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선물을 그리 반기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며칠 안 가면 시들시들 결국 버려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활짝 피는 건 잠시, 시들어가는 과정이 더 길고 지루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20~30대엔 그랬다. 잠깐 기쁨을 주고 시들어가는 꽃보다는
무언가 영원한 것들이 좋았다.
젊음 너머도 상상하지 못했다.
살아온 시간이 길지 않기에 '시간'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형성되고 무르익지 못한 시절이었다.
물론 때로 지난 날을 추억하고,
아 왜 이렇게 한 해가 빨리 가지 투덜대곤 했지만
그래도 그땐 시간이 '계속되는 현재'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이 아니라
열대에서 여름이 계속되는 것처럼.
D가 결혼기념일에 맞춰 세 종류의 장미를 보냈다.
장미 꽃다발과 장미 장식품과 장미 화분들...
내 선물은 우리 둘이 12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이었고
그 책 서문에 어린왕자를 언급한 적 있는데,
그래서 어린왕자에 꽂혔는지 자기가 어린왕자라고
자기 별에서 키운 장미라며 보냈다.
"에게, 쿠팡 별이잖아."
장미 한 송이와 바오밥나무밖에 없었던 어린왕자의 소행성과 달리
쿠팡 별엔 없는 게 없는데...
아마 현대인들은 어린왕자의 별보다는
쿠팡 별에 더 가고싶어 할 것 같다.
하지만 여우가 들려주듯 수많은 좋은 것들이 쌓여 있는 속에서
우리가 존재자 하나하나의 가치를 얼마나 알아볼 수 있을까.
어린왕자에겐 장미 한 송이가 전부였기에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음미할 수 있었다.
근 2주간 책상을 밝히던 장미는 이제 시들어간다.
한두 송이 빼곤 말라가는데 향기는 아직 다 시들지 않았다.
말라가는 꽃 묶음을 버려야 할 시간이 곧 오겠지만
함께 보낸 시간의 향기를 기억할 것이다.
화분의 장미는 고군분투하며 키우고 있다.
바빠서 며칠 챙기지 않았더니 화분 하나는 시들시들,,,
물을 더 자주 줘야 하나, 다시 정성을 들여 관찰하고 있다.
매일 지켜봐야 한다는 것, 식물을 키우기 전엔 몰랐다.
날마다 조금씩 자라고 미세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
그 변화를 알아차리고 대처해야
한 줌의 흙 속에 담긴 식물도 튼튼하게 자란다는 것을..
세상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내 정신 속에서 살아있는 한
그것은 내 삶에서 영원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은 영원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