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코스3 비밀의 숲, 곶자왈 - 제주올레 11코스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어느새 눈으로 바뀐다. 이런 날씨에 걸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올레 11코스 곶자왈 입구, 신평리에 내렸다. 당분간 식당이 없을 것 같아서 곶자왈 입구 편의점에서 라면을 시켰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있는데 뒤따라 들어온 한 청년이 자신이 시킨 김밥을 절반 잘라 준다. 사양해도 계속 권해서 감사히 먹었다. 편의점을 나서니 눈보라가 그새 물러나고 햇볕이 환하다. 연말은 대개 조용히 보내는 편인데 올해(아니 작년)엔 왠지 일출을 꼭 보고 싶었다. 애초에 마음에 담아둔 곳은 마라도였다. 먼 길 운전할 필요 없이 바로 앞에서 한 해의 지는 해와 새로 떠오르는 해를 한꺼번에 맞이할 수 있는 곳. 인파로 붐비지도 않을 테고. 새해까지는 며칠 여유가 있.. 2010. 1. 13. 역사를 초월한 진리는 없다 - 제주올레 11코스, 정난주 마리아묘에서 모슬봉을 내려와 길은 다시 마을과 마을, 밭과 밭 사이로 한참을 이어진다. 그 길 끝에 정난주 마리아묘가 나타났다. 십년 전쯤 제주 성지순례 때 와본 적이 있다. 그땐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몇 시간걸은 끝에 지친 다리로 도착하니, 글귀 하나 하나가 마음에 스며든다. 그 몇 시간의 걸음이 내 귀를 열어준 것 같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할까. 그래서 순례가 필요한 걸까. 정난주 마리아는 황사영의 아내다. 그녀의 어머니는 신앙의 선조 이벽의 누이였고 정약용 형제들이 그녀의 숙부였다. 신유박해 때 남편 황사영이 백서 사건으로 능지처참을 당하고(황사영 백서의 내용이 과연 정당한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1801년 정 마리아는 두 살 난 어린 아들과 함께 귀양길에 오른다. 그녀는 제주도에, 아.. 2010. 1. 8. 섯알오름에 드리워진 역사의 그늘 - 제주올레 11코스 세월이 흘러도, 시간이 지나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아픔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폭력의 흔적이다. 그 가운데 가장 끔찍한 것은 홀로코스트, 대학살. 수십만을 죽음으로 몰고간 킬링필드, 나찌의 육백만 유태인 학살.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히틀러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여 수많은 유태인을 죽게 한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남자였다. 다만 조직의 명령에 아무 생각 없이 복종했을 뿐. 제주올레 11코스는 제주민의 삶과 역사를 생각하게 하는 길이다. 아침 안개가 내려앉은 들판 사이를 두 시간쯤 정처없이 걷다가 만난 양민 학살의 현장 '섯알오름'은 충격이었다. 4. 3 항쟁의 비극도 알고 있고 이승만 정권 때의 보도연맹 사건 등을 알고 있었지만,.. 2010. 1. 8.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