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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철학, 심리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 강신주 — 인문학의 궁극적 지향은 자비의 실천

by 릴라~ 2021. 2. 14.

저자의 그간 매력적인 철학대중서들에 비하면 이 책은 좀 심심한 편이다. 하지만 인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이 사랑과 자비에 있음을 설파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저자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담긴 저서라고 봐도 좋겠다. 저자는 인문학적 시야의 핵심을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자비의 실천을 강조한 불교 사유가 예로 많이 등장한다. 고통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이 세계에 많은 폭력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겸허한 태도로 최소의 폭력을, 고통을 감소시키는 길을 모색한다. 그것이 사랑이고 윤리이다. 삶의 무상함과 덧없음에 대한 인식 또한 허무가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통로로 존재한다. 

 

그래서 저자가 생각하는 사랑은 한 공기의 사랑과 아낌으로 대변된다. 두세 공기의 사랑이 짐으로 다가오기에 진실한 사랑은 밥 '한 공기'로 다가간다. 그리고 사랑은 사랑한다는 내 마음의 강도가 아니라, 타인을 아끼는 태도의 실천이다. 비싼 명품가방을 아무 곳에나 함부로 쓰지 못하듯이, 사랑하는 이를 애지중지, 고이 대하는 것이다. 삶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되고, 행동한 것만이 우리의 삶이기에 저자는 한 공기의 사랑과 '아낌'의 실천을 강조한다. 책 제목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은 말 그대로 저자의 철학적 사유의 종착역이라고 봐도 좋겠다. 

 

전반적으로 편안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성찰의 깊이가 만만치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철학적 사유와 인식이 자비의 실천과 잇닿아 있음을, 자비를 촉구하기 위한 것임을 줄곧 강조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본질을 '아낌'으로 규정하고, '아낀다'는 순우리말에 철학적 함의를 불어넣은 점도 좋았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가족을 함부로 부리지 않고 얼마나 '아끼는가'? 자본주의가 삶의 모든 내용과 형식을 장악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는 모양새를 아프게 돌아보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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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의 울음을 기억할 것

웃음은 울음 뒤에 배우는 것

축하한다 삶의 완성자여

장렬한 사랑의 노동자여 

 

김선우 '고쳐 쓰는 묘비'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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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 퐁티는 여러모로 싯다르타의 통찰을 따르고 있다. 타타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자고. 결국 무언가를 파괴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그의 말대로 '폭력의 종류' 혹은 '폭력의 정도'를 선택하는 것뿐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선과 악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악 중에서 최소의 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폭력과 폭력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 중 최소의 폭력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메를로 퐁티의 윤리다.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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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옆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최소한 그 사람이 나 때문에 더 힘들지 않게 하는 일이다. 존재한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고통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메를로 퐁티의 '최소 폭력'의 논리가 고통에 대한 감수성에 기초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세계가 모두 고통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고통을 완화할 수는 있다. 결국 죽을 때까지 우리는 걷기 힘든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나의 고통과 타자의 고통을 동시에 최소화할 수 있는 어떤 균형을 매번 찾아내야만 하는 길, 균형을 찾는다 해도 그것이 진정한 균형인지 여전히 의문이 남는 그런 개운치 않은 길 말이다. p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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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현장에서 왕따나 이지메, 심지어 학우들에 대한 폭력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교육이 붕괴되었음을 의미한다. 정보 습득과 스펙 쌓기 등 자본주의적 경쟁을 바탕으로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탓이다. 자신의 고통과 행복에만 몰입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타인의 고통에 직면하는 성숙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성숙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자신의 고통에 대한 원초적 자각에서 벗어나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느끼는 감수성을 키우지 않는다면, 교육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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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불교에서는 '무상'이라는 가르침을 중시한다. 영원한 것, 혹은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가르침이다. 영원과 절대를 뜻하는 '니트야'에 부정어 '아'가 결합된 산스크리트어 '아니트야'를 한자로 옮긴 말이 바로 '무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교가 덧없음과 허무함을 사람들에게 유포하려고 '무상'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일체개고'의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무상의 가르침도 자비라는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낳도록 의도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나 세상이 무상하다고 제대로 아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나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상에 대한 감각이 '덧없음'과 '허무함'의 감정을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무상은 우리에게 삶의 '소중함'과 세상의 '충만함'을 가르쳐줄 수 있다.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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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이런 무상의 순간들이 의도치 않게 기억날 때가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나 더 이상 볼 수 없는 부모님의 얼굴이, 아파트를 새로 지으면서 나무가 잘려나가 지금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벚꽃의 군무가. 그 순간 우리의 얼굴에는 미소가 절로 번질 것이다. 무상한 순간들은 허무하게 망각되는, 지나가버린 순간이 아니라 '영원한 순간'이자 '절대적인 순간'으로 우리와 함께 한다.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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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는 영원하거나 불멸하지도 않고 동시에 순간적이거나 찰나적인 것도 아니다. 바로 이것이 '제법'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즉 '실상'이다. 결국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영원과 불멸이라는 한 극단'과 '순간과 찰나라는 또 다른 극단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바로 이것이 싯다르타가 말한 중도의 의미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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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아끼는 일은 힘든 일이다. 조장해도 아끼는 대상은 불행에 빠지고, 조장하지 않고 완전히 방임해도 아끼는 대상은 불행에 빠지니 말이다. 그래서 맹자는 "잊지도 말고 조장도 하지 말라"라고 말한 것이다. '아끼는 대상을 방치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해서 잘되라고 아끼는 대상에 직접 개입하지도 말라!'는 아낌의 좌우명이다. (...) 그렇지만 맹자의 이야기는 생각만큼 그리 단순하지 않다. 조장하지 않으려 하면 아끼는 대상을 잊어버리기 쉽고, 아끼는 대상을 잊지 않으려 하면 조장하기 쉽기 때문이다. p33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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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을 부처처럼 애지중지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이 자신을 부처처럼 존중하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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