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600페이지에 이르는 인터뷰집. 인터뷰어는 지승호고 인터뷰이는 강신주다.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이 두 남자의 지적이고 솔직하며 매력적인 대화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각론에서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내용도 있지만, '인문 정신'의 정수를 이처럼 현장감 있고, 설득력 있는 문체로 보여주는 책은 드물 거라 생각한다. 동서양의 다양한 철학자들을 다루지만, 그 철학의 정수를 한국 사회라는 텍스트와 나란히 들여다보고 있기에 우리 시대와 우리들 각자의 삶을 인문적 관점에서 어떻게 읽을 수 있는 지에 대한 훌륭한 안목을 제공한다. "천 년 전에도 없었고 천 년 뒤에도 없을 고유 명사"로서, 한 개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이처럼 뜨거운 한국말로 표현해낸 책을 당분간 만나기는 어려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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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이 드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예요. 중요한 것은 젊음을 어떻게 유지하고, 날카로움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의 문제죠. 세계를 용서하면 안 돼요. 나쁜 놈들이 있기 때문에 세계랑 화해하면 안 돼요. 나쁜 놈들은 나쁜 놈들이고, 도와줄 사람은 도와줘야죠. 세상은 이분법적이예요. 그걸 초월하는 순간 고상한 책이 나오고 보수적인 책이 나오는 거예요. 저는 죽을 때까지 이분법적이었으면 좋겠어요. 나쁜 놈은 나쁜 놈이라고 하고, 50, 60대에 썼는데 30대에 쓴 것처럼 읽히는, 날카로움을 가진, 칼이 무뎌지지 않은 인문학자가 돼야죠. 칼이 무뎌지면 글쓰기를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p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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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성경이랑 주석서를 많이 샀어요. 인문학자로서 꼭 해야 할 것이 종교 비판서를 쓰는 거예요. 특히 초월적 종교. 무조건 써야 해요. 인간끼리 결정을 보자는 것이 인문정신인데, 비겁하게 수틀리면 신한테 가는 것은 권력이나 자본한테 가는 거랑 똑같아요. 인간 속에서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발견하려는 단호한 용기가 인문학자에게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권력이 필요해, 경찰이 필요해, 신한테 기도합시다, 이런 것들을 거부해야 해요.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의 적은 종교예요. p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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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고수하면 상대방과의 관계가 유지되지 않아요. 내가 죽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거든요. 그리고 내가 얼마만큼 죽느냐는 내가 얼마만큼 사랑하는가의 척도인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안 그러잖아요. 스펙 따지고 '돈 좀 있나?' 이러고 있잖아요. 사랑을 하려면 나 자신이 죽고, 나 자신이 비워져야 해요. 그런데 그 죽음이라는 것이 불쾌한 죽음이 아니고 기꺼운 죽음, 더 죽으면 죽을수록 행복한 그런 거예요.
에로티시즘 담론은 이런 영역까지 포괄하는 것인데, 마광수 교수에게는 이런 강렬함이 없어요. 도덕주의와 에로티시즘 사이의 대결 구도만 있어요. 그래서 사랑의 경험이 없다고 그러는 거예요. pp. 206-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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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인의 고유한 감정을 지키는 것은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해요. 체제는, 억압적인 사회는 그걸 어떻게든 죽이려 해요. 북한에서 전당대회 하는 것 보면 사람들이 포커페이스잖아요. 억압적인 사회인 거죠. 회의할 때 하품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좋은 사회예요. '아, 지루하다'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예요. 감정이 살아나야 한다고요. 그 감정이 민주주의의 토대예요. 그 감정은 누가 못 지켜줘요. 선생이 지켜줄 수 있는 게 아니예요. (...) 자기가 표현하지 않으면 못 지켜요. (...)
사랑받으려면 자기의 감정을 표현해야 해요. 자기 감정을 표현했을 때 상대가 자기를 미워할 수 있어요. 그러면 빨리 그 인간을 정리해야 하는 거예요. 저는 누가 제 감정을 인정 못 해주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무조건 시험을 한번 해봐야 해요. 아버지한테 '나 쇼팽 들을래' 이렇게 말해보는 거예요. 전체주의적인 집안에서는 싸우지 않아요. 맨날 베토벤만 울리는 거죠. 그런데 그렇지 않은 집이라면 딸이 실연당했을 때 아버지가 쇼팽을 틀어주겠죠. 자기의 감정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한 기초 조건이예요. 그게 김수영이 얘기하는 당당함이기도 하고요. 인문학은 책을 읽든 뭘 하든 감정이 살아나야 해요. pp 208-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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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나의 발견이거든요. 책을 읽어도 나를 발견하는 것이고, 음악을 들어도 나를 발견하는 것이고, 시를 봐도 나를 발견하는 것이에요. 나의 발견으로 가야 해요. 합의한 요약, 정답으로 가면 안 돼요. 모든 글은 고통이든 기쁨이든 감정을 느낀 다음에 써야 하는 거예요. pp 209
진짜 인문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시선이에요. 시선을 틀어서 보기 시작하면서 고유성이 생기는 거죠. 인문학자의 가치는 시선의 고유성이거든요. 이미 누군가가 그 시선으로 다 봤는데 더 디테일하게 묘사해봤자 큰 값어치가 없어요. 그 사람은 안 남아요. 칸트 이후에 후기 칸트학파 철학자들이 있는데 철학사에 한 명도 안 남았잖아요. 현대 철학자 중에서 들뢰즈 같은 사람은 철학사에 남을 거예요. '차이'라는 시선은 굉장히 중요한 시선이거든요. 들뢰즈의 저서 자체가 중요해서라기보다는 그의 시선으로 우리가 현재나 미래 사회의 문제들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p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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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자기의 미래를 염려하게 되면 타인과 관계를 못 해요. 사랑을 못 한다고요. 의식이 미래로 가잖아요. '병 걸릴 수 있다'와 같이. 그런데 타인과의 관계는 현재에서 이뤄져요. 그래서 권력은 무슨 수를 쓰든지 현재의 관계를 끊어놔야 해요. 미래를 두려워하게 해야 해요. 그런데 미래는 우리의 관념 속에만 있거든요. 우리가 대하는 것은 현재잖아요. 사람을 대할 때 현재에 집중하지 않고 어제를 생각하거나 내일을 생각하면 대화를 못 해요. 사람들을 현재가 아닌 과거나 미래로 보내는 것이 권력이 개인들의 유대나 사랑을 막는 방법이라고요. 아이들이 힘들게 공부하는 거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에요. 애들이 미래만 보잖아요. 경쟁 논리의 바닥에도 미래에 대한 염려가 깔려 있는 거예요.
여기에 맞서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느낌이 주는 강한 현재성이 있어야 해요. 현재를 잡아야 해요. 현재를 잡아야 인간을 잡아요. 미래를 염려하면 사랑하기 힘들어요. 내 아이 하나 사랑하기도 힘들어요. 미래를 염려해서 생명보험, 상조보험에 가입하는 것보다 지금 아이랑 낚시를 가는 게 나아요. 살아 있을 때 재밌게 살아야죠. 권력은 그걸 못 하게 만드는 거예요. pp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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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생론은 가짜예요.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느냐의 문제로 화두를 던지잖아요. 세계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화두가 아니라. 자기계발서의 핵심은 나만 바뀌면 된다는 거예요. 세계는 한 번도 안 바뀌어요. 인생론과 자기계발서를 믿는 사람들은 나중에 자살을 해요. 우리 사회가 '쇼펜하우어 인생론'의 자본주의화된, 세속화된 버전이거든요. 열심히 자기를 계발하는 거죠. 계발하면 자본주의가 좋아해요. 노예가 되기 위해 노예적 기능을 익히는 거예요.
수양론은 확고부동한 체제를 전제했을 때 나오는 거예요. 이 세계를 개척할 생각은 못하고 자기 수양만 하는 거죠. 그러니까 체제에 당하는 거라고요. 세계를 바꾸는 것보다 나 하나 바꾸는 게 편하다는 거죠. 동양철학에서 유학 같은 담론을 보면 수양론이 엄청 발달했거든요. 억압적인 거죠. 수양론이라는 것은 자기에 대한 개조 작업이잖아요. 영어로는 셀프 컬티베이션. 뭔가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 자기 폭력이에요. 자기를 변화시키겠다는 거잖아요. 조직 생활에서 자기계발, 자기 수양 얘기가 나오는 건 조직을 바꾸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
그러니까 자기 계발은 자살과 사뭇 구조가 유사해요. 세계를 죽여야지 왜 자기를 죽여요? pp488-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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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저의 삶의 고통을 심화시킬지 항상 고민해요. 제 고통이 어느 정도 폭이 되면 그 폭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힘이 될 거예요. '넌 잘되고 있어, 잘 살고 있어'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나 더럽게 힘들게 살거든, 까불지 마' 이런 식의 위로죠. 간혹 나이는 어리지만 저보다 고통이 큰 아이를 만나면 대응을 못하겠어요. 그런데 저보다 좁으면 빤히 보여요. 어쨌든 다행인 것은 이런 고통을 대면하면서 사적인 면에서, 공적인 면에서 고통의 폭이 쌓여 나간다는 거예요. 위대한 작가들은 그 고통의 폭에서, 고통을 노래하는 거니까요. pp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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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얼굴로 사는 게 가장 이상적인 사회예요. 그런데 우리는 권력자 앞에서 자기 감정을 토로하지 못하잖아요. 억압 사회예요. 감정을 토로하지 못하는 게 억압의 척도예요. 군인 사회에서 가장 감정을 잘 토로하지 못하죠.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굳어 있어요. 페르소나만 써야 하는 사회죠. 광대처럼. ... 중요한 것은 페르소나를 약자가 쓴다는 거예요. 가부장제 사회면 여자가 더 많이 써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쓰는 건데, 그런 게 너무 강해지면 보호가 아니라 페르소나에 갇혀 버려요. (...) 사랑의 위대함은 페르소나를 벗게 해요. 정직함을 요구하니까요. 그래서 사랑하면 벗게 돼요. 벗었다가 상처도 많이 받게 되죠. pp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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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가 되면서 제가 배운 건 사람 만날 때 가급적이면 그렇게 정직하게 만나야 한다는 거예요. 인문학은 화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정직하려는 데 도움이 되는 거예요. 김수영도 사상보다 백배나 중요한 것이 정직함이라고 했어요. 정직한 사람만이 뭐든지 배우니까. 정직하다는 것은 맨얼굴이고, 동심이고, 감정을 드러내는 거니까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아요. 내 맨얼굴을 저 인간이 못 받아들이네, 이런 것도 빨리 알고요. 그러면 그 인간이랑 안 만나면 돼요. 계속 나보고 가면을 쓰라고 하는 인간들이 있어요. 그런 인간들은 안 만나야죠. pp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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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것을 관철시키려고 살 때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요. 죽을 때 얼마나 편한데요. 옳은 것을 지킬 필요가 없고, 옳은 것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게 안식이죠. 연어가 언제 제일 행복하냐면 더 이상 헤엄칠 힘이 없어서 마지막에 손을 놓을 때예요. '아, 이제는 버티지 않아도 된다.' 제대로 산 사람들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안식으로 여겨요. 제대로 못 산 인간들이 생명 연장을 꿈꾸죠. 왜냐하면 옳게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인문학은 사랑과 자유예요. 그래서 반체제적이고, 김수영이 얘기했던 것처럼 불온한 거죠. 사랑과 자유의 힘을 믿을 때 우리는 강해져요. 반대로 제대로 사랑을 못할 때, 인간에 대한 근본적 신뢰가 붕괴되어버릴 때 사적인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 관계에서도 절망이 오는 거예요.
그리고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유를 얻어요. 사랑하는 사람만이 구속이 뭔지 느끼니까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귀가 시간을 어기게 되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옛날에는 엄두도 못 냈던 사람들, 깡패들과도 싸워야 해요. 사랑을 하면 자유롭고 강해져요.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고요. 사랑과 자유가 동의어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사랑과 자유는 같이 가요. 개인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층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인문학은 사랑과 자유에 바치는 헌사예요. (...) 인문학을 평가하는 잣대도 거기에 있어요. 다른 가치들은 없어요. 인간이 죽지 않는 이상 사랑과 자유가 가장 중요하죠. 이게 마지막 말이에요. pp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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