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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기록/광주, 전남, 전북

아직 오지 않은 말들 - 광주 답사 여행

by 릴라~ 2014. 4. 13.

 

가을비가 살짝 흩뿌리는 날, 광주행 버스에 올랐다. 9월 초순, 대기가 아직 여름의 더운 기운을 간직하고 있어 날씨는 온화했고 내리는 비도 부드러웠다. 가는 동안 구름과 안개가 산과 마을을 휘감고 있었는데, 도착했을 때는 비구름 사이로 군데군데 하늘이 트이기 시작했다.

 

3시간 반을 달려 광주 유스퀘어에 도착해서 마중나온 친구를 만났다. 5. 18 관련 사적을 돌아보고 싶다는 내 이야기에 그는 광주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며 고맙게도 하루의 여행 일정을 세세하게 짜놓았다.

 

맨 처음 간 곳은 5. 18 자유공원이다. 당시 교직에 계셨다가 이제 은퇴하신 문화해설사 선생님으로부터 열흘간의 항쟁 일지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설명 도중 그분의 목소리가 간간이 떨렸다. 그 목소리의 떨림에서 그 시간이 그분의 마음에 어떤 의미로 박혀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가는 어떤 것을 애써 붙들고자 하는 그런 안타까움이 느껴져 마음이 살짝 아프기도 했다. 아직 5.18은 과거가 아닌데, 그때 그 사람들이 그대로 살아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5.18은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듯했다.

 

자유공원에는 당시 사람들을 가두고 재판하던 군 관련 시설을 그대로 이전해 놓았다. 판옵티콘 구조로 사람들을 감시하게 만들어놓은 유치장과 재판소의 모습은 마치 영화의 세트장을 보는 것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현장을 보는 것 같은 당혹스러움이 내내 따라다녔다. 내 나라에서 일어난 일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가 그 사건을 충분히 이해하고 소화하지 못한 채로, 충분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구나 했다. 그래서 우리의 오늘 또한 의미가 온전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자유공원 바로 옆에 김대중컨벤션센터가 있었다. 김대중홀을 보기 위해 들른 곳인데 홀은 작은 규모라 금방 둘러보았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당신에게로 시작하는, 김대중 대통령이 감옥에서 이휘호 여사에게 보낸 친필편지에 빼곡이 쓰여진 글씨들이 마음에 소로록 내려앉았다.

 

 

 

근처 모각사에서 점심을 먹고 공원 사이로 난 숲길을 한바퀴 돌자 5. 18 기념재단이 나왔다. 유네스코 등재 기념 전시관이 그곳에 있었다. 재단에서 5. 18에 대한 개인적 증언과 사료를 모으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직 자료 정리가 덜 되어 좀 엉성한 감이 있었는데, 주이택의 일기를 인상적으로 읽었다. 개인의 일기가 역사적 사료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새로웠고 그의 눈을 통해 본 당시의 풍경이 아프고 절절했다.

 

재단 옆 공원 잔디밭에는 학생 희생자들의 출신학교와 이름이 적힌 기념물이 있었고, 몇 사람의 사연도 소개되어 있었다. 사람의 목숨값이 다 같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의 죽음은 애틋함이 더욱 컸다. 그들을 잃은 부모와 가족들의 마음이,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고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세월의 마디마디가 헤아려져서 그러하리라.

 

 

공원에는 오월루라는 꽤 높은 누각도 있었다. 올라가니 광주 시가지와 무등산을 조망할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 만나는 무등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나 병풍처럼 넓은 어깨를 펴고 서 있는 모습이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 이름에서도 자태에서도 기대고 싶은 어떤 듬직함이 풍겨져나왔다.

 

오월루를 내려와 모각사에서 친구와 차 한 잔을 마신 후 시내를 벗어나 망월동에 있는 국립 5.18 민주묘지로 이동했다. 구 묘역에 먼저 들렀는데 이한열의 무덤이 있었다. 오랜만에 보고 듣는 이름이었다. 신 묘역은 구 묘역 옆 넓은 대지에 새롭게 조성된 곳인데 분향을 하고 천천히 둘러보았다.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무덤도, 기념관도 아닌, 희생자들의 사진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그 얼굴들 하나하나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무언의 질문을 담은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전남대에 들렀는데 시간이 늦어 기념관 문은 닫혀 있었다. 공사중이라 가림막을 친 구도청 건물과 유명한 금남로는 차로 지나가면서 보았다. 5.18 관련 사적지를 도는 '518번 버스'가 막 우리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하늘엔 붉은 노을이 번졌다.

 

 

 

33년 전 봄날, 신군부의 등장에 저항한 것이 오직 광주뿐이었다. 열흘만에 처참하게 막을 내렸지만, 그 열흘의 시간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빛이 없었다면 87년도 없고 군부독재는 더 긴 시간을 버텼을 것이다. 그 빛을 끄집어내지 못할 때, 그것에 우리가 합당한 언어를 부여하지 못할 때, 말들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표현되지 못한 그 말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누군가는 그 말들을 가슴에 품은 채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한 사건의 진정한 의미는 언제나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달려 있다. 말들을 확정하고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미래이다.  동시에 그 미래는 도식화되고 박제화된 언어를 넘어서 우리가 진짜 말들을 찾아냈을 때, 그 말들을 내뱉을 수 있을 때 우리에게 도래한다. 봄날은 끝났지만 말들은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 묻혀 있는 말들이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그 말들이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기를.

 

2013.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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