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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을 적다

장미의 계절은 지금

by 릴라~ 2025. 2. 18.

계절의 여왕, 5월도 아닌데 우리 집엔 겨우내 장미가 피었다. D가 작년 생일 때 보내온 네 개의 장미 화분에서. 장미꽃은 비싸기 때문에 가성비 최고라 할 수 있겠다. 이게 은근 손이 많이 간다. 하얀 곰팡이가 잎끝에 자꾸 생겨서 퐁퐁을 연하게 탄 물을 분무기로 때때로 뿌려줘야 하고, 물 조절도 잘해야 하고. 장미 화분이 물을 많이 먹는다.

걸핏 하면 식물을 잘 죽였기에 이 장미들은 살리려고 겨우내 특별히 신경을 썼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그간 왜 식물을 그토록 죽였는지를. 식물도 매일매일 지켜봐야 한다. 며칠 까먹고 일주일 까먹으면 시들시들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다. 큰 화분에 담긴 나무가 아니라면. 매일매일 지켜보는 것, 매일매일 관찰하는 것, 식물 가꾸기의 기본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얘네들이 보여주는 미세한 변화다. 동물처럼 동작이 크고 바로바로 반응이 오진 않지만, 날마다 진짜 조금씩, 섬세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게 식물 가꾸기의 매력이다. 주로 나이 들면 식물을 좋아하게 된다는데, 아마도 섬세한 변화에 반응하게 되는 나이여서 그런 것 같다. 젊은이라면 동물을 더 선호하는 게 당연하다.

장미꽃이 한 송이씩 망울 지고 피어날 때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꽃이 피는 게 기적처럼 여겨지다니. 한겨울 아파트 19층, 작은 장미 화분에서 자라는 꽃이라 더 그렇겠지. 5월, 담벼락을 붉게 물들인 덩굴장미를 보곤 찬란하다 여겼지만 기적이라고까진 생각 안 했는데. 이 회색빛 콘크리트 속 한줌 흙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며 살포시 얼굴을 내미는 작은 장미는 정말 기적 같았다.

그리고 그 장미가 활짝 피어 시들해지고 잎을 떨구는 순간까지 지켜보는 게 너무 큰 환희였다. 이 영하를 오르내리는 한겨울 속에서. 어린왕자는 자기 별에서 장미 한 송이를 가꾸었는데, 나는 이 육중한 콘크리트 속에 장미 몇 송이를 품고 있네.

몇 달간 가꾸는 데 성공한 꽃이기에 아프리카에 오면서 제일 걱정되는 게 장미 화분이었다. 절대 죽이면 안 되는데… 모친께 나흘 에 한 번,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꼭 우리집을 방문해서 물 좀 주라고 신신당부하고 왔다. 뭐, 아직까진 이상 없이 잘 크고 있다고 한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늘 우리집이 포근한 천국처럼 느껴진다. 이번에 돌아가서는 집 현관문을 열고 제일 먼저 장미를 확인하겠지. 장미꽃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 장미가 보고 싶어 귀국하는 발걸음도 설렐 것 같다.

혹시 삶이 무료한 분들이 있다면, 지금 당장 장미 화분 몇 개를 집에 들이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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