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정훈이(가명)는 다리를 쓰지 못한다. 그래서 늘 휠체어를 타고 생활한다. 정훈이의 학교생활을 돕는 사회복무요원 선생님과 함께. 이 분이 교문에서 정훈이를 인계받아 하교할 때까지 돕는다. 점심시간에 식사를 날라주고 같이 식사하고 수업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함께 한다. 대학생이다보니 아이들이 형처럼 잘 따라서 학급에 같이 있어도 어색함이 없다.
문제는 수련활동이었다. 대구시내 중1들은 모두 야영이나 수련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텐트 치고 밥 해먹는 야영은 1박2일이지만 수련원 시설에 입소하는 수련활동은 선착순에 밀리면 2박3일이다. 우리 학교는 다행히 수련활동 1박2일에 당첨. 정훈이는 수련활동 참가를 희망했는데 학교에선 정훈이가 잘 때 사회복무요원 선생님과 둘이서 방을 쓰기를 원했다. 화장실 가는 문제도 있고 남학생들이 장난치다가 혹여 사고가 날까 염려해서였다.
학교의 염려도 이해되고 정훈이도 그래도 좋다고 했지만 같이 자는 게 재미인데 이 녀석만 따로 재우자니 고민이 되었다. 우리 반 남학생들이 다른 반에 비해 순한 편이고 사회복무요원쌤도 자신이 왔다갔다 하며 잘 살피겠노라 해주셔서 학생들 방을 쓰는 걸로 결정했다. 다행히 아무 사고 없이 돌아왔고 정훈이도 아이들과 재미나게 지내서 잘한 결정이다 싶었다. 사회복무요원 쌤께도 넘 감사하다. 이 분이 1박2일간 정훈이를 잘 케어해주신 덕분에 무사히 돌아왔다.
수련활동 끝날 즈음 이 분이 자기가 학생일 때는 몰랐는데 인솔자로 따라와보니 학생 인솔이 보통 일이 아니라며 2박이었으면 선생님들 너무 힘드셨을 거라 한다. 나는 두세 시간은 잤는데 텐트였으면 한잠도 못 잤을 것이다. 수상체험 등의 프로그램도 괜찮고 학생들에겐 즐거운 추억이지만 안전사고 등의 염려로 학교엔 너무 큰 부담이 되는 게 이런 행사다. 게다가 다같이 일박이일이면 몰라도 예산을 쓰기 위해 어느 학교는 이박삼일이라니.
그래도 이번엔 날씨가 좋아 힘겨움이 덜했다. 태풍 뒤라 대기가 깨끗해서 온 사방이 맑고 환했고 한국의 가을이 이렇게나 아름답구나, 코스모스 가득한 낙동강변 풍경 하나하나가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겨울, 봄, 여름, 세 계절을 떠나 있다가 복직, 우리 땅의 가을이 피부에 스치는 감촉만으로도 달콤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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