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봉을 내려와 길은 다시 마을과 마을, 밭과 밭 사이로 한참을 이어진다. 그 길 끝에 정난주 마리아묘가 나타났다. 십년 전쯤 제주 성지순례 때 와본 적이 있다. 그땐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몇 시간걸은 끝에 지친 다리로 도착하니, 글귀 하나 하나가 마음에 스며든다. 그 몇 시간의 걸음이 내 귀를 열어준 것 같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할까. 그래서 순례가 필요한 걸까.
정난주 마리아는 황사영의 아내다. 그녀의 어머니는 신앙의 선조 이벽의 누이였고 정약용 형제들이 그녀의 숙부였다. 신유박해 때 남편 황사영이 백서 사건으로 능지처참을 당하고(황사영 백서의 내용이 과연 정당한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1801년 정 마리아는 두 살 난 어린 아들과 함께 귀양길에 오른다. 그녀는 제주도에, 아들은 추자도에 격리되었다. 추자도의 한 어부가 아들을 키웠으며 그 후손은 지금도 추자도에 살고 있다고 한다.
정 마리아는 어린 아들과 헤어져 관노로 살아야 했지만 풍부한 교양과 학식으로 이웃들에게 '서울 할머니'로 불리우며 칭송을 받았다 한다. 1838년 병으로 숨을 거두자 그녀를 흠모하던 이웃들이 유해를 이곳에 안장하였다고. 운명은 그녀를 막다른 곳으로 내몰았지만 그녀는 씩씩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갔던 것 같다.
이런 삶. 십 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운 삶이었다. 그냥 훌륭하구나 했지 마음에 와닿지는 못했었다. 내가 그런 도전에 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와 맞선 적도 없었고 세상이 나를 시험한 적도 없었고 남다른 어려움을 겪은 적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지금 생각하면 내게 부족한 건 용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녀가 배를 타고 험한 파도를 헤쳐 이 머나먼 땅 제주에 도착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난주 마리아 묘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용감한 삶을 증언해준다. 신념에 찬 삶. 자신에게 닥친 사건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사건들을 몸소 겪어내는 삶. 우리는 강렬한 삶을 원하지만 강렬한 삶은 자신의 운명을 온몸으로 살아낼 때 가능하다. 우리가 겪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그 사건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우리 자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를 증명할 것이다.
우리에게 영원히 영감을 주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리의 영원성은 역사 속의 영원성이며 예수도 붓다도 예외가 아니다. 예수와 붓다가 전한 진리도 역사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것이며, 역사를 초월한 절대 진리는 없다. 진리를 인식하는 주체가 역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주체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진리가 비록 있다 해도 우리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자신의 길, 즉 개인적, 사회적, 역사적 사건들이 관통하는 그 길을 직접 살아가며 만나는 진리, 그 한 걸음 한 걸음 속에서 신성이 피어난다.
무덤 앞 넓다란 잔디밭 가운데 하얀 꽃이 두 송이 피어 있었다. 시련 속에서도 신념을 지키며 아름답게 살다간 한 여인의 고고한 삶을 이 새하얀 꽃잎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 걸은 날. 2009.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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