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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 드라마

부당거래

by 릴라~ 2010. 11. 14.

부당거래
감독 류승완 (2010 / 한국)
출연 황정민,류승범,유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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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을 찍은 우리들의 부당거래를 묻고 있는 영화

부당거래와 방가방가는 꼭 챙겨서 보려고 했는데, 바빠서 잊고 있었다.  아침에 검색해보니 방가방가는 이미 종영되어 부당거래 한 편만 봤다. 아주 잘 만든 영화다. 보고 나서도 마음 속에 불편함과 어떤 질문이 가시지 않는다. 우리에게 불편함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야말로 삶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영화일 것이다. (스포일러 있음)

영화에 대한 아무 사전지식 없이 보러 가서 경찰 최철기(황정민 역)과 주검사(류승범 역)의 대립 구도가 나오자 헐리우드의 전형적인 공식대로 힘 없는 경찰이 검찰 권력의 비리를 파헤치는 영화인가 했는데, 웬걸, 영화는 반전을 거듭하면서 모든 인물들이 얽히고 설킨 부당거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선악의 대립 속에서 진실을 지닌 약자의 승리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덮고 있는 부당거래의 그물 전체를 신랄하게 파헤치는 영화다.

그 그물을 이루고 있는 주된 축은 경찰, 검찰, 건설업계 및 재벌, 언론이었다. 학벌 차별이라는 경찰 조직 내부의 문제에서 시작해 청와대가 개입하자 가짜 범인을 내세워서라도 사건을 종결하려는 경찰청의 태도, 검사와 재벌의 기생 관계 및 조폭과 다름 없는 검사 조직 내부의 모습, 경찰과 건설업자간의 기생 관계, 권력의 앞잡이가 된 기자까지, 한 개인이 발을 빼고 싶어도 이미 너무 깊게 개입되어 발을 뺄 수 없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저마다 원리와 원칙, 진실을 앞에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신과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고 있었다. 깨끗한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사건에 의문을 품은 최반장의 후배는 억울하게 죽어가고, 다른 후배 경찰들이 최반장을 응징하지만 그건 구조에 대한 저항이라기보다는 개인적 복수에 가까운 슬픈 응징이었다. 모두가 자멸의 길을 걷는 가운데 최후까지 살아남을 자는 검사임을 보여주는 설정은 더도 덜도 아닌 2010년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어쩌면 BBK를 비롯한 숱한 비리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을 뽑았을 때 한국 사회는 부당거래의 손을 들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가져다주리라고 믿은 자본, 권력과 부당거래를 한 셈이다. 그 부당거래의 최후 승자는 권력의 최일선에 있는 검찰을 비롯한 권력자들 뿐인데도, 모든 국민이 부당거래에 동조했다. 마치 이 영화 속 인물들처럼. 영화에선 재벌도, 건설업자도, 경찰도, 저마다 자기 이익을 위해 그물의 한 코를 이루고 있는 상대를 이용했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거래였을까.

이 영화는 우리 자신의 '부당거래'를 묻고 있었다. 이명박을 찍은 우리 국민들의 부당거래와,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부당거래를. 저마다 자신이 승자가 될 수 있을 거라 믿고 거래는 이루어지지만 그 결과는 우리 자신의 실패일 뿐이다. 영화는 그 실패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그려내었다. 황정민, 류승범, 유해진 등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내용이 빨리 전개되어 작은 장치들을 눈여겨보지는 못했는데, 몇 가지는 눈에 들어왔다. 영화 초반, 사람들이 신문 기사를 읽는 모습. 경향신문이 크게 잡혔고 그 뒤에 한겨레가 보였다. 그리고 어두운 밤에 최반장과 정사장이 빌딩 옥상에서 만나는 씬이 있는데, 그 뒤편으로 딱 한 빌딩의 네온싸인 간판만 크게 잡혔는데 바로 조선일보 빌딩이었다.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사족)
이 영화를 보며 개인적으로 내 마음을 괴롭힌 질문이 있다. 중학교에서 오래 근무하다보니 중학생 수준의 글이 지겨워서 고등학교로 옮기고 싶은 욕망이 해마다 일어나는데,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올라가려는 사람은 많고 내려오려는 사람은 적어서 쉽게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돈을 받고 야자 감독하고 보충수업을 하는 것이 부당거래가 아닌가 하는 생각. 학부모, 학생, 교사, 학교 모두가 얽혀 있는 부당거래... 저마다 자신들의 이익이라 믿으면서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구조... 고등학교 교재를 다루기 위해서,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 그 미친 짓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마음의 갈등 없이 그같은 일들을 감수할 수 있을까... 중학교에선 적어도 그와 같은 종류의 양심의 가책은 없는데... 몇 년째 결론을 못 내린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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