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입학식 바로 다음날이었다. 만기가 되어 새로 옮긴 학교였는데, 첫날부터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깜짝 놀랐다. 학생들이 자기 교실 없이 매시간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J중학교는 교과교실제 시범학교로 교육청 예산을 지원받고 있었는데, 일주일 정도 적응 기간도 없이 수업 첫날부터 학생들이 가방을 멘 채로 온 학교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예컨대 1학년 1반이라는 이름이 적힌 교실은 조례 시간에 출석을 확인할 때, 그리고 7교시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종례를 할 때 잠깐 모이는 공간에 불과했고, 각 교실은 국어실, 사회실 등으로 쓰였다. 점심시간에도 자기 교실로 가지 말고 5교시 수업할 교실에 미리 가 있으라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지도했다. 전교생의 사물함은 로비 공간을 크게 확장해서 모두 거기에 있었다.
학생들이 안정된 자기 공간 없이 마치 떠돌이처럼 온 학교를 왔다갔다 하는 모습은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자기 교실도 자기 책상도 없었다. 교실이 마치 대학 강의실과 같은 셈인데,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는 정서적으로 안정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무시한 처사로 여겨졌다.
게다가 교과교실제의 원래 취지와도 안 맞았다. 자기 학급이 아니라 교과교실에서 수업하는 이유는 교과교실이 교과수업에 최적화된 교육환경이기 때문이다. 국어실 같으면 국어수업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구비하고 토론이나 팀티칭 등 다양한 방법의 수업이 가능한 환경을 갖추는 것이다. 즉 교사 및 학생이 그 교과 수업에 잘 녹아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 장소가 교과교실로서 교사가 그렇게 환경이 구비된 자기 교실을 하나씩 가지는 것이 본래 의도이다. 음악실이나 미술실, 과학실을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교실이 부족해서 교사에게 교과교실을 주는 것은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교과교실제를 본래 취지에 맞게 운영해도 학급과 담임 개념이 있는 한국 현실과 안 맞는 문제가 생기는데, J중학교는 그저 일반 교실을 교과실로 쓰고 있으니 이동은 왜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교과교실제 이전에도 음악, 미술, 체육은 음악실, 미술실, 체육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영어와 수학은 수준별 수업을 했기에 분반하여 이동수업을 하고 있었고, 과학도 과학실에서 이루어졌다. 자기 교실에서 수업하는 과목은 국어, 사회, 역사, 도덕 정도에 불과해서 학생들은 하루 수업의 절반 정도는 특별실에서 수업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과교실제’라는 명목으로 한 시간도 빠짐없이 쉬는 시간 10분 동안 이동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수업 시간에 늦게 오는 학생들이 점차 생겼다. 자기 교실이 없으니 늦게 오는 학생이 있더라도 어디 있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상습적으로 늦는 학생도 있었다. 작은 학교니 망정이지 큰 학교면 대혼란이 일어날 판이었다.
각 교실은 그곳의 주인이 없다보니 점점 쓰레기장이 되어갔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 교실일 때도 학교 비품을 함부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자기 교실이 아니니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책걸상이 부서지는 일이 더 잦아졌다. 한 마디로 교실 관리가 전혀 안 되었다.
담임들도 난감할 때가 많았다. 3월은 학생들이 이름을 익히고 새학년에 잘 안착하도록 집중적으로 신경을 기울이는 때다. 쉬는 시간에 불러서 이야기할 때도 많다. 그런데 학생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이면 늘 방송이 울려퍼졌다. 1학년 2반 OOO는 얼른 교무실로 오라는 호출이었다.
더 심각한 건 그룹에서 소외되는 학생들에 대한 돌봄의 문제였다. 자기 교실이 있어도 그런 친구들은 있게 마련이지만 교실에 있는 시간이 아예 없으니 그 학생들의 어려움이 더 커졌다. 학생들은 여럿 무리를 지어 이동하기 마련이고 혼자인 친구들은 더욱 소외되었다. 담임교사가 쉬는 시간에 교실을 관찰할 수 없으니 왕따나 괴롭힘을 살피기도 더 어려웠다. 쉬는 시간에 사물함에 전교생이 모이다보니 타학급 혹은 타학년 학생들과의 불필요한 갈등과 부딪힘도 생겼다.
암만 생각해도 내가 하루 종일 보는 모습은 너무 비교육적이었다. 학생들은 늘 산만했으며 학교는 늘 정신없이 시끄러웠다. 학생들이 온종일 가방을 메고 다니는 모습도 안타까웠다. 교장에게 학생 생활지도의 문제를 조목조목 이야기했지만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학생들의 일상생활이 아니라 행정의 효율적 집행에 국한되었다.
문제의 실마리는 다른 데서 풀렸다. 신입생들이 대체로 순한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 관리가 안 되어 한 학기가 끝날 무렵, 여러 명이 얽힌 대형 학폭 사태가 터졌기 때문이다. 교감은 이래서는 앞으로 더욱 힘들어질 거라 생각했고 교장을 설득했다. 당시 한 달이나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메르스 사태’를 핑계로 학생들이 2학기부터 자기 교실에서 수업하도록 했다. 예체능과 영어, 수학, 과학 과목은 원래 특별실 수업을 했으므로 교육청에는 여전히 교과교실제를 하는 것으로 보고했다.
현장에는 이렇게 실적을 위해 졸속으로 이루어지는 사업이 너무 많다. 현실을 충분히 시간을 들여 관찰하고 문제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해결을 모색할 만한 여유가 현장에는 없다. 각종 제도가 우리 현실의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에서 들어오지 않는다. 행정을 맡은 사람들이 새로운 실적을 위해 도입한 경우가 많다. 외국에서 그러한 제도가 생긴 본래 목적과 취지를 보지 않고 겉만 흉내 내서 각종 문제가 생긴다.
지금 우리 학교의 행정적인 틀은 일제강점기 이후 그대로 내려온 것이다. 일본이 만든 기본적인 틀에 서양의 각종 교육방법을 무분별하게 이식해서 서로 아귀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학교교육 자체가 완전히 너덜너덜해졌다. 교과교실제만 갈팡질팡한 것이 아니라 학교교육 자체가 갈팡질팡이다. 교직의 승진제도, 교장이 행정을 전담하지 않고 교사가 교과, 생활지도, 행정업무를 모두 담당하는 것, 입학식, 소풍, 졸업식 등 일련의 학교 행사가 모두 일본 메이지시대의 유산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 단단한 전체 틀 위에 교과교실제, 자유학기제, 진로교육, 창체(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이 얹혀 있다. 학교는 각종 행사로 너무 바쁘고, 시험도 너무 자주 있다. 기존의 것을 없애지 않고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추가된다. 학기당 2회의 지필평가를 줄이지 않은 채(서울은 1회라 한다) 수행평가와 서술형평가가 추가되니 학생도 교사도 죽어난다. 그만큼 교실 수업의 내실은 약화된다.
우리가 선망하는 북유럽의 모든 교육적 성취는 학교교육에서 수업을 제외하고 다 버린 데 있다. 교사는 수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들 나라의 교사도 늘 바쁘다. 다만 우리처럼 행사와 잡무로 바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수업 과제에 피드백을 하는 일 등으로 바쁘다. 수업을 해보면 안다. 교실 수업만으로는 배움이 정착되지 않는 것을. 교실에서 학생들이 이야기하고 제출한 과제를 교사가 수업 외 시간에 들여다보고 다음 시간에 거기에 대한 피드백을 줄 때 배움이 깊어진다.
1990년대 이래 학교교육의 위기가 이야기된 지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 땜질식 처방에서 벗어나 학교교육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때라고 생각한다. 학교교육을 새롭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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