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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을 적다

봄, 아보카도 싹

by 릴라~ 2025. 3. 21.

3월에 눈보라가 두 번이나 쳐서 사람을 놀래키더니 어김없이 봄이 왔다. 신규교사 시절엔 2월말이면 목련과 개나리가 폈는데.. 봄꽃의 향연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올해 내게 봄의 전령은 아파트 19층 베란다로 찾아들었다. 작년 가을, 겨울, 아보카도를 잔뜩 주문해 먹던 어느 날. 심심해서 아보카도 씨 3개를 베란다 빈 화분에 심었었다. 원래 봉숭아가 있던 화분인데.. 싹이 날까 반신반의하며.. 그리고 몇 달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세상에나… 3월 중순 딱 되자 화분 2개에서 아보카도 싹이 올라왔다. 물도 안 줬는데 이 녀석들 어떻게 봄인 줄 알았지. 싹이 줄기가 아주 튼실하다.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식물의 탄생은 동물과 이렇게 다르구나 했다. 씨앗에서 출발하는 건 같지만 이후 전과정이 정말 다른 존재 양식을 보여준다. 일단 이 녀석들은 한없이 고요하다. 동물처럼 어미의 주의를 끌기 위해 부산하게 보채지도, 먹이를 갈구하지도 않는다. 동물은 기본적으로 욕망에 끄달리는 존재다. 타자의 시선과 돌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동물에게는 ‘눈’이 있는 거겠지.

식물에게 필요한 건 물과 바람과 햇살뿐. 그를 가꾸는 건 오직 자연 그 자체의 손길이다. 봄햇살 속에서 그는 스스로 땅을 뚫고 생명의 기지개를 시작한다. 한 순간이지만 우주만큼 깊고 드넓은 고요 속에서. 이보다 더 명상적일 수 있을까. 선불교의 참선을 들뢰즈 가타리가 ‘식물-되기’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보카도 싹이 내뿜는 고요한 생명의 호흡을 지켜본다. 내 마음에도 고요한 파동이 지나간다. 두근두근 새봄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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