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사람이 때와 장소에 따라 상반된 행동방식을 보일 때 우리는 놀란다. D고에서 근무하던 첫 해와 둘째 해, 나는 그런 색다른 경험을 했다. 동일한 학생들이 일 년만에 생활 태도가 완전히 바뀌는 모습을 본 것이다. 공고다 보니 신입생의 입학 성적은 별반 차이 없었고, 2, 3학년은 그 전 해와 같은 학생들이었다. 교사들도 공립학교다보니 해마다 구성원이 좀 바뀌긴 했으나 교무실 분위기는 비슷했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새로 부임한 학교장의 학교운영 방침뿐이었다.
내가 부임한 첫 해에는 A교장이 맡고 있었다. 공고는 학교평가 항목이 일반고와 다르다. 학생들이 자퇴를 많이 하지 않아야 학교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A교장은 학생들이 아무리 무단조퇴, 무단결석이 많아도 학생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사실상 '퇴학'이 사라진 셈이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의 생활 태도가 엉망이었다.
나는 신입생 1학년을 맡고 있었는에, 처음에 우리 반 아이들은 내가 예상했던 것에 비하면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의 무기력한 분위기는 금새 아이들에게 전파되었다. 입학하고 세 달쯤 지났을 무렵, 나는 교실에 들어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그간 지각이 몇 명씩 늘 있었지만, 그 날은 거의 절반의 학생들이 아직 학교에 오지 않은 것이다. 그 교실 풍경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났다. 중학교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아니 상상도 못한 풍경이었기에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나는 가슴속에서 무언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교무실로 돌아와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2교시가 끝날 무렵 끝까지 가기 싫다고 버틴 두 명을 제외하고는 대충 오긴 왔다.
2학기에는 분위가가 더 엉망이었다. 학교가 학생들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학생들은 무단조퇴를 서슴없이 했다. 그리고 어느 화창한 가을날, 옆반 5교시 수업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갔는데, 학생들이 열 명 이상 도망치고 없었다.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 게 아닌가?', '이게 무슨 학교인가?' 그 해 내내 내가 마음속으로 되뇌었던 질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출석부에 무단조퇴로 체크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기가 막힌 심정에 수업이 끝나고 옆 동료에게 '이거 국가인권위원회에 신고해야 하는 사안 아니냐?', '학교가 이래도 되나?' 하고 흥분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우리 둘만 호들갑을 떨었을 뿐 공고에 오래 근무했던 선생님들의 반응은 그저 미지근할 뿐이었다. 그 해 내내 나는 무단지각, 무단조퇴, 무단결석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아침에 학생 찾는 전화만 안 해도 학교 다닐 맛이 날 것 같았다.
그 다음 해, B교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학교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B교장은 공고에 오래 근무했던 베테랑으로 학생들의 생활 습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B교장은 학교평가 점수에 연연하지 않았다. 교칙을 따르지 않는 학생들은 가차없이 '자퇴'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출결 관리는 교감이 직접 나섰다. 3일만 연속으로 결석하는 학생이 있으면 교감에게 보고하도록 했고, 일주일만 결석하면 교감이 직접 학부모와 면담하여 학교를 다니기를 희망하지 않는 학생은 자퇴 수순을 밟았다. 학교에 다니고 싶으면 결석하지 말아야 했다.
학생부도 새로 힘차게 출발했다. 교장은 학생부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밀어주었다. 학생들과 래포가 좋았던, 전공 과목을 담당했던 삼십대 초반의 이선생이 학생부장을 맡았고, 그의 후배 박선생이 기간제 교사로 들어와 학생부 일을 함께 했다. 박선생이 복도를 걸어가면 학생들은 절로 부동자세가 되었다. 몸집이나 분위기가 '마동석'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듣자하니 일부러 덩치 큰 박선생을 데려왔다고 한다. 이 두 분이 학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하면서 사소한 일에 반항하던 학생들이 줄어들고 학교에 차차 기강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보며 나는 박 선생 스타일의 교사가 학교에 5명만 있으면 학생들 생활 지도는 문제 없겠구나 했다.
학생부는 매일같이 학생들을 살폈다. 점심을 다 먹을 때쯤이면 항상 가방을 메고 오지 않거나 지각하거나 문제가 있는 학생들 명단이 메신저로 담임에게 전송되었다. 방과후에 강당에 남아서 지도를 받아야 할 학생들이었다. 만약 3번 이상 남지 않고 도망을 가면 선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같은 문제로 선도위원회에 3번 올라가면 다음에는 퇴학이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이 도망가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이 규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들은 3월에 일찌감치 자퇴를 했다. 학교를 다니기로 마음먹은 학생들은 규칙을 지키기 시작했다. 그 전 해에는 전교생 절반 가량은 책가방을 메지 않고 등교했는데, 이 해에는 모두 책가방을 메고 등교했다. 지각생도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5분 정도 지각이었다. 1교시 지나고 학교 오는 게 예사이던 학생들이 이렇게 달라질 줄은 나도 몰랐다.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있긴 했지만, 무단으로 학교를 빠지는 일만 없어도 학교가 훨씬 차분해졌다. 방과후에 남는 학생들도 점차 줄어들었다.
학생부장인 이 선생이 학생들이 형처럼 따를 만큼 학생들에게 신망이 두터웠기 때문에 학생부에 대한 불만은 크게 없었다. 이 선생이 어떤 사람인지는 졸업식의 미담이 말해주었다. 내가 이 학교에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당시 이 선생이 3학년 담임이었다고 한다. 졸업식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학생회장의 신호에 따라 학생들이 의자를 뒤로 밀고 이 선생에게 작별인사로 다같이 큰 절을 올렸다고 한다. 요즘 어떤 학교에서도 일어나기 어려운 사건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이 선생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진심어린 애정을 베풀었는지 그저 짐작할 뿐이었다.
기본 생활 습관을 학생부에서 지도하니, 담임 교사 노릇도 훨씬 수월해졌다. 예전 같으면 담임 교사는 학생들의 잘잘못으로 일년 내내 학생들과 입씨름을 하기 여사였는데, 이 해에는 학생이 지도를 따르지 않으면 "너, 학생부 갈래?" 한 마디면 학생들은 금새 "아, 선생님,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하며 금새 자신의 행동을 철회했다. 담임 선에서 해결 가능하다 싶은 문제는 너그러이 넘어갈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학생들은 학생부에 알리지 않은 사실 그 자체로 담임에게 고마워했다. 작년에는 학년말에 내가 맡은 학생들과 하도 실랑이를 해서 거의 '웬수'가 될 지경이었는데, 이 해에는 학생들과 큰 다툼 없이 지나갔다.
물론 학업성적이 낮고 기본 생활 관리가 안 되는 학생들이 많다보니 여전히 학교에는 끊임없이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전 해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 해에는 적어도 '학교라는 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가 '학교평가'만 신경쓰느냐, 학생들을 지도할 의지가 있느냐에 따라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해였다. 안타깝게도 공립학교는 교사들이 4년마다 이동을 하고, 학교장이 바뀌면 또 모든 것이 달라진다. 몇 년간 잘 잡아놓았던 D고의 분위기는 요새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고 한다.
최근 다른 공고에서 근무하는 동료 서 선생으로부터 한숨 나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학교에서 모 학생이 여교사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했다고 한다. 두세 달은 몰카가 그 자리에 있었던 모양이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찾았지만, 학교에서는 직원들에게 함구를 시켰다고 한다. 학교평가 때문이었다. 교감이 학교평가 때문에 해당 학생을 퇴학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고등학생이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한 것은 명백한 범죄이고, 경찰에 고소해야 할 사안이었다. 해당 학생은 법적으로 처벌 받고 성범죄 관련 교육도 이수해야 한다. 즉, 학교가 교육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경찰이 범죄를 수사하고 마땅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사안인 것이다. 학교에서 이 일을 유야무야 넘어가면, 몰카를 설치한 학생은 자신의 행동이 사회적 범죄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교정을 받을 기회도 박탈된다. 그러면 사회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성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 학생의 미래를, 그리고 그 학생에 의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학교평가'와 자신의 승진을 이유로 이 일을 덮는 선택은 하지 못할 것이다. 교육계가 이토록 병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비단 교육계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도덕성보다는 자기 이익과 실적에 사로잡힌 것 같아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 막막한 느낌이었다. 우선적으로는 사건을 덮기에 급급하도록 학교 현장을 몰아가는 교육청의 '학교평가'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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