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코스3 송악산에 오르며 - 제주올레 10코스 송악산은 화산 폭발로 생긴 104미터의 나즈막한 오름입니다. 높진 않아도 반도처럼 솟아서 동쪽 남쪽 서쪽 바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동으로는 산방산과 형제섬, 남으로는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송악산에서 바라보는 절경은 그래서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저 역시 한참을 머물었답니다. 한 잔 술이 없어도, 바다에 취하고, 바람에 취하고, 해지는 쪽으로 무리지어 핀 야생 들국화에 취하고, 지는 햇살에 취하고, 이 모든 세계 앞에서 말없이 감동하게 되는 곳. 그래 그런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끝이 없습니다. 수만년 전 폭발한 작은 분화구는 지금도 야생의 꿈틀거림을 간직한 채 바다를 향해 의연히 서 있었습니다. ... 그대가 만일 이곳에 온다면, 동서남북 거침없이 불어오는 바람과 이 드넓은 세계 속에서, 절.. 2009. 11. 29. 우리는 '바다'로 간다 - 제주올레 10코스 살면서 바다를 그리워한 적은 별로 없다. 차를 몰며 가끔 이 길 끝에 바다가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거나, 갑갑할 때 바다를 떠올린 적은 있지만, 그것은 실체로서의 바다가 아니라 막연한 이미지에 가까웠다. 가까운 감포나 포항에 회 먹으러 더러 들렀고 부산에도 자주 갔지만, 그 바다가 내게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저 북쪽의 강원도 아야진 해수욕장에서 만난 맑은 물과 백사장이 기억에 남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바다는 상상 속의 풍경 한 컷 정도일 뿐, 독립적인 대상으로 내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롬복에서의 스쿠버다이빙은 황홀했으나, 그것 역시 잠깐의 마주침이었을 뿐, '바다' 그 자체가 내게 어떤 의미를 드러낸 건 아니었다. 바다의 소리에 귀기울이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내가 그리워한 것은 .. 2009. 11. 4. 낯선 곳의 아침 - 제주올레 10코스 낯선 곳에서 맞는 아침은 시간의 다른 차원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다르게 지각된다. 잠에서 깨어날 때 피부에 닿는 공기의 질감이 다르고 창으로 비쳐드는 햇살의 강도가 다르고 차창을 열면 만나는 풍경의 색감이 다르다. 아침 밥맛이 다르고 식후에 마시는 차맛의 깊이가 다르고 하루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단 일박일지라도,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이 주지 못하는 시간의 깊이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여행지에서 맞이하는 모든 아침은 그래서 '세상의 첫 아침'이다. 이 아침의 신성한 기운이 좋아서 가끔 누구도 이 공간에 들여놓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예전에 누구와 여행할 때도 문득 스쳐가는 생각에 나 스스로 놀란 적이 있다. 상대방이 알면 섭섭하겠지만 이 아침을 홀로 만끽하.. 2009. 7. 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