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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비행기에서 삼백만 원을 분실한 뒤 __ 왕초보의 주식 입문기

by 릴라~ 2020. 10. 5.

아프리카행 비행기는 달랐다. 두세 번의 환승과 20시간이 넘는 긴 여정만 다른 게 아니다. 그 비행기에서 나는 거금 3백만 원을 잃어버렸다. 3백만 원이라고 해야 봉투는 얇았다. 200유로 짜리와 100달러 짜리로 환전하면 정말 몇 장 되지 않는다. 그 얇은 봉투를 열어보니 200유로와 100불 짜리 지폐는 간 곳 없고 기분 나쁠 정도로 낡아빠진, 꼬깃꼬깃한 1달러 짜리 몇 장만이 고개를 내밀었다. 

 

원래 나는 여행하면서 주로 카드를 쓰지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작년에는 르완다에 8개월 정도 체류할 예정이고 인근 국가를 여행하거나 할 때 현금이 필요할 일이 있을까봐 일부러 챙겨온 거였다. 헌데 막상 도착하니 별로 쓸 일이 없었다. 봄에 유럽에 잠깐 다녀와야지 한 계획도 귀찮아서 말았고(외국에 있으니 외국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짐), 중간에 한국에 잠깐 다녀갈 일만 생겼다. 한국 들어갈 때 이 돈을 통장에 다시 넣어야겠다고 챙겨간 것인데, 어느 분께서 꿀꺽 하셨다. 내 한 달 월급인데 ㅠㅠ

 

그간 여행하면서 비행기에서 뭔가를 한 번도 잃어버린 적이 없기에 긴장이 풀려 있었다. 나는 봉투와 여권이 든 여행용 파우치를 몸에 지니자니 장시간 비행에 불편할 것 같아서 아무 생각 없이 메고 다니는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그 배낭을 비행기 윗 선반에 넣고 쿨쿨 잠들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도 파우치 안에 여권과 봉투가 그대로 있었기에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 도둑께서 여권은 두고 돈만 가져간 거다. 그것도 내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1달러 지폐로 봉투를 채워넣으시고.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인천-도하 구간에서 잃었는지, 도하-키갈리 구간에서 잃었는지 그것도 알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세렝게티 갔을 때 1박 더 하는 건데. 돈 아끼려고 하루는 캠핑했는데, 걍 고급 롯지에 들어가는 건데. 아님 유럽에라도 잠깐 다녀오는 건데. 후회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가 얼마나 아껴쓰고 챙겨온 돈인데. D는 돈이 든 가방을 비행기 선반에 넣었다는 내 말을 듣고 기도 안 차다면서 근 한 달은 나를 볼 때마다 놀렸다. "비즈니스석 타고 오셨네요." 아, 비즈니스석이라도 탈 걸. 

 

잃어버린 3백만 원을 어디에서 찾지? 나는 내내 억울해하고 안타까워하다가 유투브에서 우연히 복음을 만났다. 다름 아닌 주식이었다. 나는 그간 개미들은 주식하면 망한다고 엄마한테 내내 들어왔던지라 생각했다. 3백만 원만 되찾고 주식을 그만두자. 그리고 존리 씨가 추천한 카카오 주식을 관찰했다. 한 주에 10만원이었다. 이게 싼 지 비싼 지 감이 전혀 오지 않았다. 돈 잃을까봐 무서워 사지는 못하고 계속 관찰만 했다. 카카오 주식은 도무지 내릴 기미가 없고 계속 오르기만 했다. 

 

10만원부터 쳐다봤는데 어느 날 보니 18만원 대로 진입해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많이 내려갈 리는 없고 혹시 조금이라도 값이 떨어지면 무조건 사야지 했다. 16만원 대로 떨어진 어느 날, 용기를 내어 10주를 주문했다. 내가 낮은 가격을 썼는지 매수가 안 되었다. 조금 높여서 또 10주를 주문했다. 역시 실패. 더 높여서 10주 주문, 매수에 성공. 그리고 3시 반, 주식시장이 파하기 전에 내가 이전에 주문한 20주도 체결이 되어 총 30주의 카카오 주식을 보유하게 되었다. 

 

곧이어 코로나 사태로 주식이 폭락하더니 13만원까지 떨어졌다. 그동안 카카오를 계속 관찰했던 터라 이 가격에는 앞으로 절대 못 산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혹시 더 떨어질까봐 두려워서 가만 있었다. 주식 입문자라서 베팅할 능력과 베짱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갑자기 떨어졌던 주식은 급속도로 원래 가격을 회복하더니 거기서 끝도 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산 16만원 대를 돌파하여 20만원과 30만원을 거침없이 통과하더니, 아 오를 만큼 올랐구나 했는데, 세상에 40만원 대까지 찍고, 지금은 조정 끝에 30만원 대다. 원래 10주 사려던 것을 실수로 딱 30주 샀는데, 초심자의 행운이 따라서 비행기에서 잃은 3백 만원보다 조금 더 되찾게 되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알았다. 코로나로 주식이 폭락했을 때 전재산을 털어서 주식을 사야 할 좋은 타이밍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당시는 공포 분위기가 있어서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30주 산 것만도 다행이고, 3백 만원 되찾은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할 텐데, 지나고 나니 욕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암튼 그렇게 해서 재테크를 1도 모르던 나는 비행기에서 거금을 잃고 주식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지난 9월, 나는 생애 처음으로 공모주에 참여했다. 카카오게임즈다. 경쟁률이 1500대 1이라 단 8주를 받았다(이것도 현금이 없어서 교직원공제회에서 며칠 대출해서. 며칠의 대출 이자는 십 만원이 안 되었다). D는 가격이 제일 높았던, 상장 3일째에 팔아서 50만원 챙기라고 했지만, 나름 처음 참여한 공모주라 애착이 있어서 팔지 않고 지금 보유 중이다. 딱 8주인데 뭐, 하면서.  

 

그리고 오늘과 내일, BTS가 속한 연예기획사인 빅엔터테인먼트 공모일이다. 이번 주식은 가격이 비싸서 진짜 한두 주 받을 것 같다(어쩌면 한 주도 못 받을 수도). 이 정도면 그저 몇 만 원 버는 거지만, 내가 워낙 금융 문맹인지라, 자본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울 겸 해서 참여할 생각이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가 다 생계를 위해서인데, 자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큰 흐름 정도는 알아야 하는데 너무 무지했다 싶다. 이러고보면 비행기에서 돈을 잃은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이상이 왕초보의 주식 입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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