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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철학, 심리

[해밀턴의 그리스 로마 신화 / 이디스 해밀턴] __ 그리스인들이 인류에 준 선물

by 릴라~ 2024. 12. 21.

그리스 로마 신화의 본질을 이 책보다 더 명확하고 감동적으로 정리해준 책이 있을까 싶다. 신들에 대한 이야기는 읽지 않아도 좋다(물론 매우 잘 정리돼 있지만). 이 책의 가장 훌륭한 부분은 서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서문만 읽어도 좋다. 서문이 전부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 작가들은 공포가 가득한 세상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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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리스인들도 고대 원시 관습에 뿌리를 두고 있기는 하다. 한때는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며 비열하게 살기도 했다. 그러나 원시적 타락과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그들이 얼마나 숭고하게 살았는지 신화 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야기 속에서 야만 시대를 연상시키는 것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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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리스의 기적'을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각성으로 새로운 세상이 탄생했다는 의미다. (...) 왜, 언제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고대 그리스 시인들에게 이전 세계에서는 감히 꿈도 못 꿨지만 이후 세계에서는 새로운 시각이 움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스의 등장과 함께 인류는 우주의 중심이며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이것은 가히 사고 혁명이었다. 이전까지 인간은 하찮은 존재로 여겨졌지만, 그리스에서 어떤 존재인지 비로소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본떠 신을 만들었다. 이전 시대에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들은 실제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신들은 살아있는 생물의 형상과는 전혀 달랐다. 이집트에서는 상상을 초월한 부동의 거대한 거상이 웅장한 신전 기둥이나 바위에 고정되어 있었으며, 인간 형상을 의미하는 조각은 되도록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유연성 없이 비인간적이고 잔인함을 드러내는 고양이 두상을 가진 여인처럼 경직된 인물상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과 동떨어진 거대하고 신비로운 스핑크스도 존재했다.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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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이전 세계에서 이처럼 비현실적인 것들을 숭배해왔다. 얼마나 새로운 사상이 도래했는지 이해하려면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게 표현된 아름다운 그리스 신들의 조각상과 이전 신들의 모습을 나란히 세워보면 된다. 새로운 사고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우주는 합리적인 세계가 되었다.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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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모든 예술과 사고는 인간에게 집중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간적인 신들은 자연히 천상을 즐겁고 친밀한 곳으로 만들었다. 그리스인들은 그러한 천상의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하늘에 사는 신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고 마시며, 어디서 연회를 즐기는지 다 알고 있었다. 물론 신들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들의 분노는 강력하고 무서웠다. 하지만 적당히 조심하기만 하면 인간은 신들과 꽤 잘 지낼 수 있었다.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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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신들도 인간적이고 매력적이었다. 사랑스러운 청년이나 처녀의 모습으로 산, 숲, 강, 바다에서 아름다운 대지와 빛나는 바다와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의인화된 세상, 전능한 미지의 대상을 향해 온몸이 얼어붙는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들, 이것이 그리스 신화의 기적이다. 그리스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숭배되었던 무시무시한 불가해성과, 땅과 공기와 바다를 가득 메운 초자연적 존재의 무서움이 그리스에서는 모두 거부되었다.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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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는 무섭고 비합리적인 것이 설 자리가 없다. 그리스 이전에는 그렇게 강력했던 마법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세계는 인간의 마음에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아니다. 그리스 신들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변덕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제우스의 벼락이 어디에 떨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중요하지 않은 몇몇 신을 제외한 모든 신은 인간미를 갖추었으며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다. 인간적 아름다움을 갖춘 것은 전혀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 작가들은 공포가 가득한 세상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상으로 바꾸어놓았다. p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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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가 벼락을 내리는 신이라는 점은 이전에 그가 비의 신이었음을 의미한다. 제우스는 심지어 태앙신보다 우세했는데, 바위투성이 그리스 땅에서는 태양보다 비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숭배자들에게 귀중한 생명수를 제공하는 신이 바로 신들 중 왕이 될 수밖에 없었다.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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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은 신들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우주가 신들을 창조했다고 생각했다. 신들이 존재하기 이전에 먼저 하늘과 대지가 형성되었다. 그것이 최초의 부모였다. 티탄 족이 하늘과 대지의 자식이었으며 신들은 그들의 손자였다.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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