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맞는 아침은 시간의 다른 차원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다르게 지각된다. 잠에서 깨어날 때 피부에 닿는 공기의 질감이 다르고 창으로 비쳐드는 햇살의 강도가 다르고 차창을 열면 만나는 풍경의 색감이 다르다. 아침 밥맛이 다르고 식후에 마시는 차맛의 깊이가 다르고 하루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단 일박일지라도,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이 주지 못하는 시간의 깊이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여행지에서 맞이하는 모든 아침은 그래서 '세상의 첫 아침'이다.
이 아침의 신성한 기운이 좋아서 가끔 누구도 이 공간에 들여놓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예전에 누구와 여행할 때도 문득 스쳐가는 생각에 나 스스로 놀란 적이 있다. 상대방이 알면 섭섭하겠지만 이 아침을 홀로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 저녁 나절의 쓸쓸함과 달리 아침은 홀로 고요히 사색하고 싶은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아침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동반자가 되어도 좋으리라.
9코스의 종점이자 10코스의 시작인 화순해수욕장에 다시 갔다. 어제의 바람은 간곳 없고 모래도 바다도 산도 아침 고요에 잠겨 있다. 10코스는 바다 바로 옆으로 올레길이 이어진다. 퇴적암 지대를 지나 계속 바닷길이다. 걸어도 걸어도 물리지 않는다. 바다를 옆에 낀 채로 이대로 끝없이 걸어도 좋겠다 싶다.
용머리해안이 가까워오자 언덕길이 나타나고 언덕 하나를 넘자 선인장 사잇길이 나타났다. 사계 포구에 이르러 점심을 들고 올레길을 접었다. 10코스를 반도 채 못 걸었는데, 비행기 시간이 가깝다. 다음에 여기서 다시 길을 시작하게 되겠지.
* 걸은 날. 2009. 4. 26.
-> 화순해수욕장
-> 멀리 보이는 것이 용머리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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