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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 드라마

다큐 - KBS 신실크로드 05편 <동으로 간 푸른 눈의 승려>

by 릴라~ 2009. 3. 8.

피타고라스의 창(http://bomber0.byus.net/) 주인장이 강추하길래 일부러 찾아서 본 다큐멘터리.
내가 무식한 건지, 우리 교육이 잘못된 건지, 이렇게 훌륭한 분을 여태 몰랐다니...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줄거리를 남겨둔다.


타클라마칸과 천산산맥 사이의 '불모의 산'.
그곳에 3세기부터 만들어진 키질 석굴이 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석굴이라고 한다. 
그리스풍의 화풍, 아프가니스탄에서만 난다는
라피스라즐리(청금석)의 푸른 빛이 유독 돋보이는 석굴이다.
라피스라즐리는 19세기 한 프랑스넘이 푸른 안료를 개발하기 전까지
유일하게 푸른 색을 나타낼 수 있었던 값비싼 보석이라 한다.

키질 천불동 석굴을 만든 이들은 쿠차 사람들.
실크로드 천산남로 중간에 위치한 쿠차 왕국은 교역의 중심지였다.
4세기경 쿠차왕국에 '쿠마라지바'라는 왕자가 태어난다.
어머니는 코카서스 계열로 쿠차왕국의 왕족이었고 아버지는 인도의 망명귀족이었다.
왕위 계승 다툼의 희생자가 될 것을 우려한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그를 불교 승려로 키운다.

당시 중국은 5호 16국과 진의 각축장.
피비린내나는 전쟁 끝에 쿠차 왕국은 몰락한다.
쿠차에서 실어나간 전리품은 낙타 2만 마리에 달했는데
당시 실크로드를 가득 메웠다고 한다.
왕자였던 쿠마라지바는 중국 장군 여광에게 잡혀가서 갖은 모욕을 다 당한다.
여광은 급기야 쿠마라지바에게 여인과 동침하기를 강요하는데
쿠라라지마는 저항했으나 여인을 죽이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결국 파계승이 된다. 
그 당시에 계율을 어겼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으며
인간으로서 가장 비참한 삶으로의 전락을 의미했다.

왕국이 멸망했어도 석굴은 계속 만들어졌는데
이 시기 석굴에는 부처가 없는 시대의 슬픔이 드러나 있다.
인도에서 열반은 흔히 기쁨의 순간으로 그려지는데
키질 석굴의 열반상에서 부처는 말없이 누워 있으며 사천왕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사천왕이 절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등장한 것은
키질 석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쿠마라지바는 장안으로 압송되던 중 그곳에 전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어느 도시에서 17년간 감금되고 그 때 중국어를 익힌다.
그리고 그의 나이 오십이 넘어서 장안에 도착한다.
새로운 국가 통치 이념을 필요로 하던 임금은 그에게
산스크리트어 불경을 중국어로 번역하게 하고
그가 번역한 불경은 반야경, 법화경, 아미타경, 유마경을 비롯하여
자그마치 300여권으로 동아시아 불교의 기본 경전이 된다.

불교의 기본적인 세계관을 잘 설명한 '색즉시공 공즉시색'
쿠마라지바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오늘날 산스크리트어 경전이 연구되면서 쿠마라지바의 번역이
그 자신의 깨달음이 가미된 의역이었음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고 한다.

'극락' 역시 쿠마라지바의 번역이며 그가 예로 든 '공명조'도

인도에는 없는, 타클라마칸의 전설의 새라고 한다.
머리는 둘, 몸통은 하나인 새, 공명조는 두 개의 머리가 밤낮으로 싸우다가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독을 먹이는 바람에 함께 죽고 마는 새로
인간 내면의 선악을 상징한다.
쿠마라지바는 극락을 공명조도 즐겁게 노래하는 세상,
선악의 분별이 없는 지극한 기쁨의 세계로 묘사했다. 아마 그는 인간이
자기 내면의 어둠과 갈등을 넘어서 구원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으리라.


'고승전'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자신의 번역에는 틀림이 없다면서
자신이 죽어도 '혀는 타지 않을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평생을 깊은 고통과 번뇌 속에서 보냈던 쿠마라지바는
자신의 가르침을 냄새나는 진흙 속에 피는 연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말년 사상이 담긴 '번뇌시도장(煩惱是道場)'이라는 다섯 글자를 경전 속에 남긴다.
'번뇌시도장', 번뇌 안에 깨달음이 있다....

인도 불교가 번뇌를 가라앉히는 것을 이상으로 삼은 데 반해
쿠마라지바는 번뇌를 긍정하고 악인도 구원받을 것이라는 사상을 펼쳤다.
이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슬픔과 고통에 찬 삶을 살았던 쿠마라지바가
수행승 뿐 아니라 세속의 모든 이에게 주는 삶의 메시지,
고난 속에서 형상화된 진리를 보면서 깊은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

지금 쿠차 사람들은 모두 이슬람교도이지만
집 대문을 푸른 색으로 칠하는 전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들의 유명한 격언 중에 이런 것이 있다고 한다.

'푸르름이 신이다. 푸르름이 있으면 평화롭게 살 수 있다.'

천산산맥, 타클라마칸.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번뇌시도장, 번뇌 속에 깨달음이 있다.



* 이 다큐는 총 10편이며, KBS, NHK, CCTV 공동 제작에 음악 감독은 요요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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