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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교실 이야기

중2의 학급 적응기

by 릴라~ 2018. 1. 5.



 J중학교는 도심 속 작은 학교였다. 해방 정국에 개교하여 한 때는 한 학년 열 다섯 학급인 시절도 있었으나 도심 인구가 줄어들면서 전교생 수가 급감하여 전교생이 230 여명 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가 되었다. 한 학급의 인원은 겨우 스물 둘이었다. 한 반에 마흔 명 이상인 시절에 비하면 스무 명 쯤은 거저일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행평가 등의 채점은 학생 수가 적으니 좀 수월하지만, 소소하게 말썽 부리는 학생 수는 예전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한 반에서 절반 가량의 학생이 지속적인 관심과 훈육을 필요로 하므로 품이 훨씬 많이 드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다.


2학년 A반도 그랬다3월 2일, 담임을 맡은 2학년 A반과 처음 만났을 때 생각했다. '올해 체육대회는 가망 없겠구나' 하고. A반 아이들은 다른 반에 비해 체구도 작은 편이고 정신 연령도 좀 어려보였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귀엽긴 했지만, 명민해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학습 기초가 부족한 6명의 남학생들이 무난하게 학교에 적응하는 데는 꼬박 일 년의 시간이 걸렸다. 중간고사 도덕 시험에서 우리반 남학생 11번부터 16번까지 모두 0~20점을 받았기에 내가  '독수리 6형제'라고 명명한 아이들이었다.


독수리 6형제 중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아이는 성현이였다. 성현이는 학기 초부터 주변 아이들과 끊임없이 크고 작은 마찰을 일으켰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교무실에 누군가가 자기를 집적거렸노라고 이르러 왔다. 성현이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다. 그동안 팔순이 넘은 증조 할머니와 생활하다가 증조 할머니께서 요양원에 가신 다음부터는 친할머니가 오셔서 함께 지내고 있었다.


형편이 이렇다보니 아이들이 성현이를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성현이 말로는 1학년 때 학교 생활이 매우 힘들었노라고 했다. 한 무리 아이들이 늘 성현이를 놀리고 집적거렸던 모양이었다. 성현이는 아이들이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해도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다투었고, 다른 아이들은 쟤가 왜 사소한 일에 화를 내냐는 식으로 반응하다보니 계속 관계가 삐걱거렸다.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적대적인 편에 가까운 환경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었던 성현이로서는 작은 일에도 상처를 입고 화를 낼 법 했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그런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할 만한 도량이 있을 리 만무했고, 그래서 성현이는 아이들에게 사소한 일에 '욱' 하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대인관계에서는 확실히 문제가 있었지만 성현이는 다른 면에서는 성실한 모습을 보였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상황에서도 음악 동아리에서 매우 열심히 활동하고, 방과후에는 복지센터 공부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주말에도 동아리 활동을 이어가는 등 자기 시간을 값있게 쓰고 있었다. 외동에 혼자 생활하다보니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 세련되지 못했지만,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의지가 있는 학생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조금만 친절하게 대해준다면 성현이의 마음도 훨씬 너그러워질 것 같았다. 성현이에게 집적거리는 몇 녀석들을 한번 해결해보자 마음 먹었다.


힘의 논리에 지배되는 중학교 남학생들에게 뭐가 옳고 그른지 이성과 감성에 호소하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다. 나는 학교에서 어깨에 힘 주고 다니는 몇 녀석들에게 한껏 잘해주면서 한 녀석이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3월 셋째 주가 지나갈 무렵 전교에서 제일 덩치가 큰 3반의 준석이가 성현이와 싸우고는 교무실로 불려왔다. 성현이도 덩치가 꽤 있는 편이어서 일방적으로 얻어맞지는 않고 같이 엉겨붙어 싸우려는 찰나, 주위 다른 아이들이 뜯어 말린 거였다.


힘을 과시하는 녀석들이 대개 그렇듯이 준석이도 수업 태도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늘 좋은 말로 자세를 바로잡으며 한껏 잘해주고 있던 참이었다. 준석이에게 내가 그간 '표나게' 베풀었던 친절을 일일이 짚으며 말했다.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너 어떻게 다른 반도 아니고 우리 반 애를 건드릴 수 있냐?"


준석이도 국어 선생님이 자신에게 얼마나 잘해주었는지 인정했다. 내가 그렇게 의리에 호소하자 준석이는 죄송하다고 다시는 성현이를 건드리지 않겠노라고 했다. 나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다짐을 받은 뒤에 벌을 받을 지, 앞으로 정현이에게 잘해줄 지를 물었다. 준석이는 잘해주겠노라고 했고, 나는 뭘 잘해줬는지 반드시 내게 보고하라고 당부했다. 준석이에게 잘해줄 때마다 상으로 초코파이를 하나씩 주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인간의 이성을 신봉해온 나는 사람을 '파블로프의 개' 취급하는 것이 싫어서 학교에서 간식을 동원해서 아이들의 행동을 이끄는 일은 그간 결코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 다시 중학교에 내려온 지 딱 반 년만에 나는 평생의 신념을 한 칼에 버리고 사춘기 남학생들에겐 당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무슨 김태희처럼 예쁜 것도 아니고, 아이들과 호흡이 딱딱 맞는 이십대 교사도 아니고, 내 말 한 마디에 아이들이 딱딱 움직여주리라는 것은 과대망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평범한 중년 여인으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드디어 주제 파악을 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당근을 날마다, 미친 듯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준석이는 약속을 지켰다. 그 다음 날부터 매일 정현이에게 잘해줬다며 한 가지씩 보고를 하고 초코파이를 얻어가곤 했다. 뭘 잘 해줬냐고 물으면 녀석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성현이에게 오늘 먼저 말을 걸었어요." 라는 식이었다. 황당했지만 나는 기꺼이 초코파이를 주었다. 


더 재미있는 일은 그 다음부터 일어났다. 그로부터 며칠 지났을까 전교에서 제일 말썽인 녀석들 몇이 점심시간마다 내게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선생님, 저도 성현이한테 잘해줬는데요." 


뭘 잘해줬냐고 물으면 "축구할 때 성현이한테 패스해줬어요." "성현이가 찬 축구공에 맞았는데 보복하려다가 참았어요." "성현이 인사를 받아줬어요." 하는 식이었다. 


그때 알았다. 아이들이 얼마나 성현이를 무시했는가를. 그 아이들에게는 '잘해준다'는 기준이 내 관념과 전혀 달랐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계속 더 잘해주라고 초코파이를 주고 또 주었다. 그로부터 두 달쯤 지났을까 성현이를 괴롭히는 학생은 전교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전교에서 힘깨나 쓴다는 학생들이 성현이를 건드리지 않으니 다른 아이들도 자동으로 평정된 것이었다. 


성현이는 부모님이 안 계셔서 위클래스에서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고 있었는데, 상담 선생님께서 성현이가 많이 성숙해졌다고, 특히 2학년에 올라와서 학교 생활이 너무 즐겁다고 하더라고 하셔서 안심되었다. 그렇게 성현이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말끔히 정리되고 나니 성현이도 우리 반 아이들 속에 조금씩 스며들 수 있게 되었다. 평소 성현이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 그 해는 방과후에 아이들과 어울려 축구도 하고 우리 반 남학생들과 친하게 된 것이다.


2학기 중반에 성현이가 갑자기 몸이 아프다고 조퇴한 일이 있었다. 동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으니 큰 병원에 가라고 하고 검진 결과, 폐 근처에 종양 같은 게 보여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성현이는 그 때 일을 국어 공책에 아주 자세히 적었다. 나는 그때 수학여행 준비로 병문안을 가지 못했는데 우리 학교 남학생 예닐곱 명이 병원을 찾아갔다고 한다. 성현이는 친구들이 와주어서 너무 기뻤다고, 처음으로 사는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종양은 다행히 양성이었고 성현이는 다시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두 종류의 학생들이 있다. 학생 본인이나 가족이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을 경우에는 문제를 해결하가 쉽지 않다. 장기간의 전문적인 상담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학생과 가족이 그만한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현이의 경우처럼 학교에서의 호의적이지 않은 주변 환경이 문제인 경우는 해결이 쉽다. 교사가 그 환경에 개입하여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가 직접 변화를 만들어줄 수는 없지만 변화가 좀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줄 수는 있다. 우리는 환경이라고 하면 물리적 환경을 먼저 떠올리지만 가장 중요한 환경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 곁에 있어야 아이들이 좋아진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들 속에서 하루종일 생활하면서 그런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위 사람들이 우호적일 때 아이들은 비로소 자신을 펼쳐나갈 수 있다. 더러 좌충우돌하곤 하지만 성현이는 한 해 동안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세울 수 있었고,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기쁨도 맛보았다. 이런 경험이 축적될 때 아이들은 자신을 삶속에서 튼튼히 세워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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