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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입학한 지 채 며칠이 되지 않은 어느 날, 벌써부터 우리 반 녀석 하나가 교무실에서 무릎꿇고 벌을 서고 있었다. 체육 선생님이 다가 와서 카드 놀이하는 것을 보고 빼앗아 왔다며 혼이 단단이 나야겠다는 말을 전했다. 아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 눈치만 힐끗힐끗 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눈에 띄는 아이였다. 서른 셋 중에서 유난히 까불고 장난을 많이 쳤을 뿐 아니라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아이였기에 내가 기억하고 있었다. 이름도 특이했다. @@이. 다른 학생 같았으면 따끔하게 야단을 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잔뜩 겁을 먹고 있는 @@이 얼굴을 보니 가슴 한켠이 아렸다. 게다가 처음이니 너그럽게 봐주자 싶었다. 일으켜세우며 집에서 하고 학교엔 가져오지 말라고 부드럽게 이른 다음 교실로 돌려보냈다. 매우 혼날 줄 알았던가 보다. @@이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신나는 표정으로 교실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 녀석 잠시 후 다시 내게 와서 카드 넣는 상자를 내밀었다. 자기는 필요없다고 그 통에 넣어서 카드를 내게 선물이라고 주는 게 아닌가. 참 순수하고 여린 녀석이다 싶었다. 자기 소개란에 적힌 내용이 나를 미소짓게 했다. 취미-곤충 잡기, 장래 희망- 곤충박사. 초등학생 같은 천진난만함이 스며 있었다. 봄 소풍을 마치고 아이들을 돌려보내면서, PC방이나 오락실로 발걸음이 이어질 아이들이 조금 염려스러워서 집에 도착하거든 선생님한테 전화하라고 당부했다. 딱 한 명이 전화를 걸어왔다. 바로 @@이였다. 보육원 아이들은 어딘가 모르게 기가 죽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학급 아이들에게 @@이는 내 아들이라고 세뇌를 시켰다. 내가 '우리 반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지'하면 아이들은 자동으로 '@@이요'라고 대답했다. 학년이 더 올라간 학생들 같으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을지 모르나 중학교 1학년은 아직 '꼬맹이'들이라 그 방법이 먹혔다. 그리고 고자질이 이어졌다. "선생님, 오늘 사회 시간에 선생님 아들이 제일 떠들었어요. 엄마를 닮아서 그래요." 수업 시간에 잘 떠들고 장난치고 산만하고 말썽 꾸러기지만 근본은 선하고 착하고 순수한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가 참 예쁘고 귀여웠다. 여름에 야영을 갔을 때다. 밤에 촛불 의식이 있었다. 조용한 가운데 멘트가 흘러나왔다.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몇 녀석이 훌쩍거렸는데, @@이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야영 소감문에서 이렇게 썼다. '엄마 생각이 나서 울었는데 이유는 말하지 않겠다'라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 그후 할머니와 같이 절에서 살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보육원으로 왔다고 한다. 도시 아이 같지 않은 @@이의 감수성은 역시 시골 생활에서 나온 것 같았다. 시골에서 자랄 때, 절에서 살 때, 아주 작은 학교를 다녔단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대구 나온 이후로 그곳이 그립다고, 촌에 있을 때가 산에서 놀 때가 제일 좋았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씰을 학교에서 팔 때였다. 눈치 빠른 아이들은 서로 사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는 스무 장이나 샀다. 이유를 물으니 보육원에 있는 선생님께 선물로 드린다고 했다. 그 마음이 기특했다. 단 한번도 보육원 이름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이는 꼬박꼬박 '집'이라고 불렀다. "내일 집에서 행사가 있어요"라며. 우리 학교에는 반마다 시설 보호 학생들이 하나둘씩 있는데, 옛날과 달리 요즘은 시설에서 잘 돌봐준다고 하지만, 사춘기 예민한 시기에 마음 붙일 데 없어 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저릿하다. 늦가을, @@이와 은서 둘을 데리고 팔공산에 등산을 간 적이 있다. 선생님과 간다고 은서 어머니께서는 일부러 스포츠 점퍼까지 새로 사 입혀서 애를 보냈다. 하지만 @@이는 쌀쌀한 날씨에 얇은 점퍼를 입고 와서 내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겨울에 녀석한테 파카 하나 사 줘야지하고는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의 성적은 형편없었다. 서른 세 명 중에서 허구헌날 32등을 차지했다. 나는 이처럼 고운 심성을 가진 아이가 정말 곤충 박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공고보다는 농고가 낫지 않을까 혼자 이 아이의 진로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공부는 참 못했지만 그 아이는 과목마다 숙제를 꼬박꼬박 냈고, 특히 국어 숙제는 참 열심히 했다. 공책을 내가 시키는 대로 깨끗이 정리하고, 문단 구분해서 글을 쓰는 법도 바로 익혔다. 그 아이의 공책은 수행평가에서 늘 만점이어서 참으로 기특했고, 그 사실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이의 약간 삐뚤한 귀여운 글씨체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올해 @@이가 2학년으로 올라간 다음에는 볼 기회가 없었다. 불러서 한번 이야기해야지 하면서도 바쁜 일상 속에 자꾸 뒤로 미루고 말았다. 뜻대로 되지 않고 쉽게 지치는 학교 생활에서 하루에도 몇번씩 그만두고 싶어지는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내 존재 이유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아이들인데도, 관심 한 번 더 기울이는 것이 쉽지 않다. 잡무에 쫓기는 것도 사실이고, 처리해야 할 많은 일로 바쁜 것도 사실이지만 실은 내 게으름과 열정 없음 역시 큰 원인이기에 이렇게 한 해가 저물어갈 때면 내가 하지 않은 많은 일들 때문에 가슴을 친다. 올 해가 다 가기 전에 @@이 불러 밥 한끼라도 같이 먹어야겠다. 내가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개개인으로 바라볼 마음의 여유 좀 가져야겠다. @@이는 해바라기를 좋아했다. 사는 집 뜰에 늘 피어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던 그 아이가 지금은 사춘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 자기 처지에 대해 자의식을 많이 느끼고 있고 웃음도 사라져간다고 현재의 담임으로부터 들었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이가 고운 마음 계속 지켜가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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