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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평민 지식인의 등장 _ 동학과 서학

by 릴라~ 2020. 9. 11.

 

지난 여름 휴가에서 안동, 천안, 수원, 공주, 네 개의 도시를 만났다. 이들 도시는 모두 그 나름의 역사적 두께를 간직한 곳이어서 도시마다 서로 다른, 의미 있는 화두를 던져주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가슴 저미는 무언가를 남긴 곳이 있다면 단연, 공주 우금치다.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 최후의 격전지.

 

지금은 그곳에 우금치 터널이 만들어져서 옛 흔적이라곤 터널이 지나는 도로가의 오래된 나무 두 그루와 두리봉 정도 뿐이다. 하지만 1894년 봄, 거기만 지나면 서울이 눈앞이라고,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고, 맨몸으로 우금치를 통과하고자 했던 동학 농민군의 투혼을 생각하면 이곳만큼 역사적 무게를 지닌 곳도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기울어가던 조선에서 가장 뜨겁게 나라를 사랑했던 사람들이고, 가진 것 하나 없이 시대의 파고를 온몸으로 막아내고자 했던 이들이었다. 조선의 마지막 개혁의 불씨였고 희망이었다. 

 

오늘 역사학자 백승종 선생이 동학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찾아 읽다가 매우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동학과 서학(천주교)의 역사적 상관관계를 이야기한 부분이었다. 동학과 서학.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학은 서학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일어난 민중운동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천주교가 동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신유박해 이후로 양반들이 더이상 천주교에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되면서 천주교는 평민들의 독무대가 되었다 한다. 그리고 그들은 정약용 선생을 비롯하여 배교했던 양반들보다 몇 배나 독했고,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그 전통은 한국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바로 동학과 같은 신종교다. 천주교는 평민들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죽을 수 있다는 강한 전통을 남겼고, 그들의 단결과 비밀조직의 운영 등이 동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백승종 선생은 이후 순교자의 시성 시복 과정은 엉망이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궁금하다.)

 

기존 질서과 가치가 허물어지고, 특히 지배층의 타락이 극에 달했던 시대에 역사에 새롭게 등장한 평민 지식인, 바로 서학과 동학이다. 정약용 선생 같은 이는 신념을 포기했지만(백승종 선생은 아래 글에서 이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평민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들이 새로운 시대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19세기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피폐하고 참담한 시대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시작된 시대가 아닐까 싶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었던 평민들이 스스로 각성하기 시작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 

 

 

<정약용의 거짓말 / 백승종> amn.kr/24761

 

http://www.amn.kr/sub_read.html?uid=24761

 

www.am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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