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의 첫문장이 폐부를 찌른다.
"우리 사회는 정신적 폐허 속에 있다."
그 결과는 재앙에 가까운 자살률와 출생률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이 넘은 지 오래지만 사회 곳곳에 위기의 징후가 뚜렷하다. 저자가 인용한 김우창 교수는 '정신적 불행이 일상화된 사회'라 진단하고 서은국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 표현한다. 자살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인 사회 병리현상의 결과라는 데서 저자는 논의를 시작한다.
OECD 선진국 중 유일하게 경제적 가치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고, 사랑, 행복 같은 추상적 가치조자 돈으로 환산된다. 높은 경제 수준에도 불구하고 삶의 만족도는 130개국 중 중위권이고 기쁨과 같은 긍정적 정서를 느끼는 정도는 하위권이다. 경제 중심의 가치관이 다른 모든 사회적 관계와 개인적 가치들을 희생시키는 사회. 곤경에 처할 때 의존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는 답변도 OECD 중 가장 낮았다.
공동체의 붕괴와 극도의 물질중심적 가치관은 삶이 기대만큼 풀리지 못했을 때 큰 좌절을 안겨주고, 사람들은 좌절에서 벗어날 방법으로 자살을 생각한다. 생사관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한국 사람들은 삶의 곤경과 좌절 앞에서 '자살'보다 더 나은 대안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찌 보면 자살은 책 제목처럼 자살하고 싶은 게 아니라 제대로 살고 싶은 욕망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티벳의 문화를 예로 든다. 티벳 사람들은 자살하지 않는다.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온화함을 잃지 않는다. 치매도 거의 없고, 삶의 곤경을 더 나은 삶을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선을 행하면 선이, 악을 행하면 악이 돌아온다고 믿는다. 이번 생이 아니라면 다음 생에서. 윤회를 믿기에. 그래서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해서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분노나 원한을 간직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자살이 절대로 당면한 문제의 해결 방법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번 생에서 자살하면 다음 생에서 또 그와 비슷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고. 이번 생에서 돌파하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같은 과제가 주어진다고. 그리고 최면, 빙의, 종교, 무속 등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자살하면 고통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죽어서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생사관을 제대로 확립해야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죽음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여행의 시작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여행을 잘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 교육은 바로 죽음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고, 죽음에 대한 관점 즉 생사관을 확립하지 못한 것이 우리 사회의 철학과 가치관의 부재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인이라 해도 죽음 뒤에 만나는 세상에 대해 분명하게 단언하기 어렵다. 그건 미지의 세계이자 불가지의 세계이기에.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비록 알 수 없고 단언하기도 어렵지만, 죽음이라는 다음 여행을 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심연과 침묵의 세계로의 여행이지만, 그 여행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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