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에서 만나는 분들은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특히 요새는 더 그렇다. 나이스 시스템 등장 전에는 쌤들끼리 수다도 많이 떨었는데, 뭐 요새는 말 한 마디 할 시간이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일 년간 매일 학년실에서 만나도 각자의 컴퓨터만 정신없이 들여다보게 되니…
그럼에도 지나고 보면 몇몇 분과 좋은 인연을 맺게 된 곳이 학교다. 특히 나이를 초월해서 친분이 생기는 점이 좋다. 교육이라는 공통의 화두가 있고, 담임 등 하는 일이 대등하고, 또 사업적인 이해 관계가 없기에 순수한 동료애가 생기는 것 같다.
그분들 중 한 분이 올해 정년퇴임하셨다. 정년퇴임 5년을 남기고 경북으로 시도간교류를 써서 가셔서 교직 마지막 5년을 전교생 몇 십 명인 오지에서 보내셨다. 자기 인생에서 그게 제일 잘한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대구에 있었더라면 버거워서 명퇴했을 거라고. 학생들과 편안하고 좋은 관계를 맺으며 교직을 마무리해서 넘 좋았다고.
시도간 교류는 인당 교류기 때문에 대구 근무를 희망하는 젊은 쌤 한 명을 구제해준 셈도 되니, 이래저래 좋은 일도 하시고, 쌤도 마지막 시간을 잘 마루리하시고. 여러모로 귀감이 되는 분이다. 나도 지금 대구가 너무 벅차서, 여차하면 시골로 갈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
근데 이분이 퇴임하면서 학생들에게 책 선물을 했는데, 내가 쓴 졸서를 선물했다 하신다. 아니, 미리 말씀 주셨으면 청소년용 좋은 책을 잔뜩 소개해드릴 수 있는데 왜 그러셨냐니까, 이 책보다 더 좋은 책을 몰라서 그러셨다나… 이래저래 황송…
그분은 이제 남원에 가신다고 한다. 판소리를 배워보고 싶다고. 시골학교에 근무하시는 동안 정토회 불교대학도 나오고, 정토회 활동을 하셨다 한다. 지금껏 다녀본 모임 중에서 제일 사람들이 좋아서 퇴임 후에도 활동을 계속하실 거라고. 그 연세에 새로 종교를 갖는 게 쉽지 않은데, 퇴임 준비를 정말 잘하셨다. 시골 학교 5년은 본인이 퇴임 후 무엇을 할지 생각하고 준비하는 시간이었다고. 나도 그렇게 잘 준비해야겠다.
돌아보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냥 의미 없이 스쳐지나갔지만 또 몇몇 분은 정말 좋은 인연으로 남았다.
1. ㅅ중에서 만난 쌤과 20년 넘게 아직 연락하고
2. ㄴ중에서 만난 분들과는 매년 모임을 갖는다. 2010년 3학년 담임들인데, 그 해 우리 반이 무척 별로였는데, 부장쌤도 좋고 다른 쌤들이 좋아서 지금도 매년 만난다. 6분 중에서 벌써 3분이 퇴임하고 내년에 한 분이 퇴임하고, 나 포함 둘만 이제 현장에 남게 됐다.
3. ㄷ고도 학교는 개판이었지만 좋은 분들을 몇 분 만났다. 그분들과 아직 연락한다.
4. ㄱ고에서 만난 분들과도. 두 분은 벌써 퇴임.
5. ㅈ중은 인연이 없네. 가장 힘들었던 학교고 아빠가 돌아가셨던 때라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음.
6. ㄱ중은 최근인데 예상 밖에도 가장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서 여러 쌤들과 자주 연락한다.
학교 생활이 언제나 버겁고 참 힘들었는데 이렇게 쓰고보니, 또 그렇게 나쁘진 않네. ㅎㅎ
정년퇴임 이후 삶도 늘 행복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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