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해 상처와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영화평론가의 영화 분석보다 훨씬 재미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반인이 관심을 갖는 것은 영화 문법에 의거한 전문적인 영화 비평보다는 우리의 다친 마음을 보듬고 살리는 일이기에. 아는 영화가 등장하는 부분은 더욱 재미있게 읽었고 모르는 영화도 심리에 대한 내용이라 잘 읽힌 편이다. 라캉의 이론, 상상계/상징계/실재계의 관계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
저자는 연구자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보여주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간 저자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문장이 다 좋다. 자신이 소화한 내용을 쓸 때는 문장이 이렇게 쉬우면서도 품격과 깊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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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의 정신분석학은 불완전한 것이 완전한 것보다 더욱 완성된 경지이며, 부족한 것이 완벽한 것보다 더욱 견고한 것임을 강조한다. 욕망의 움직임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무엇인가가 결여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 불안한 느낌들을 피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두려움과 불안을 느낄 때 우리는 진정으로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성숙한 존재가 된다. 불안을 보듬고 감싸 안아야 한다. 내 중심에 배치된 불안은 나를 변화시키고 성숙하게 만드는 보석이다. 그것은 결코 내 약점이 아니다. 불안을 견디는 용기가 모든 것의 시작이다. 이를 라캉의 언어로 바꾸자면 우리는 상상계를 넘어 상징계로 이행해야 한다. p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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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계적인 영화들은 우리의 일상이 초라해 보이도록 만든다. 힘겹게 견디고 있던 하루가 더욱 남루하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너무나 왜소하고 구차하게 느껴진다. 그 영상들이 제시하는 허상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꾸미고 바꾸어 특정한 모습이 되도록 부추긴다.
반면 상징계적인 영화들은 개인 속의 아름다움을 포착해낸다. 한 사람이 특별해지며 그/그녀가 포함된 세상의 지도를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시선이 미치지 못했던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인물들의 모습에 배인 걱정과 고통과 불안을 따라가며 우리는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상징계적 영화가 진실로 치유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실재계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 p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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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계와 상상계가 가끔 혼동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상징계, 상상계, 실재계가 사실은 한 덩어리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실재계를 구분해내는 중심 용어는 '과잉'이다. 대충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모두 진을 빼고 넘어지고 엎어진 다음 해내는 것이 아닌가? '과잉'이 없이 쉽고 편한 과정은 상상계적 허상으로 간주하면 된다.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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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동떨어진 상태에서 실재계에 포획되어 있다면 그/그녀는 일상생활 자체를 영위할 수 없게 된다. 상징계란 정답이 없는 곳으로서 우리는 그 속에서 불안을 경험하고 그 괴로움을 견디게 되는데, 만약 어떤 사람이 상징계로 편입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정신세계에서 상징계가 차지했어야 하는 공간은 실재계로 채워진다. 실재계는 상징계와는 전혀 다른 규칙으로 운용되는 세상이다. 정답이 없던 곳에 답이 생기고 상징의 체계와는 전혀 다른 법칙이 그 사람을 지배하게 된다.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신을 자청하고 이해할 수 없는 요구들을 하며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의미로 채워진다. 시계의 초침소리, 앞사람의 움직임, 가로등의 수, 떨어지는 나뭇잎 등 아무 뜻없는 것들에 의미가 부여된다. 그냥 넘기면 되는 것들이 치밀한 음모와 계획으로 해석된다. 신체 구조가 변하여 반대의 성이 되거나 특정 지시사항들을 따라야 세상이 구원된다고 믿기도 한다.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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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분석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은 신화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신화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한다. 신화는 자신 안의 에너지이다. 내 안에는 이성적으로 정의할 수 없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있으며 그 안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거대한 에너지가 담겨 있다. 바로 그것이 무의식이다. 융은 그것을 신화 또는 원형이라고 부른다. 지구의 지난 세월이 지층으로 남아있듯이 인류의 모든 기억이 우리 무의식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원형이라는 신화적 구조는 꿈속에서 특정 형상들을 빌어 나타난다. p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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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지쳤을 때 나를 업고라도 목적지에 도착해 줄 친구와 세상의 모든 지혜를 담고 있는 듯한 마법사 간달프와 나를 위해 싸우는 영웅들이 언제나 내 곁에 있다면 어떨까? "너는 할 수 있다". "너만이 할 수 있다", "네게는 우리가 있다"라고 말해주는 목소리들이 항상 우리의 귓전에 울린다면 어떤 기분일까? 백마를 탄 아르웬과 현재와 미래를 읽어내는 갈라드리엘이 항상 함께 하며 위험이 닥쳤을 때 경고하고 우리가 다쳤을 때 치료해준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분석심리학은 그것이 일상에서 가능한 일들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그 목소리들이 신화이며, 융은 그것이 무의식이라고 말한다. 무의식 속에 있는 모든 신화적인 가능성들이 꿈에 나타나 우리를 이끌어 주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 목소리들을 무시한 채 그저 외곬으로 살아간다. 융은 임상 사례들을 통해 무의식 속에는 치유적인 힘이 내재되어 있음을 확신했다. 즉 내 마음 속에 간달프, 아라곤, 아르웬, 갈라드리엘, 레골라스, 김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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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의 매력은 인간의 변화를 믿는다는 점입니다. 상상계적인 성향이 다분했던 사람이 상징계라는 불편하고 어려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어머니로부터 젖을 늦게 떼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 자란 어른이라도 정신분석의 눈으로 보면 배 부분의 탯줄이 옷 밖으로 빠져나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 그러나 가끔씩 그 중 몇몇의 탯줄이 끊어지기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몸만 커다란 아이였던 그/그녀가 상징계 속에서 진정한 어른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 후 어머니와의 관계 역시 변하게 됩니다. 상상계적인 인간이었을 때는 전적으로 어머니에게 의지했다면 상징계에 굳건히 두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는 어머니를 보살피게 됩니다. 이제는 불안을 견딜 수 있습니다.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가고 그 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모든 불가능한 것들에 도전하게 될 것입니다. p21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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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심리학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될 때 우리가 영웅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강철을 휘고 하늘을 나는 영웅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세부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만들어가는 인생의 영웅을 뜻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천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기준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보살필 수 있어야 그 후에 남도 도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의식과 무의식이 통합된 상태, 즉 자신 안에 있는 힘을 믿는 성숙한 상태에서만 변화가 가능해집니다. 자신을 '...밖에 안 되는' 존재로 비하하는 닫힌 체계 속에서는 결코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자신이 굉장한 사람인양 착각하는 것 역시 자기의 모습을 알지 못하는 미숙한 태도입니다. 자신을 이해하고 미래의 지도를 그리는 사람은 그럴수록 더욱 조심스러워집니다. p24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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