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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가 체포되었다. 허위사실 유포죄로. 그가 진짜 미네르바인가 정부의 조작인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마약수사전담반을 동원해 미네르바를 체포하고 그의 신상을 공개한 정부의 못된 의도, 너무나 비열하고 치졸한 의도다.
"너희가 숭배하는 미네르바는 공고와 전문대졸의 백수에 불과하다구. 그런 애송이의 말에 놀아난 너희가 얼마나 바보인지 알겠니?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살 것이지, 아랫것들이 뭘 안다고 설치나. 우리에겐 권력이 있으니 너희들 입을 막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라구. 이제부터는 다들 말조심 하셔."
미네르바의 체포와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떠올리는 이가 나만이 아닌 것 같다. 최근에 책으로도 출판되었다. <브이 포 벤데타>는 2040년 영국 사회에 들이닥친 파시즘의 양상을 소름끼칠 만큼 잘 그린 영화다. 원작자 앨런 무어와 제작자 워쇼스키 형제의 철학과 가치관이 스크린과 배우들의 대사 속에 깊이 배어 있다. (스포일러 있음)
극우 정권의 탄생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이들이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위해 늘상 이용하는 것은 국민들의 공포심. 세균, 질병, 테러, 전쟁 등에 대한 연쇄적인 두려움으로 이성이 마비된 영국 국민들은 서틀러 정부를 선택한다. 과거 정치적 혼란기에 군부가 쿠데타로 집권했다면, 이제는 더 세련된 방법으로, 위기를 조장하고 대중의 여론을 호도하는 방법으로. (경제 위기 타령으로 집권하신 모님도 마찬가지. 맨날 위기 타령하더니 진짜 위기를 만드심.)
집권 후 이들은 언론을 장악해 완벽한 통제 사회를 구축한다. 뉴스 생산과 가공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하자 세상은 쉽게 그들의 손아귀 안에 들어온다. 통행금지를 비롯한 온갖 감시와 억압이 자행되고, 급진주의자, 동성애자, 정부 비판자, 이슬람교도 등 정부의 입맛에 안 맞는 모든 사람들은 잡혀간다. 누군가 반발할라치면 뉴스에는 어김없이 대내외적 위기가 설파된다. (최근 각하께서도 벙커에 들어가셨다지...)
11월 5일을 기억하라
그 침묵과 부정, 공포로 얼어붙은 사회에 가면을 쓴 한 남자, 브이가 출현한다. 독재 정권이 국민에게 주입하는 언어에 항거해서 그가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는 “Remember the 5th of November." 11월 5일을 기억하라.
영화에는 세 번의 11월 5일이 나온다. 먼저 400년 전 11월 5일. 가이 포크스가 의사당을 폭파하려다 실패한 날. 두 번째는 브이가 한밤의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재판소를 폭파한 날. 세 번째는 서틀러 정권이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날. 역사는 반복되지만, 각 사건의 의미는 그것에 참여한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다.
두 번째 11월 5일, 재판소 테러에 성공한 브이는 정부가 만든 비상방송 채널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이 나라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일차적인 책임은 정부에게 있겠지만 이 지경이 되도록 방관한 것은 국민들이라고. 자신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은 내년 11월 5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모이자고. 그래서 자유, 정의, 공정함이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임을 만천하에 알리자고.
꽤 긴 연설이었는데 영화의 모든 주제를 압축하는 명문장이었다. 브이 역을 맡은 배우 휴고 위빙의 목소리가 압권이다. 가면 아래 배우의 표정을 전혀 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밀도 있는 장면을 연출해냈다.
정부는 브이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고, 그가 정신병자며 진압 작전 중 사살되었다고 거짓 방송을 내보내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리고 일 년 후 세 번째 11월 5일이 다가올 때까지 브이는 세상을 바꾸려는 자신의 계획을 하나씩 차례차례 실행에 옮긴다. 벤데타, 이름하여 피의 복수이다.
내일은 새로운 세상
11월 5일 전야, 자신의 복수를 완성한 브이는 마지막 계획의 실행을 이비에게 맡긴다. "내가 만든 세상은 오늘로 끝나. 내일은 새로운 세상이고 그것은 새로운 자들의 몫이야." 자신과 더불어 증오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숭고한 선언. 이비는 브이의 뜻을 이어받아 의사당 폭파를 감행한다.
재판소 다음에 왜 의사당일까. 의회 민주주의가 국민의 참뜻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국의 국회의사당이라면 더 실감 났을 듯하다. 그 돔형 건물은 나도 가끔 때려부시고 싶다. 푸른 기와집까지 패키지로 넣어서. 지금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이비의 말은, 정부의 각종 삽질에 지친 우리들에게 참으로 절실하게 다가온다.
드디어 운명의 11월 5일. 브이의 가면을 쓴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데... 엄청난 수의 브이들이 군대의 방어막을 뚫고 국회의사당 쪽으로 행진하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시민들이 자각해 일어선 날, 낡은 시대의 상징인 의사당은 붕괴되고 폭압의 시대도 끝이 난다. 혁명은 축제가 되고, 하늘엔 폭죽이, 거리엔 음악이 울려퍼진다.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이 이 영화에서처럼 멋지게 들린 적이 없다.
승리의 V, 우리들의 V
브이는 누구일까. 브이는 얼굴이 없다. 우리는 가면 아래 브이의 얼굴을 알 수 없다. 브이는 나의 아버지이자 어머니, 친구이자 당신이자 자신이라는 이비의 말은 그래서 정확하다. 브이는 우리 모두이다. ‘자유, 정의, 공정함, 고결함’이 그저 단어가 아니라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믿는 모든 사람들.
미네르바 신화를 만든 사람은 사실 정부였다. 시시때때로 말을 바꾸는 정부를 믿지 못한 네티즌들이 진실을 알려주는(혹은 알려준다고 믿은) 미네르바의 지식과 통찰력에 열광한 것이다. 미네르바는 주류 언론에서 듣지 못하는 말을 전해주었던 네티즌들의 ‘언로’였을 뿐, 허위 사실을 유포한 적도, 사기 행각을 벌인 적도 없다.
정부는 미네르바의 가면을 벗겨내고 그 입에 족쇄를 채우면, 사람들도 말문을 닫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과연 그럴까. 정부가 오천만의 입을 막지 않는 한, 우리 안에 있는 브이가 침묵을 깰 것이고, '언어의 강력한 힘은 진실을 듣기를 원하는 자의 귀에 가닿을 것이다.'
사람은 죽어도 신념과 사상은 살아남는다. 하지만 나는 이비의 이 말이 더 가슴에 남는다. 사람들은 '사건'을 기억하겠지만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은 '한 남자와 그의 의미'라는... 11월 5일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든 남자, 브이.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도 역사적 사건이나 추상적 신념이 아니다. 나는 그러한 신념을 지녔던 구체적인 사람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싶다. 4. 19를 기억하게 만든, 80년 광주를 기억하게 만든, 87년 6월을 기억하게 만든, 수많은 사람들. 울고 웃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키스하고 고통받고 아픔을 느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지닌 의미.
위정자들이 그들의 의미를 잊지 못하도록, 그것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다시 한 번 성대한 축제가 벌어지기를. 그런 소망을 간직하고 있는 이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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