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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schooling

천재 시인 성진이

by 릴라~ 2011. 8. 6.


N 중학교 3학년 학생 중엔 독특한 네 녀석이 있었다. 선도부원이었는데 학교에 공부하러 오는 게 아니라 일하러 오는 것 같은 애들이었다. 웬만한 일꾼 저리 가라 할 만큼 일을 잘했다. 학교에는 도서관에 책을 옮기거나 교과서를 배부하거나 학년실로 배달되는 상자를 나르거나 하는 등 소소하게 손이 가는 일이 날마다 있는데 주사님 한 분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다. 이 애들이 선생님들 신부름을 비롯해서 학교에 일만 생겼다 하면 카트를 끌고 와서 쓱쓱 처리했다. 2학년 말쯤부터 시작하던 것이 3학년 되어서는 전교에 유명해졌다. 

수업 시간에도 수업을 안하고 일하러 가 있는 일이 종종 있었다. 자기들이 워낙에 좋아서 하는 일이라 선생님들도 묵인해주곤 했다. 왜 그리 일을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신들이 잘하는 일이라 신나서 그런 건지, 자기들끼리 재미있어서 그런 건지, 수업 빠지는 게 좋은 건지, 선생님들의 인정을 받는 게 좋아서 그런 건지......  눈이 많이 와서 학교 주차장으로 가는 오르막길이 얼어붙은 날은 얘들이 아침 일찍 와서 주사님과 같이 그 많은 눈을 다 치웠다. 다른 학생들도 쟤들은 으레 저러려니 했다. 뺀질뺀질한 도시 학생들 틈에 농촌 총각 같은 친구들이랄까.

얘들이라면 뭐든 믿고 맏길 수 있었다. 결국 졸업할 때는 3학년 전교사의 추천으로 공로상 후보에 올라갔다. 교장 선생님까지도 저런 학생들한테 진짜 공로상 줘야 한다고 해서, 공부는 별로지만 네 명 다 공로상을 받고 졸업했다. (원래 전교 학생회장 등만 받는다.)

그 중에 성진이가 있었다. 2년 동안 가르쳤는데 기억에 많이 남는 아이다. 우리 반은 아니었지만 수업 시간에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을 푸근하게 한 아이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인문계 간신히 들어갈 정도였고 맞춤법도 잘 틀렸다- 발표를 잘하거나 수업 태도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아이만이 지닌 재능이 있었다. 내가 '천재 시인'이라고 부른 아이다.

얘가 처음 눈에 띈 것은 2학년 2학기말, 시 쓰기 시간이었다(그 전까진 공부와는 담 쌓은 착한 아이 정도?). 사물이나 현상의 겉으로 드러난 부분에 머물지 않고 이면을 좀 더 표현해보는 연습을 하는 날이었다. 학생들이 쓰는 모양을 죽 관찰하는데 성진이가 시작이 좋았다. 잘 썼다고 칭찬하고 한 바퀴 돌고 다시 오니 시를 완성했다. '비를 맞는다'에서 시작해서 구름과 바람, 사람들의 추억과 바다와 싱그러운 나무를 맞는다에 이르는 아이의 풍부한 감성이 좋았다. 특히 마지막 부분 '비가 나를 만진다'가 좋았다.

3학년에 와서 보니 산문은 별로였다. 아니, 같은 내용이라도 시로 훨씬 잘 표현될 것 같았다. 그래서 제시한 과제 대신 너 마음대로 시로 써도 좋다고 하니 신나게 쓰기 시작했다. 몇 편이고 줄줄 썼다. 그 후로 상@이의 국어 공책은 언제나 진도와 상관 없이 자기가 쓰고 싶은 시로 채워졌다. 매끈하고 완성도 높은 건 아니지만 이 애가 세계와 접촉하면서 느낀 첫느낌, 첫떨림이 살아 있는 시였다. 나는 그 감수성을 높이 샀다. 교육청 영재반 아이들의 시는 관념성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별로다.

성진이 시를 읽어주면 잘난 체 하는 애들이 몇 섞여 있는 그 반 애들도 놀라곤 했다. 학교 와서 일만 하고 말투도 좀 어눌한 데가 있는 쟤가 저런 시를...하는 분위기. 나중엔 애들도 시인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쟤만 왜 긴 글 안 써도 되고 다른 것 하냐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한 날은 자기가 좋아하는 풍경을 쓰는 시간이었다. 그때 알았다. 성진이가 어릴 때 놀던 곳이 고모동이라는 것을. 이 지역이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기 전엔 포도밭과 작은 마을만 몇 있었는데 그 오래된 마을 중 하나가 고모동이다. 여기 사람들 대부분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들어온 사람들인데, 상@이는 몇몇 이곳 토박이 중 하나였던 것. 이 아이의 너른 마음은 촌에서 뛰어놀던 어릴 적부터 형성된 것 같았다.

네가 쓴 시를 읽는 게 선생님의 즐거움이라고 말하자 여름방학 끝나고 와서 그동안 쓴 시를 보여주었다. 부산으로 놀러가면서 기차 타고 터널 지나가며 느낀 것, 자갈치 시장, 여행 끝난 소회 등을 그때 그때 짤막하게 시로 써놓았다. 읽으면서 이 아이의 여행이 머리에 그려졌다. 이 아이가 무엇을 보고 무엇에서 새로움을 느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지적 탁월함은 아니었지만 자기 앞의 세상에 놀라고 감탄할 줄 아는 마음이 있었다. 자기만의 고유한 감성으로 세상을 느끼는 것. 그게 바로 시인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말의 리듬이 살아 있었다. 특별히 꾸미거나 말을 부려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리듬이 맞았다. 마치 노래 가사처럼. 일부러 익힌 것이 아니라 자기 몸에 절로 배어 있는 리듬감이었는데, 그 아이의 말에서 풀쳐나오는 그 리듬이 나는 신기했다.

이 아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이 감성을 죽 이어갔으면 했다. 그래서 졸업하면서 당부했다. 고등학교 가서도,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시를 쓰라고. 지금도 쓰고 있다고, 앞으로도 그러겠노라고 했다. 

컴퓨터 폴더에 자료를 정리하면서 성진이의 시를 두 편 발견했다. '바보라도 괜찮아'는 없다. 교내 백일장에서 상 받고 학교 축제 때 전시한 시인데 카피를 안 해둔 게 아쉽다. 읽으면서 살짝 마음이 아팠던 시인데. 이 아이는 이제 고1,  지금도 공부에 관심 없이 즐겁게 시를 쓰고 있을지. 아니면 야자와 보충에 허덕이면서 시는 까맣게 잊었을지. 이 여름에 나는 유명 시인들의 시보다는 성진이의 소박한 시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그 아이가 새로 쓴 시들이 무지 궁금하다.



비를 맞는다 / 이성진

비를 맞는다
구름의 일부를 맞는다
비로 차가워진 공기를 맞는다

비를 흔들던 바람과
비가 맴돌던 하늘과
비를 맞으며 뛰어가는
사람들의 추억을 맞는다

구름의 눈물을 맞는다
비가 되고 싶어하는 바다를 맞는다
비를 원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맞는다
비를 맞아 싱그러운 나무를 맞는다

땅에서 멀어질려고 그랬다
하지만 땅으로 돌아오는
비를 맞는다
비가 나를 만진다



고모동 / 이성진

내 어릴 적 나의 집 고모동
집에 가는 길 소거름
냄새 코막고 가는 길
형과 나 함께 나무칼
가지고 놀던 나지막한 언덕
웃으면 반겨주던 수퍼 아주머니
가을 되면 금빛 되던 논
개구리 둥지였던 논두렁
도룡뇽 잡다 무너진 우물
내 옛날에 고모동
그리운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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