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이 시의 경우는 학생들이 '까만 고약'이 뭔지 모르겠다고 했고 '딱정벌레 날개'라는 비유가 참 좋다고도 했다. 딱지를 뜯어본 경험이 있어서 '딱지를 떼지 말아라'에 공감한 학생이 많았다.

공감질문
재미있다, 의미 있다, 반갑다, 새롭다, 근사하다, 멋있다, 인상적이다, 훌륭하다, 뭉클하다, 짜릿하다, 만족스럽다, 후련하다, 통쾌하다, 감동적이다, 황홀하다낯설다, 어렵다, 난해하다, 애매하다, 모르겠다, 궁금하다,
아쉽다, 허탈하다, 불쾌하다, 혼란스럽다, 당황스럽다, 실망스럽다, 불만스럽다
  


3. 시상 전개 과정 ~ 회상적
- 시의 내용을 학생들과 함께 한 번 정리하는 과정이다. 소설이라면 줄거리 확인에 해당하는 부분. 시에 따라 정리 방법이 다 달라진다. 어떤 시는 비유가 강하고 어떤 시는 직설적이고 그렇기에. 이 시는 '회상'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는 점이 가장 뚜렷이 보였기에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중심으로 내용을 정리했다.

 내가 처한 상황아버지 말씀결과
과거의 나   
현재의 나 아버지 말씀을 기억함(상상)


4. 깊게 읽기 : 핵심 질문 ~ "마음의 딱지를 떼지 말라는 건 무슨 뜻일까?"
- 학생들이 가장 깊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핵심 질문은 정답이 없으며, 즉각적으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즉 질문과 답변 간에 긴장이 있는 질문이다. 이 핵심 질문에 대한 답은 작품의 주제와도 직결된다. 평시라면 모둠대화를 통해 대답을 찾아갔겠지만, 코로나 상황이라 각자 쓰고 발표를 했다. 상처가 아무는 데는 시간이 걸리므로 섣불리 해결하려 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이 많았고, 상처에서 빨리 벗어나려 하지 말고 상처와 함께 살아가면서 그 경험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다음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상처 받은 일을 너무 되새기며 자책하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상처가 나을 것이다, 등의 답변이 나왔다.

5. 자기표현 : 마음의 딱지가 생긴 친구에게 (시 구절을 인용하여) 응원하는 편지 쓰기
- 마무리 글쓰기. 썩 개성적인 글이 안 나와서 다음 수업 때는 마무리 글쓰기 주제를 바꾸려고 생각 중.


@ 추가 활동 - A4 한 장으로 마음 표현하기

보통은 글쓰기로 수업이 마무리되는데 이 시는 약간 '치유'적인 성격이 있어서 활동을 하나 추가했다. A4 한 장으로 마음을 표현하기로 연극 연수에서 배운 것이다. 학생들에게 A4 한 장씩 나누어주고 어떻게 변형해도 좋으니 상처 입은 마음이 치유된 모습을 형상화해보라고 했다.

아래 사진에는 없지만, 종이를 갈가리 찢어서 상처 입은 자기 마음이라 한 친구도 있었고, 종이비행기를 접은 학생이 있었다. 약간 구겨진 종이비행기였다. 여기저기 상처 입었지만 어디든 원하는 대로 날아갈 수 있다고 대답해서, 친구들로부터 '와~' 하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 활동은 '상처는 회복될 수 있다'는 관념을 눈으로 직접 보여주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A4 종이를 활용한 발표가 다 끝나고 나서는 정채봉의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를 읽으면서 마쳤다. 가끔은 수업하는 작품과 관련되는 경구나 시로 여운을 주면서 마무리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활동지 파일은 티처빌(쌤동네)에 있습니다.
https://ssam.teacherville.co.kr/ssam/contents/18484.edu

이준관 <딱지> 활동지

1, 중학교 국어수업 활동지입니다. 상처를 주제로 학생들이 차근차근 스스로 시 감상을 할 수있도록 구성한 활동지입니다. 2. 활동지 순서대로 수업하시면 됩니다. [경험 돌아보기] - [느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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