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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 드라마

<블랙스완>, 우리 안의 검은 날개

by 릴라~ 2011. 3. 26.
블랙스완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2010 / 미국)
출연 나탈리 포트만,밀라 쿠니스,뱅상 카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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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하고 소름끼치는 영화, 그러면서도 한 인간의 내면적 깊이에 가닿을 수 있는 멋진 영화다. 백조와 흑조라는 고전적 소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점이 참신했다. 나탈리 포트만은 편집증적이고 집착이 강하며 극도로 예민한 주인공 니나 역에 정말 잘 어울렸다. (스포일러 있음)

우리가 여성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다양하겠지만 그 극과 극은 성녀 이미지와 창녀 이미지일 것이다. 전자가 성적 욕망이 투영되지 않은 순수한 소녀의 이미지라면 후자는 도발적이고 유혹적이며 그 힘으로 타인을 해칠 수 있는 팜프파탈의 이미지다. 성모 마리아가 전자의 이미지라면(대부분의 마리아상은 어머니 이미지보다는 소녀/처녀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칼리나 파르바티 여신은 관능적인 힘을 지닌 강한 여신으로 표현된다.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은 인자한 어머니상에 가까운 것 같다.)

니나는 자기 일에 헌신적이지만 자신을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일에 서툴렀고 어머니 외의 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다. 그녀는 강압적인 어머니의 '착한 딸'로서 순수하고 여린 소녀 역할에 갇혀서 한 명의 독립적인 여인으로의 성장이 멈춘 상태였다. 여인이 된다는 것은 부모의 목소리 대신 자신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가진다는 뜻이며 또한 성적인 주체로 자신을 표현해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니나에게 그것은 지난한 일이었다.

밖으로 표출되지 못한 그녀의 억압된 에너지는 결국 내면으로 향하게 되고 그것이 니나를 자기 통제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만든다. 니나는 테크닉의 완벽함에 몰두하는데, 발레단 단장은 그런 니나에게 그것은 완벽을 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감정을 억압하는 자기 통제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니나에게 부족한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개성이었고, 자신의 감정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경험해보는 자유로움이었다.

그런 니나에게도 변화의 기회가 찾아오는데 그것은 '백조의 호수'의 주인공이 되려는 니나의 욕망에서 시작된다. 착한 백조 역할은 자신이 살아온 삶 그대로여서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지만, 관능적이면서 자신의 욕망을 위해 상대방을 해치는 흑조 역할은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니나는 새롭게 관계를 맺게 되는 두 사람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있던 흑조를 조금씩 발견해 간다. 흑조에 딱 어울리는 무용수 릴리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끼고 니나는 그녀를 통해서, 그녀에게 맞서면서 자신의 몫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단장은 처음엔 그녀의 삶에 부재했던 아버지의 이미지로 등장하지만 흑조 역할에 몰입하면 할수록 니나는 그에게 연정을 느끼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환상이 나타난다. 무서운 어머니에 갇혀서 표출되지 못한 니나의 또다른 면-흑조-은 등의 상처로 표상된다. 니나는 그 상처 사이에서 검은 깃털 하나를 발견하는데, 나중에 이 깃털은 그녀의 온몸에서 돋아나 그녀의 존재론적 변신을 강렬하게 전달한다. 니나에게서 완전한 흑조의 날개가 돋아나기까지 그녀는 환상 속에서 많은 고통을 겪는다.

니나의 환상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사실 니나 내면에 감추어져 있던 것의 투영, 니나가 인정하지 못했던 자기 자신의 일부였다. 환상 속에서 자신의 배역을 가로채려는 릴리를 죽인 직후 니나는 완벽한 흑조 연기를 하는데, 이는 니나가 자신 안의 어두운 면을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영화 중에 연습실의 조명이 꺼져 니나가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맨다거나 어두운 터널 같은 곳을 지나는 장면 같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였다.

흑조 연기가 끝나고 니나는 자신이 유리로 찌른 대상이 릴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피를 흘리면서 백조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마지막 장면을 연기하는데, 떨어지기 직전 관객 석에 있는 엄마를 발견한다. 백조는 절벽으로 떨어지고 니나 역시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데, 나는 이 장면이 실제 니나의 죽음보다는 니나의 과거, 즉 착한 딸로만 존재했던, 백조였던 과거과의 결별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읽혔다.

나탈리 포트먼의 흑조가 이처럼 특별한 인상을 주는 이유는 우리들 대부분이 자신의 선천적인 힘과 아름다움과 관능을 거침없이 주장하는 것에 익숙치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여성의 경우, 자신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뼈속 깊이 인정하지 않고는 진정으로 행복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므로 매스컴이 만들어낸 획일적인 미의 이미지, 획일적 섹시함이 아니라 자신의 타고난 야성, erotic power를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것. 여성에게 있어 행복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이 erotic power를 태초의 떨림, 존재의 가장 깊은 내면과 연결된 근원적 힘으로 보았다. 창조의 힘이고 사랑의 힘이다. 한 여성이 이 세계 속에서 훨훨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검은 날개'가 필요하다. 자신과 타인을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서(니나의 선배였던 베스는 자신을 해치는 데 썼다). 그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고 그래서 삶은 우리 자신의 수많은 '변신'을 그 안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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