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문화의 '하류화'를 실감하게 된다. 몇 명의 패널이 나와 사적인 이야기, 친구들과 까페에서나 할 잡담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 공적인 시각, 지식이나 교양은 찾아보기 어렵다. 명백히 중류가 아니라 '하류'를 지향한다. 물론 그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고소득층으로 편입되겠지만 말이다.
중고등학생들을 봐도(대학생은 내가 접하지 않으니 잘 모른다), 하류화가 보편적인 듯하다. 예전에는 학생들끼리 싸울 때나 욕설하는 모습을 봤는데, 지금은 모든 종류의 학교에서 학생들의 욕설은 '일상 언어'가 되었다. 연예인에 대한 관심과 선망도 훨씬 많아졌고, 텍스트보다는 유투브 영상을 보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지식이나 기술을 꾸준히 습득해서 전문성을 갖추기보다는, 유투버로 떠서 쉽게 돈을 벌기를 바란다. 물론 실제로는 유투브 세계도 연예계와 같아 치열한 경쟁을 뚫은 소수만 성공할 수 있는 구조인데 말이다.
학생들이 '자기다움'을 지향하는 방식도 상당히 획일화되었다. 한국처럼 '공부'가 아니라 '성적'에 목숨을 거는 분위기에서, 학교 학습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학생들은 여학생들의 경우, '화장'에 목숨 걸거나 아이돌의 '춤'에 빠져들고, 남학생들은 게임에 몰입한다. '화장'은 학교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제인데, 고교의 경우는 포기하고 단속하지 않고, 중학교는 하다 말다 한다. 화장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아이들이 '개성'을 드러내는 통로가 화장밖에 없다는 것, 겉모습에 집착하는 방식으로만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청소년들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가 문제이다.
이 책 '하류사회'는 전국민이 중류 의식을 지녔던 고도성장기를 지나 계층화가 진행되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다양한 통계 자료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계층화는 정확히 하류화이다. 2005년에 출판되었는데, 지금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 또한 고도성장기에서 정체기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드는 생각. 일본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그 사회 고유의 병을 앓고 있지만, 그것을 성찰하는 책이 끊임없이 나온다는 점이 한국과의 차이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대안을 만들어가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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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1960년대에는 TV가 없는 가정을 중류라고 말하지 않아다. 그러나 지금은 하류도 DVD 플레이어와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물건의 소유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하류가 반드시 가난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면 하류에겐 무엇이 부족할까? 그것은 의욕이다. 중류가 되고자 하는 의욕이 없는 사람들, 중류에서 내려온 사람들 혹은 떨어진 사람들, 그들이 바로 하류이다. p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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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류화 시대에는한정된 부유층에 액수가 큰 것을 파는 유럽형 모델보다는 새롭게 증가하는 중간층에 싸고 좋은 물건을 대량으로 파는 모델이 매상증가와 이익에 도움이 되었다. pp30
'중'이 감소하는 트렌드 속에서 '중'을 대상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상'을 대상으로 판매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매상도 이익도 증가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중류화에서 계층화로 향하는 트렌드 이동은 지금까지의 비즈니스 모델을 무효화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요구한다. p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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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도시의 노동자계급이 된 젊은이가 갑자기 여유로워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재 소득이 낮더라도, 매일 성실하게 일하면 앞으로 소득이 많아지고 생활수준도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럴 경우 일에 대한 의욕도 솟아난다. 요시나가 사유리와 하마다 미츠오의 영화는 그러한 젊은이들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고도성장기에는 낮은 계층의 사람일수록 희망과 가능성을 많이 가질 수 있었고, 높은 계층의 사람일수록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권리가 축소되었다. 때문에 구체적인 개별사례를 차치하고 전반적으로 봤을 때, 희망격차가 축소된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는 미래에 소득이 증가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과, 기대할 수 없는 다수의 사람들, 오히려 소득이 줄어들 것이라 예상되는 적지 않은 사람들로 분화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었던 상승에의 희망이, 현재는 한정된 사람들에게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개인의 자질과 능력이 아닌 부모의 계층에 의해 규정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즉 희망을 가질 수 있을지의 여부는 계층격차로 결정된다. 이렇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계층과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계층이 분화되고, 그 계층이 고정되고 있다는 것이 야마다의 '희망격차론'인 것이다.
가령 소득격차가 확대되어도 앞으로 그것을 축수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면, 희망격차는 확대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좁힐 수 없는 격차라고 생각하게 되면, 희망격차는 확대될 것이다. pp10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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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남편만이든, 부부합계든, 세대의 소득이 최저 500만 엔을 넘어야 결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자가 사치스러워졌다고 할 수도 있다. 옛날처럼 결혼해서 둘이 열심히 일하고 차차 부유해지려는 여자는 없어졌다. 결혼의 시작에서부터 부유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여자뿐만 아니라 그 부모도 그것을 바라고 있다. p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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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젊었을 때는 부모 곁에서 살다가 나중에 결혼해서는 부부 둘이서 살고, 아이가 생기면 되도록 부모 곁에서 사는 것이 '하'가 되지 않는 가장 안전한 생활방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보수적이긴 하지만, 실태를 살펴보면 역시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패턴인 것 같다. p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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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해 확실히 여성의 삶이 다양해졌고 결과적으로 아이가 없이 부부만 단둘이 사는 가정도 증가되는 등 가족형태도 다양해졌지만, 반드시 행복의 형태까지 다양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우리 사회가 과도기에 놓여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상황에서는 가장 계층의식이 높고 생활만족도도 높은 경우가 바로 부유한 남자와 전업주부, 아이로 구성된 가정이고, 그 다음이 아이가 없이 부부만 사는 부유한 가정이다. 미혼이든 기혼이든, 혼자 사는 사람이든 패러사이트든, 아이가 있든 없든, 전업주부든 맞벌이든, 모두 같은 계층의식과 만족도를 가지고 있을 만큼 다양화된 상황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p14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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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1979년에는 자기 능력에 대한 신뢰감이 높은 학생일수록 더 높은 학력을 추구했지만, 1997년에는 신뢰감이 높은 학생일수록 높은 학력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또, 출신계층이 낮은 학생에게만 보이는 경향이라 할 수 있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 것보다 지금의 생활을 즐기고 싶다'고 하는 '현재지향'적인 가치관이 강한 학생일수록, 자기가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동시에 '아득바득 공부해서 좋은 학교와 좋은 회사에 입사해도 장래의 생활에는 큰 차이가 업다'고 하는 '성공에 부정적인'인 가치관을 가진 학생일수록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감이 강하다고 한다.
결국, 출신계층이 낮은 고등학생일수록 학교와 학습 이외에서 자신의 능력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자기 지향'과 '자기실현감각'으로 바꿔서 읽는다면, 하류일수록 자기다움의 지향이 강하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교육자가 아니므로 학교 이외의 곳에서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느끼는 젊은이가 증가하는 것이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로 서브컬처에 자신이 유능하다고 느끼는 젊은이들 가운데에는 앞으로 우수한 만화가와 애니메이션 작가, 음악가가 될 이들이 많을 것이라 기대되기 때문이다.
단,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자기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느끼지 않는 고등학생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들은 학교 이외의 곳에서 취미를 찾고 하위문화를 통해 못다 이룬 꿈을 계속 꿀 것이다. 능력이 없는데도 언제까지나 꿈만 꾸며 거기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은 확실히 문제이다. (...)
그러나 앞으로 성장이 이어질 거라는 보장은 없다. '자기만을 지향'하며 살아가면서도 경제적인 안정과 사회적인 지위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이 프리터와 니트로 끝날 위험성이 농후하다. 때문에 그것이 사회에 주는 악영향에 대해서도 틀림없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pp16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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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다움을 크게 지향한다는 것이 반드시 자기다움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기다움을 지향하는데도, 실제로는 생각만큼 개성을 실현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것으로 인해 생활만족도가 떨어질 것이다. 더불어 낮은 소득은 계층의식 또한 저하시킬 것이다. (...) 자기다움을 지향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지나치게 자기다움만 찾다보면, 계층의식과 생활만족도 양쪽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p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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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프리터 등 비정규직은 자기답게 일하기 위한 선택임에는 분명하지만, 소득 상승을 막고 결혼 기회를 줄어들게 하며 나아가 생활만족도도 떨어뜨리는 선택이기도 함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불안정하고 불만족스런 선택이 '자기다움'이라는 가치관에 대한 대가라면, 우리는 과거 30년 이상 동안 사회의 주류적인 가치관이 된 '나만의 개성'이라는, 마치 파랑새와 같은 관념을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취급해야 할 것인가. 또한 이미 그 파랑새의 포로가 된 단괴주니어세대 이후의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어려운 문제에 당면하고 있는 것이다. p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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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연구의 권위자인 정신과 의사 사이토 타마키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높고 낮음이 젊은이들에게 승자와 패자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높은 사람은 보다 좋은 곳에 취직을 하고 보다 높은 소득을 받아, 보다 좋은 조건으로 결혼을 하고, 그 결과 보다 높은 계층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자기다움만을 고집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피하고 사회에 적응하기를 거부하는 젊은이는, 결과적으로 낮은 계층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p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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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계층의식별로 비교하면 '상'일수록 독서, 원예, 음악감상, 요리 등의 비율이 높은데, 비교적 전통적이고 전업주부적인 항목이 많이 선택된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하'일수록 음악 콘서트에 간다는 응답이 많은데 이는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이외에도 악기연주가 많다.
또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그림 그리기, 일러스트 제작, 춤, 무용 등 서브컬처계의 취미가 많다. 한마디로,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앞서 설명한 가리야 교수의 설과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하'일수록 서브컬처적인 취미로 나만의 개성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p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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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인 스즈키 겐스케는, 앞으로 벌어질 일본사회의 양극화 속에서, 대중은 '일시적인 잔치'를 통해서 '내적으로 행복한' 상태(=카니발)를 유지해가지만, '객관적으로는 착취당하는 것이고 결국엔 버림 받을 것'이라며 그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자기다움으로 알고 즐기는 하류는, 말 그대로 카니발화되는 사회를 상징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스즈키의 풋내 나는 이원론에 찬성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적으로 행복'하지만, '객관적으로는 착취당하는 것이며, 결국엔 버림 받을 것'이란 상황이 꼭 잘못된 것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것은, 내적으로도 객관적으로도 불행한 상태보다는 나은 것이다. (...)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취당하는 현실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어찌해볼 방법이 없어, 어느 정도는 내적으로 불행할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 정도의 불행쯤은 일시적인 잔치로 여기거나 다른 무언가를 통해 적당히 견뎌낼 수 있는 내공(능력)을 쌓아가는 것이다.
다만, 내가 약간 염려하고 있는 부분은 스즈키도 지적하듯이, 일시적인 잔치조차도 월드컵 축구 등의 오락 이벤트적인 미디어를 중심으로 너무나 장치화되고 관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내적으로 불행한 인간이 그 불행을 자신의 힘으로 해소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대형 미디어 이벤트에만 의존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pp181-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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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를 결정짓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커뮤니케이션에 서툰 아이들은 일찌감치 자기 자신을 '패자'로 분류해 버린다. (...)
도쿄대학 조교수인 교육사회학자 혼다 유키는 젊은이들의 라이프스킬(생활의 기술)을 분석한 결과, 학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기 의견을 남에게 잘 설명하며', '모르는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높다고 말한다. p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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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계층의식의 차이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지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불경기 속에서 취직전선을 뚫은 신입사원은 확실히 학업도 우수하고 유학경험도 많고 엘리트의식이 강하다고 한다. 그러나 하는 일 중에는 하수구 뚜껑 세일즈, 심야탐방 취재 같은 것도 있다. 그런 고된 일을 이러한 엘리트들이 할 수 있을지, 일반 대중의 심리를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한다.
최근의 신입사원은 사립초등학교 입학시험이 일반화된 세대의 최초 세대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선택받은' 사람들, 자신과 똑같은 계층의 사람들밖에 사귀어본 경험이 없는 젊은이가, 사회에 등장한 것이다. p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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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지 중에는 오쿠타마에서 약간 히피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가 있다. 둘 다 재미있는 사람이고, 아내는 대단히 착한 사람이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재능이 있다. 실은 일류대학을 졸업한 남자이다.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간혹 책을 내지만, 아주 개성적인 책이다. 그러니까 아마 수입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부부에게 요즘 아이가 생겼다. 당연히 아이는 의무교육만을 받고, 학원도 학습지도 아무것도 이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부모가 원래 그런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가 히피라고 해서 아이도 히피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모르는 것이다. 부모가 엘리트라고 해서 아이게게 엘리트가 되는 인생을 강요하지 못하는 것처럼, 부모가 '나만의 인생', 즉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해서,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해서 아이에게도 그러한 가치관과 인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부모는, 그리고 정치와 사회는 모든 아이들에게 다양한 인생의 선택지를 보여주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히피 부모와 아이에게도 앞으로 '국제적인' 사람으로서 세계에서 활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pp22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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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와 70년대는 청년 문화가 꽃핀 시기였다. 어째서일까? 그것은 바로, 젊은이들 자신에게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시 지방에서 도쿄와 같은 대도시로 몰려든 수많은 젊은이들의 서로 다른 가치관이 서로 부딪치고 융합하면서 폭발력을 가진 문화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런 뜻으로 보자면, 태어날 때부터 도쿄의 교외 주택지에 있는 중류 가정에서 성장한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끼리 마주쳐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킬 가능성을 축소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른바 '세계의 축소'인 것이다.
인터넷의 등장은 먼 지역 사람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는 넓은 세계를 좁혔다는 의미에서 '세계의 축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인터넷이 현실세계에서 직접 다른 사람과 접촉할 기회를 줄이고 행동반경을 축소시킨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결국, 그렇잖아도 좁은 일상세계가 더욱 축소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우물 안 개구리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세계를 향한 창은,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바보의 벽'이 되기도 한다.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넓은 세계가 좁아졌다는 사실만 믿는다면 바보라는 것이 요로 다케시가 말하고 싶은 것일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끼리만 만나고 있기 때무에 모두 평등하고 모두 중류라고만 생각하지, 같은 세대 속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
미국의 교외소비문화를 날카롭게 비판한 영화 '트루먼쇼'에서 주인공인 트로먼이 충돌한 시해븐의 벽도 바로 '바보의 벽'이다. 쾌적한 인공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자기들끼리 사는 세계에 벽이 있고 벽 너머에 진짜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깨달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천국과 지옥'처럼, 시타마치(아랫마을, 평민이 사는 마을) 강가에 있는 동네에서 언덕 위의 대저택을 우러러보면서 사회의 모순을 느끼고 사회를 고민하는, 그런 기회도 젊은 시절에는 필요할 것이다.
베를린의 벽은 하루 밤 사이에 쌓였다. 그러나 모두가 그 존재를 알아차리고 없애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바보의 벽'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쌓인다. 그리고 쌓여도 아무도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히려 벽 속의 쾌적함에 탐닉한다. '바보의 벽'은 '하류의 벽'인지도 모른다. pp25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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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민 역시 격차를 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숫자가 감소하고 있다. 오히려 격차의 확대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열심히 해도 열심히 안 해도 똑같은 '결과불평등' 사회보다는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람이 없는 격차사회 쪽을 국민도 선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p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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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같으면 계층이 높은 사람보다 낮은 사람이 밤낮 구별 없이 일했다. 그러나 현재는, 계층이 높은 사람일수록 열심히 일하고 낮은 사람일수록 일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다고 하기보다는 애초부터 직업이 주어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p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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