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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수업 이야기

새로운 길 '느낌 읽기'

by 릴라~ 2022. 3. 26.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 첫대목. 이 구절이 많은 아이들에게 낯설게 다가갈 줄은 몰랐다. 자기들은 횡단보도를 건너고 지하철역 지나고 고속도로 간다고. 혹시 시인이 자연인이냐고. 숲을 거니는 느낌이 궁금하다 한 아이도 있었고. 대다수가 아파트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콘크리트가 더 친숙한 세대구나 했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날마다 가는 그 길이 왜 새롭냐고. 학교 가는 길은 매일 똑같아서 지겨운데. 영어학원 가는 길은 항상 불쾌한데. 그래서 새로운 길이 아리송하다 했고, 뭔가 신비롭고 근사하게 느껴진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이 구절에서 아이들이 궁금해한 것은, 아가씨가 왜? 윤동주 시인은 모쏠인가요?

읽기를 배우는 건 자기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참고서와 교재의 ‘보편의 해석’ 대신 울퉁불퉁하고 불완전한 형태지만 자기만의 느낌과 질문으로 시작하는 읽기가 진짜다. 자전거를 배울 때 비틀거리면서 직접 타보는 것이 사이클 선수의 매끈한 경주를 보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듯이. 읽는다는 건 질문하는 것이고 질문이 소중한 이유는 그 속에 남의 생각이 아닌 자기 생각이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1938년, 4남매의 장남임에도 의대에 가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물리치고 고향 북간도를 떠나 서울 연희전문학교에서 꿈꾸던 문학 공부를 시작한 스물두 살의 청년. ‘새로운 길’은 그 시기 작품이라 맑은 고독과 풋풋한 희망이 번져나온다. 시인은 날마다 가는 길을 왜 새롭다고 말할까. 어디로 가는 중일까. 그 길에서 무엇을 만났나. 새로운 길의 도착지는 어디쯤일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게 담주 수업이라 미리 생각해보는데, 내게도 새로움이 실은 낯설었다. 한 달만에 벌써 학교가 지겨워지던 참이라서. 메신저로 날마다 쏟아지는 쪽지들, 반복되는 기안, 각종 제출자료, 코로나 증빙 서류들. 동사무소+어린이집+보건소+급식소 느낌? 3월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만 약간 기계가 된 기분.

왜 새로운 길일까.
이 길을 어떻게 새롭게 걸을까.
내게도 필요한 질문인 듯.
비 그치고 햇살 들락날락하는 봄날에 생각한다.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이는 길을.
그 길을 걸었던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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