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이는 전학생이었다. 수민이가 학기 초에 전학 왔을 때 J중학교 3학년 담임들은 모두 긴장했다. 수민이가 직전 학교에서 사고를 쳐서 전학을 왔기 때문이다.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 퇴학이 없기 때문에 심한 말썽이 생기면 다른 학교로 전학을 보낸다. 그러다보니 이 학교 저 학교 전전하는 학생도 가끔 있다. 폭탄 돌리기도 아니고, 적절한 해결방식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큰 사건은 언제나 해당 학생의 전학으로 종결된다.
수민이가 우리 반이 아닌 1반에 배정되자 나는 속으로 살짝 안심을 했다. 담임을 맡아보면 그렇다. 평범한 다수의 아이들에게는 일 년 내내 잔소리 할 일이 별로 없다. 말썽쟁이 한두 명이 날이면 날마다 교무실을 시끄럽게 한다. 말썽쟁이가 한 반에 네다섯쯤 포진하면 그 해 담임은 수명이 단축되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한 해가 어서 빨리 끝나 아이들을 무사히 다음 학년의 담임에게 인수인계할 날을 고대하게 되는 것이다.
수민이는 처음에는 그럭저럭 적응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몸집이 있고 조금 뚱뚱한 편인 수민이는 학교 피구선수로 뽑혀서 연습을 하게 되었는데, 피구대회가 있는 6월까지는 피구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별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다. 문제는 피구대회가 끝난 다음부터 터졌다. 공부에 전혀 취미가 없던 수민이는 피구라는 몰두할 대상이 사라지자, 다른 학생들을 집적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건의 기본 방정식은 이렇다. 예를 들어 A라는 여학생이 수민이에게 B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다. 그러면 수민이는 그냥 듣고 말아야 하는데, 들은 내용을 B는 물론이고 B와 친한 아이들에게 전달한다. 그러면 화가 난 B가 A에게 와서 따진다. A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형제가 적은 요즘 아이들에겐 친구가 예전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놈의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있다. 옛날 같으면 학교에서 말썽이 좀 있어도 집에 가면 잊어버린다. 어른들이 다 계신 시간에 집 전화로 친구를 바꿔달라고 하여 낮의 싸움을 연장할 만큼의 집요함을 지닌 학생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하룻밤 자고 다음 날 학교에 가면 갈등은 현저히 약화된다. 그러다보면 그럭저럭 시간은 흘러간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어디서든 카톡과 페이스북을 하기 때문에 학원이나 집에 가서도 학교와의 연이 끊어지지 않는다. 밤새도록 카톡으로 싸우기도 하는데, 문자로 주고받는 욕설은 서로에게 치명적이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별 것 아닌 작은 다툼으로 서로간에 골이 깊어져서 상처를 입는 것이다.
수민이는 학급에서 벌어지는 작은 다툼을 큰 싸움으로 만드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그저 친구들이 한 마디 스쳐가는 말로 한 것을 확대해서 전달하면서 감정 대립을 만들었다. 대체 쟤가 왜 저러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수민이는 자기가 다툼의 단초를 제공해놓고는 아이들이 자기를 미워한다면서 교무실에서 큰 소리로 울고 혼자 분에 못 이겨서 학교 못 다니겠다고 고함을 치곤 했다.
그럴 때면 수민이 눈가의 아이라인이 번져서 눈 주위가 시커멓게 변했다. 수민이의 심리적인 불안감이 덕지덕지 바른 화장을 통해 표현되는 것 같았다. 수민이는 맨 얼굴로는 절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이 아이가 일으키는 다른 문제에 비한다면 혼자 화장하는 것 정도는 봐주는 게 나았다.
1반 담임 정선생은 충청도 남자였다. 나 같으면 열 받아서 까무러칠 순간에도 정선생은 충청도 남자의 온유한 기질을 십분 발휘하여 느리고 안정감 있는 말투로 수민이를 차근차근 설득했다. 그때마다 나는 감탄하곤 했는데 그런 정선생의 인내력도 한계에 도달한 날이 왔다.
요즘 중학교에는 체육시간 말고 따로 스포츠시간이 있다. 2학년 전체가 팀을 나누어 스포츠를 하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이 전부 체육관에 가 있다 보니 한두 명이 몰래 대열에서 이탈하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수민이는 그 시간에 몰래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수민이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주변을 뒤진 스포츠 강사 선생님한테 딱 걸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분의 대처가 조금 아쉬웠다. 수민이가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움직이지 않으니 강사 선생님은 학교에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수민이에게 약속해놓고는 따로 학생부에 알린 것이었다. 수민이는 왜 약속을 어기냐고 체육관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한바탕 소란을 피우다가 교무실로 불려온 참이었다.
정선생이 이제 너하고만 이야기해서는 안 되겠다고, 어머니 학교 오셔야겠다고 말을 꺼내자마자 수민이는 폭발하고 말았다.
"선생님이 뭔데 엄마를 불러요? 엄마 오면 전 죽는단 말이에요."
하며 수민이는 수업시간에 담배를 피운 자기 잘못은 간 데 없고 지금 이 사태의 모든 책임을 어머니를 부르겠다는 담임에게 전가했다. 정선생은 수민이가 그러던 말던 수민이 집으로 전화 다이얼을 눌렀고 수민이는 학교 못 다니겠다고 소리소리 지르더니, 허락도 받지 않은 채 3학년 1반 핸드폰 가방에서 자기 핸드폰을 꺼내더니 그대로 교무실을 뛰쳐나갔다.
내가 '어떡하죠?' 라는 시선을 정선생한테 보내자 정선생은 평소와 다른 굳은 표정으로 그냥 내버려두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오냐오냐 달래고 붙잡아서 애 행동이 저 모양이라고. 그냥 가게 내버려두라고. 자기가 가봤자 어딜 가겠냐고.
당시 교무실엔 나와 정선생밖에 없었다. 나는 정선생의 반응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걱정을 누를 수가 없었다. 노파심에 나는 결국 수민이를 잡으러 밖으로 달려 나갔다. 씩씩거리며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수민이 팔을 붙드는 데까진 성공했는데 이 녀석이 어찌나 힘이 센 지 그 녀석의 걸음까지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어디서 그런 괴력이 나왔는지, 수민이는 나한테 한 쪽 팔을 잡힌 채로 거침없이 걸어나갔다. 오히려 내가 수민이에게 끌려가는 형국이었다. 별관 2층과 1층 계단을 다 내려와서 본관 앞에 이르러서도 나는 수민이를 제지하지 못했다.
본관 앞에는 운동장이 있었다. 운동장 옆으로 지나가는데 마침 우리 반 아이들이 체육 수업을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멀리 있는 아이들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S.O.S 신호를 보냈으나 모두 멀뚱멀뚱 쳐다볼 뿐 아무도 도우러 달려오지 않았다. 나중에 물으니 무슨 상황인지 분위기 파악이 안 되었다고 했다.
교문 앞에 다다랐을 때 소식을 들은 학생부장과 다른 교사 네다섯 명이 달려나와서 함께 수민이를 붙잡았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수민이와 이야기하겠다고 상담실에 데리고 가고 수민이도 교사들이 여럿 달려오자 쪽수에 눌렸는지 순순히 따라가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다들 내게 고생했다고 한마디씩 했다. 밥 좀 많이 먹으라는 덕담과 함께.
3학년 교무실로 돌아오니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한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으면서 난리가 났다. 국어 선생님이 질질 끌려가는 거 봤냐고. 학교 밖까지 끌려갈 뻔 했다고. 나는 "왜 보고만 있었어? 의리 없는 것들!” 하면서 눈을 흘겨주었다.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수민이도 실은 누군가 붙잡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말 뛰쳐나가고 싶었으면 내 손길을 뿌리치고 달려 나가기에 충분할 만큼 수민이는 힘이 셌다. 하지만 수민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교문을 향해 돌진하면서도 내가 자기 팔을 놓치지 않을 정도의 힘의 균형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었다. 교무실에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히스테리를 부리던 그 아이도 저 혼자 밖으로 나가는 것까지는 내키지 않았던 열여섯 소녀였던 것이다.
지금 중년 이상의 어른들은 학교를 억압적인 공간으로 기억하지만 요즘 중학생에겐 전혀 그렇지 않다. 학교는 어쩌면 가장 만만한 공간이다. 인문계고는 내신과 입시로 교사에 대한 기본적 존중이 있지만 중학교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자기 감정을 한껏 폭발시키는 아이들이 해마다 늘어난다. 이것이 학교가 그래도 되는 곳이어서 그런 건지, 심리적으로 힘든 아이들이 많아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막무가내로 때를 쓴다든가, 갑자기 고함을 지르거나, 갑자기 욕을 하고 화를 내는 등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번은 교사 서넛이 달려들어도 의자를 던지며 난동을 부리는 학생 하나를 제어 못해 119를 부른 일이 있었다. 이 학생의 경우는 약물 치료를 비롯하여 더 전문적인 처방이 필요한 경우였다.
상당수의 아이들은 한동안 그렇게 날뛰다가도 시간이 흐르면서 안정을 찾아가기도 한다. 수민이도 그런 경우였다. 졸업을 한 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전보다 훨씬 여유로운 표정으로 학교를 찾아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때로는 시간만이 약이구나 했다. 그럴 때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아이의 심리적 문제는 그 전의 몇 년 혹은 십여 년간 누적된 것인데 주로 가족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여학생의 경우는 밖으로 한껏 히스테리를 표출하다가도 학년이 바뀌면 평정을 되찾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어쩌면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는 아이들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 일 년 동안 그 아이의 히스테리를 날마다 겪고 받아주어야 하는 그 반 아이들과 담임에게는 그 일 년이 말 그대로 ‘인고의 시간’이 된다. 하지만 담임교사도 학교도 이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 미국의 경우 학교장이 문제 학생을 유급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한국의 중학교는 학생을 제재할 수단이 없다. 어린 학생들의 짜증과 분노를 매일같이 감당하는 일은 담임교사에게 그 어떤 업무보다 벅찬 일이고, 교직에 대한 회의가 들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보육’과 ‘교육’은 다르다. 학생이 배움의 주체라면, 학부모는 돌봄(보육)의 주체이며, 교사는 가르침(교육)의 주체이다. 중등학교는 ‘보육기관’이 아니라 ‘교육기관’이어야 하지만, 지금 중학교는 교육이 아니라 ‘보육’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지 못하면 사회적 돌봄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학교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를 한두 시간만 돌보아도 진이 빠질 때가 있듯이 교사의 육체적, 심리적 체력에도 한계가 있다. 학생들의 보육을 감당하는 만큼 교육에 쏟아야 할 에너지가 남아나지 않는다. 하지만 권재원 교사가 지적하는 것처럼 지금 당장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학교와 교사가 버려둘 수도 없다. 보육의 요구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교육과 보육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지금 중학교가 처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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