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같은 당신
간밤에 눈이 내렸습니다
서걱이는 눈길,
토끼 발자국 하나 없는 추운 길 걸어
성당과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능선에 서 있습니다.
비는 내려 바다를 모으고
내린 눈은 가슴에 쌓이는 것일까요
첫눈 밟으며
첫마음을 생각했습니다
움푹 패인 곳에
더 깊이 쌓일 줄 아는 당신이라는 첫눈,
행동하는 양심의 첫마음처럼
그 눈길을 걸어 갔습니다
가도가도 발자욱 하나 보이지 않는
그 길 위에
당신이 동행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앞장서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언제고 그랬듯이
빈 바람 빈 손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버린 십자가 등에 지고
절름절름, 철책을 넘고 있었습니다
철책에 찢긴 십자가에는
당신의 심장 같은 선혈이 뚝뚝 흐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빨갱이라 부르는
당신의 십자가가 너무 커서
귀퉁이 한 켠 잘라내어 나눠도 져 봤건만
내 십자가는 매번 작았습니다
그 십자가, 마저 잘라낼 수 없는
한반도의 어두운 하늘
한으로 뒤엉킨 삼천리 금수강산이었습니다
첫눈의 마음으로
첫눈의 사랑으로
그 시린 삼천리를 흰빛으로 덮어버린 당신,
당신은
첫순정,
첫마음입니다
- 문정현, 문규현 신부님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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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신부의 시집 <지독한 갈증>에서 발견한 절창.
이 시를 읽으면, 눈 내린 강원도 산간의 어느 마을,
찬 새벽에 일어나 홀로 눈길을 걷고 있는 한 청년과 만나게 된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능선길에 서서 한반도의 하늘과 땅을 만나고 현실에 아파하고
시린 삼천리를 흰빛으로 덮은 눈속에서 신의 숨결을 느끼는 젊디 젊은 순정을.
인간이 지닌 최상의 가치, 아니 젊음이 지니는 가장 드높은 가치는
첫순정, 첫마음. 눈처럼 하얗고 피처럼 뜨거운, 고결한 '순정'이 아닐런지.
마치 윤동주를 연상하게 하는 시지만, 이 시는 그보다 훨씬 강건한 울림이 있다.
읽을 때마다 부끄러워지는, 나를 숙연케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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