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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철학, 심리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 박진영 — 자존감은 삶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by 릴라~ 2019.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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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나'라는 그릇을 채우는 '내용'이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그릇 속을 더 반짝거리는 것들로 채우면 언젠가는 행복해질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들로 그릇을 채워도 쉽사리 행복해지지 않았다. 나의 내용이 아니라, 내가 나를 바라보는 '태도'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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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건강한 방법으로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건강하지 않은 방법으로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즉 높은 자존감은 자존감 추구 과정의 결과일 뿐 그 자존감 추구법이 '건강한가'를 보장하지 않는다. 높지만 전혀 건강하지 않고 심지어 장기적ㅇ로는 자신과 타인에게 해로울 수도 있는 자존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크로커 등의 학자들은 자존감의 높낮이보다 자존감을 '어떻게 추구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우리의 행복과 정신건강에 훨씬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이 낮으면 낮은 대로(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잘 못할 것 같은 일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자존감 추락을 원천봉쇄하는 경향이 있다), 또 높으면 높은 대로 건강하지 않은 자존감 추구법을 보인다.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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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리어리는, 자존감이란 좋은 인간관계나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원인'이라기보다, 삶이 어느 정도 잘 굴러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계기판 또는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또 자존감이 낮다고 해도 의기소침해지는 것 외에 어떤 문제행동을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부러워하는 건강한 자존감의 소유자들은 자존감이 높기 때문에 삶이 괜찮은 게 아니라, 삶이 이미 어느 정도 괜찮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은 거라는 얘기다. 높은 자존감 덕분에 연봉이 높고 인간관계가 좋은 게 아니라, 이미 그럭저럭 성공해왔고 인간관계도 잘 되어왔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 자존감이 높은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결국 자존감은 바람직한 삶의 '원인'이라기보다 바람직한 삶의 한 가지 결과 또는 증상에 가깝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좋게 느끼는 것(높은 자존감을 갖는 것)과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는 서로 다르며, 내가 나를 갑자기 좋게 느낀다고 해서 정말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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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재능은 중요하고, 천재적인 재능이 없다면 다가가기 어려운 영역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되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능을 극도로 요구하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직장생활을 예로 들어보면, 직장에서는 천재적인 능력이 없어서 힘들다기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지루하고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잡무 때문에 힘든 경우가 더 많다. 오직 '재능의 한계' 때문에 힘든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또한 노력을 100% 쏟는 일도 드물기 때문에, 많은 경우 온전히 능력의 한계 때문에 실패했다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보통 직장생활에서는 능력의 영역에서 문제를 겪기 전에 좀 더 일상적인 과제에서 문제를 겪게 된다. 비상식적인 상사나 클라이언트와의 일을 풀어나가는 것, 업무에서 권태감이나 슬럼프가 찾아올 때 일을 그만두지 않고 버텨내는 것, 지각하거나 결근하지 않고 매일 정시에 출근하는 것 등등. 이런 일들은 능력보다는 성격적, 정신적 강인함을 더 크게 요구한다. 

실제로 각종 직무성과 등에서 지능보다 끈기나 성실성 같은 성격 및 태도적 요소가 성과를 비슷하게 또는 더 잘 예측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0.001%의 독보적인 천재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 재능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응적인 사회인으로서의 일반적인 성공에 있어서는 타고난 재능이 전부가 아니다.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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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에도, 지적 능력보다는 귀찮은, 산만함, 흥미 없음, 걱정, 쑥스러움 등 자기통제력과 동기, 사회성과 관련된 문제들이 걸림돌로 작용하는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아마 내 IQ가 10~20 정도 더 좋아진다고 해도 여전히 귀찮고 여전히 흥미가 없고 여전히 협업에 서툴다면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 여전히 밑도 끝도 없이 나의 재능 부족만을 탓한다면, 어차피 해도 안 될 거라는 생각을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금도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 내 안의 나를 대변하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안 될 거라며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만큼 편한 건 없으니까.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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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비슷한 종류의 사건일 때 긍정적 정서이 비해 부정적 정서의 강도가 더 심하며 더 오래가고 주의도 더 잘 빼앗는 등 부정적 정서의 영향이 지배적인 현상이 나타난다. 이와 같은 현상을 부정편향이라고 한다. 즉 우리는 기본적으로 좋은 일보다 나쁜 일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우리는 10만원이 생겼을 때의 기쁨보다 10만원이 없어졌을 때의 슬픔을 더 크게 느낀다. 감각적 레벨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온도가 5도 오른 것보다 5도 떨어진 것을 더 크게 지각한다.

쇼펜하우어는 '고통'은 확실히 느껴지는 것이지만 '고통 없음'은 확실히 느껴지지 않는 무엇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목마름이나 배고픔은 확실히 느껴지지만 그것이 만족되고 난 뒤에는 그저 입 안에 음식이 잔뜩 들어있다는 느낌일 뿐 고통과 대치되는 크기의 기쁨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에어컨이 켜 있다고 해서 루루랄라 행복한 건 아니지만 꺼지면 큰 짜증이 몰려온다. 숨을 잘 쉬고 있을 때에도 숨이 마기는 고통과 정반대 크기의 기쁨을 계속 느끼는 것은 아니다. 배고픔, 목마름, 대소변이 급할 때, 숨이 막힐 때 등 고통은 구체적인데 이게 채워졌을 때의 기쁨은 두루뭉술한 만족감 정도이다.

또한 전반적으로 즐거웠던 일보다 안 좋았던 일이 더 오래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칭찬받을 땐 잠깐 좋고 마는데 욕을 들으면 며칠씩 화가 나기도 한다. 기쁨은 한 번 올라갔다가 빨리 줄어들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반면, 부정적 정서는 이런 '적응'이 비교적 덜 일어난다. 어떤 일로 1년 내내 기뻐하는 일은 드물지만 1년 내내 슬퍼하는 건 가능하다. 

또한 여러 가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섞여 있으면 주로 나쁜 일이 영향력을 크게 발휘한다. 하루 일과가 그럭저럭 잘 풀리고 계속 좋았어도 한 번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날은 재수 없는 날이 된다. 맛있는 음식에 이상한 맛을 하나 첨가하면 그 음식은 이제 맛있는 음식이 아니다. 라지 사이즈 피자 한 판에 작은 바퀴벌레가 한 마리 올라가 있을 경우 피자 전체를 내다버리기도 한다. 

사람의 성격을 판단할 때도 그렇다. 원만하고 유능하고 유머러스한데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거나 착하고 유머러스한데 능력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등, 어떤 사람을 설명하는 특성 열 개 중 아홉 개가 좋아도 한 개가 안 좋다면, 그 정보에 좀 더 무게가 실려 쉽게 안 좋은 인상을 형성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같은 단위의 긍정적 정보보다 부정적 정보의 힘이 훨씬 큰 것이다. p12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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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일이 많아도 나쁜 일에 시선을 빼앗기고 사소한 크기의 나쁜 일이 다른 좋은 일들을 전부 무시하게 만든다는 사실, 즉 부정적 사건과 정서의 힘이 강력하고 오래간다는 사실은 그만큼 '감정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좌절감이나 화 같은 부정적 정서가 느껴질 때 사실은 그것이 오경보이거나 과장된 반응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 삶에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 같고 인생에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이 느낄 때에도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느껴질 때에는 곧장 그렇게 믿어버리지 말고 혹시 내가 나쁜 일들에 유독 크게 반응한 것으 아닌지(그럴 가능성이 높다) 생각해봐야 한다.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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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어떤 신호 또는 메시지라고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행동하느냐 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넬슨 만델라에게 물었다. 26년간 옥살이를 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은 용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고. 당신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냐고. 이에 넬슨 만델라는 용기는 공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고,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바라는 행동을 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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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은 조건을 나누어 다양하고 무작위적인 자극(예를 들어 규칙 없는 나무 사진이나 의미 없는 단어의 조합)을 보여주거나 규칙적인 패턴(예를 들어 봄여름가을겨울 순으로 나오는 나무 사진, 특정 단어를 공통적으로 연상시키는 단어 조합)이 있는 자극을 보여준 뒤,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어떤 목적성과 방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또 자기 삶이 얼마나 쓸모없지 않고 중요한지, 삶이 얼마나 의미 있다고 느끼는지 등 삶의 의미감을 측정했다.

그 결과 규칙적인 자극을 본 사람들이 더 자신의 삶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공허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가 속한 세상과 환경이 이해될 때, 즉 세상이 무질서하지 않고 나름의 이치가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사람들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삶을 더 의미 있게 느꼈다. 

이런 맥락에서 연구자들은, 일상의 예측 가능하고 규칙적인 부분들, 예를 들어 아침마다 마시는 커피 한 잔, 매일 지나치는 출근길, 규칙적으로 만나는 사람들 등이 언뜻 별것 아닌 것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그것들은 삶의 의미감을 받쳐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큰 노력 없이도 예상할 수 있고 이치에 맞게 딱 떨어지는 부분들이 있어야, 삶이 탄탄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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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기본적으로 비교에 취약한 동물인데다, 친밀한 관계에서조차 자아에 대한 위협이 생기는 걸 용납하지 않는 '자아우상국가'의 원수라고 할 수 있다. 알게 모르게 비교하며 전전긍긍하고, 마음속에는 항상 관계를 잘 끌고 가려는 고민보다 나에 대한 걱정이 더 많다. '내가 더 잘나가야 하는데, 내가 멋져 보여야 하는데, 내가 더 사랑받아야 하는데...'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우리는 항상 뛰어나야 한다거나 남들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욕망을 버려도 얼마든지 스스로에게 따뜻한 말을 던지며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다.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나를 조금만 덜어내면 훨씬 행복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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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노예로 사는 고통'

바로 이것이 나와 내 인간관계를 힘들게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나의 자아가 나에게 독설을 내뱉고 저주가 되었던 이유도 내가 스스로 자아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지난 몇 년간 자신에 대한 너그러움과 자존감, 인간관계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록산 게이의 책 <헝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매일 입고 살고 있는 자신의 몸이 아름답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점점 편안하게 느껴진다고. 몸이라는 것이 아름답기까지 하며 좋겠지만 사실 몸으로서의 기능을 해주면, 그저 그 몸을 입고 사는 내가 편안할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게 아닐까?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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