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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이야기/여행 단상

한여름에도 그리움은 깊고 - 봉하마을

by 릴라~ 2009. 8. 1.



대통령님 서거 이후 약 두 달만에 다시 봉하를 찾았다. 한 번 가야지 했는데,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분의 이름이 내게 상처였으므로. 슬픔은 허락받았지만, 죽음의 원인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이 사회에선 아직 '금기'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우리는 조금도 진보하지 못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 원인이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듯이.

우리는 권력과 맞서 싸워서 한 번도 이긴 역사가 없다고 생전에 노대통령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무수한 저항이 있었지만 혁명 세력이 권력을 쟁취한 역사는 없었다. 4/19도 6월 항쟁도 미완의 혁명이었다. 시민 권력이 탄생시킨 대통령, 그래서 참여정부는 참으로 값진 승리였다.

참여정부 5년 동안 조중동과 온국민의 쏟아지는 인신공격을 보면서 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대통령님이 참으로 강인한 분이라 생각했다. 이제 생각해보면 5년간 이 땅을 덮었던 그 악의에 찬 '말'들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것 같다. 그 악랄한 언어의 화살들이 종국에는 그분을 맞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 저급하고 비열한 언어를 이 땅에서 몰아낼 수 있다면.

경산역에서 진영역까지는 1시간 거리였다. 역에 내려서 택시를 탔다. 요금이 6800원 나왔는데, 기사님이 차가 좀 막혔다고 6000원만 받으시겠단다. 마을에는 금요일 평일인데도 관광버스가 여러 대 보이고, 추모객도 많았다. 대통령님 묘소는 찾기 쉬웠다.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로 오르는 봉화산 산행로 바로 앞에 있었다.





고인돌만 있고 주변은 아직 공터 그대로여서 왕의 무덤 치고는 다소 초라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국립묘지가 아닌, 그분이 나고 자란 고향 언덕 아래에 잠드신, 서민 대통령. 삶은 소탈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 드높은 기상과 제왕의 품위를 지녔던 분.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가까운 벗으로 다가갔던 분. 자연의 한 조각이 되어 사라졌지만 역사의 일부가 되어 영원히 남았음을 안다. 그러나 마음속 애통함은 가시지 않았다.





묘소에 참배하고 부엉이바위로 올랐다. 오르는 길에는 조문 기간 동안 사람들이 남긴 노란 리본이 숲이 되어 흔들리고 있었다. 그동안 내린 비로 노란 빛이 점점 바래고 있었지만, 저마다 다른 필체로 고이 쓰인 글귀들은 살아서 펄럭이고 있었다. 그 목소리들이 귓전에 쟁쟁했다.



-> 리본 뒤로 보이는 것이 부엉이바위다.


산 중턱에 고려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이 있다. 쓰러진 부처님이 처연하다. 우리 역사 속에는 아기장수 우투리의 상징이 반복된다. 꿈을 못다 이루고 쓰러진 수많은 영웅들. 아기장수 이야기는 수천년간 백성들의 가슴속에 남았다. 그러나 이제는, 영웅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시민 한 명 한 명이 제 목소리를 내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이 아니라, 니체가 말한 권력의지다. 힘의 의지를 갖고 자기 자신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길어내기를. 우리들 각자의 삶이 더 큰 역사와 연결되기를.




사진을 세워보았다.




부엉이바위에 오르자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분이 오랜 세월 바라보았을 풍경. 젊은 날의 고뇌와 귀향길의 푸근함이 스쳐갔던. 그분이 생전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였다. 그분은 바위처럼 굳건하게 버티셨고, 그 바위 아래로 몸을 던져 짐승의 '말'에 죽음으로 맞섰다. 그분의 실존이 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 바위가 버티고 서 있는 한, 그분의 뜻도 사라지지 않으리라 믿고 싶다.



-> 부엉이바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부엉이바위를 지나 계속 산책로를 따라갔다. 여기저기 공사가 완료되지 않아 다소 소란스러웠던 마을과 달리 봉수대와 정토원으로 향하는 산책로는 한적하고 고요하다. 작은 산이지만 숲길은 잘 가꾸어져 있었다.




-> 봉수대에서 내려다본 풍경


-> 정토원


마지막으로 정토원에 들렀다. 108배를 올렸다.




대통령님 묘역에서 시작해서 봉화산을 한 바퀴 천천히 도는데 두 시간쯤 걸린 것 같다. 마을에 택시가 많이 들어오고 있어서 쉽게 차를 잡았다. 진영역까지 요금이 6400원 나왔는데, 기사님이 6000원만 내라신다. 여기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계속 요금을 깎아주신다.

봉하마을. 너무 작은 마을이라 대통령님의 별로 크지 않은 사저가 마을의 거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그런 시골 마을. 그 작은 마을에 끝없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대통령님이 계시지 않는, 그분의 무덤만 있는, 그곳에.

시민들에게 둘러싸인 그분의 무덤을 보았다. 그분의 죽음이라는 사건. 그 사건의 의미는 아직 생성되지 않았다. 그 비어 있는 시간 속에서, 침묵 속에서, 어떤 새로운 의미가, 언어가, 행위가 태어날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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