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아는 건 타인을 아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나의 많은 부분은 나 자신에게 마치 타인처럼
겹겹의 베일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생각을 아는 건 접근이 좀 더 수월하다.
생각은 객관적으로 검토 가능하니까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하기를 시도해볼 수 있다.
비록 그 물러남이 순간 그치고
우리는 금세 예전의 생각으로 돌아가버리지만.
생각도 그럴진데 감정을 아는 건 더 어렵다.
사실 감정이 진짜 생각인데
감정은 생각보다 더 밀착되게
내 존재와 딱 들러붙어 있어서
나에게서 떼놓기가 더 어렵다.
감정은 진짜 나 같아 보여서 객관화가 어렵다
다시 말해 나의 견해들보다
나와의 동일시가 더 강력하다.
감정도 의견처럼 변화무쌍한 것으로
불교에선 그러한 성질을
무상이란 단어로 표현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쉽게 비판하지만 대신
감정을 내 존재의 근거처럼 삼는 경우가 많다.
내가 무얼 느끼고 있는지
내가 어떤 감정에 사로잡혀있는지
그렇게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 걸음 물러나기란 쉽지 않다.
나와 나의 감정을 분리하는 것은
감정을 느끼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감정이 그 정도로 절대적 의미가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감정적 자아에 핸들을 주지 않되
그 목소리에 충분히 귀기울이는 것
세상 어떤 소리보다
자신의 소리를 듣기가 더 어려우니
그런 의미에서 자기를 아는 건
세상을 아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
지천명을 앞두고 생각한다.
사회성이나 직업적 전문성은 많이 향상됐지만
나 자신은 잘 몰랐구나.
내 정신의 몇몇 영역은 아직 어린이구나.
공부의 방향 전환이 필요한 때구나.
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자기를 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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