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냥군이 그러더라. ‘리스크’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개념들이 처음에는 어느 천재가 홀로 창안한 것이고 그것이 수백년 동안의 논쟁을 거쳐서 보편적인 개념으로 정착된 것이라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학문이 비약적으로 성장해왔는데, 문제는 인간성 자체는 그다지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과학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삶의 양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은 그다지 진보하지 못했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 변화하는가. 물론 계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계기가 전부가 아니다. 여행을 많이 한다고 해서 인간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인간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한 인간이 변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 자기 삶을 돌아볼 여유다.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쓰다 보니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과 같은 맥락인 듯.) 여행을 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자신과 세상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짬을 가질 때, 그것을 의지와 결단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 때 변화가 찾아온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 이는 자율적 삶을 위한 원초적 조건이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사회, 문화, 교육 모두 생각할 시간과 기회를 주지 않는다. 한 개인 대신에 부모가, 사회가, TV가, 직장 상사가, 사장이, 종교 지도자가 삶의 문제를 대신 생각하고 결정해주는 세상이다. 그래서 지식은 넘쳐나는데 인간의 내면은 더욱 궁핍해진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 자신 생각을 별로 안 하고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쎄다. 평균적인 한국인보다 많은 여가와 여행과 자신을 위한 시간을 누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바쁘게 살았다는 생각을 요즘 비로소 한다. 너무 생각 없이 살았구나 싶다. 활동 속에 매몰된 것도 있고.
직장에 적응하고 일에 손에 익는데도 꽤 시간이 걸리니 그럴 수밖에 없는 면이 있다. 작년에는 10년차인데 왜 이리 발전이 없나 그런 생각을 했는데, 올해 2년째 비담임을 하면서 교실을 여유롭게 통솔하는 힘, 전체를 운영하는 힘이 내게 조금쯤 생긴 것 같다. 문제 상황에 알맞은 대처 방법을 생각할 여유가 주어져서 그렇기도 하다. 이런 여유도 올해로 끝이겠지만, 좀 더 일찍, 4년차 정도일 때 이런 시간이 주어졌다면, 나 자신 더 빨리 성장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조금 아쉽다.
사람을 정신없이 돌리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있고, 바깥에 드러나는 활동에 너무 큰 가치를 부여하는 현대 사회의 분위기가 있지만, 나 스스로도 생각할 시간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 같다. 무언가를 ‘함’에 매몰되어 있었다.
사색할 시간, 삶을 돌아볼 시간. 그런 것들을 내 삶에 더 많이 초대하고 싶다. 그리고 그 시간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걸 요즘 많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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