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밤’ 수업. 다 외우라고 하니 너무 길다고 학생들이 아우성. 이럴 때 꼭 이런 거 묻는 녀석들이 있다. 대체로 남학생 농땡이.
“쌤은 다 외웠어요?”
“당연하지.”
갑자기 여학생까지 가세해 일사불란하게 외치는 중학생들~
“해보세요!!”
“다 외웠는데 안 믿네?”
아이들은 더 큰소리로 “해보세요.”
목소리 큰 몇 놈은 “틀리시면 땡~ 할 거예요.”
“알았어. 근데 선생님 다 외워서 땡~ 할 일 없을 껄~ 시작한다.”
갑자기 애들이 정자세로 고쳐앉으며 시가 인쇄된 프린트를 단정하게 잡는다. 평소 수업 때마다 더 집중적인 눈빛을 종이 위에 쏘면서.
그때 평소 까불거리는 한 녀석이 “쌤, 안경도 벗으세요.” 한다.
“왜?”
“그 앞에 꺼 보일까봐서요.”
“아이고, 의심도 많으셔라. 알았다, 알았어.”
안경까지 벗고 낭송 시작.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첫구절을 내뱉자마자 울리는 소리. “땡~”
“안 틀렸는데 왜?”
“제목 안 읽으셨잖아요. 우리보곤 항상 제목부터 읽으라 했으면서.”
다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고 신이 났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난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낭송을 끝마쳐가는데, 갑자기 온 교실을 뒤덮은 “때앵~~~~”
“안 틀렸는데 왜?”
“틀렸어요!!!!!!!!”
“어디?”
“덮어(버리었습니다)를 (버렸습니다)로 읽었어요.”
“야, 너무한 거 아냐? 선생님이 틀리는 게 그렇게 좋아?” “예에에에~~~~” 교실이 떠나갈 듯이 큰 소리.
맨앞에 앉은 여학생이 소곤거린다. “선생님, 저 남자애들 요새 담임쌤한테 맨날 혼나서 자기들이 선생님한테 땡~ 하니까 신나서 저러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물었다.
“땡이 그렇게 좋아?”
아이들이 소리지르며 “예!!!!!” 한다.
“뭐 그 정도 소원이야 들어주지. 다같이 하나둘 셋 하면 땡~하는 거다.”
“좋아요!!!” 교실이 흡사 체육대회 분위기.
“준비, 하나둘셋~”
“땡~~~”
학교가 뒤집힐 듯한 큰 소리에 시킨 사람도 놀랐다. 땡~은 오른쪽 여학생 줄에서 왼쪽 남학생 줄로 갈수록 포효와 괴성으로 변모. 앞에서 보니 서라운드가 따로 없다. 아이들도 자기들 소리에 놀라 한바탕 폭소.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흥이 넘치고 힘이 넘치는 애들을 책상 앞에만 붙들어두고 있다니… 청소년기엔 머리도 흔들고 춤도 춰야 정신이 건강해진다는 말이 맞구나..
허나 현실은 반대다. 학교 끝나고 99퍼가 학원행. 학원 가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방과후에는 학교에서 못 배우는 다양한 걸 배우고 즐기면 좋은데 또 교과학습을 반복하는 게 문제.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수업만 봐도 금욜 오후에 춤추고 기타치고 공 차는 애들이 딸랑 몇이다. 그것도 울반 반장과 옆반 반장 등 공부 좀 하는 애들이 신청하고, 교과학습이 부족하다 여길수록 더욱 교과공부만 시킨다. 이 세상엔 그것 말고도 배울 게 널려 있는데..
아는 교수님께 들으니 정신과 약 먹는 대학생들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만족 못하고 3수, 4수 끝도 없이 공부만 하는 애들도 널렸다 하고. 청소년기를 제대로 겪어내지 못한 결과다. 사람을 한 방향으로만 내몰면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난다.
청소년기는 단지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 충분히 겪어낼 가치가 있는 삶의 한 단계다. 미래에 대한 가장 값진 대비는 무엇일까. 미래에 대한 공포로 아이들을 책상 앞에만 붙들어두는 것일까. 십대의 삶을 풍부하게 경험하도록 돕는 것일까. 폭넓은 독서,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과 우정, 사회에 대한 관심, 자연 속에서 자기 존재를 느끼는 것… 이게 국민소득 4만불 시대에 그리 어려운 일일까. 지금 못하면 언제 한단 말인가.
먼 미래가 아니라 중학생인 현재, 고등학생인 현재의 삶이 넘쳐흐르도록 풍부해야 한다. 지금 경험하지 못하면 이후에도 경험하지 못하고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이후에도 행복할 수 없다.
그 결과는? 이 아이들이 자라서 중년이 됐을 때 지금 어른들과 똑같이 말할 것이다. 배운 거 다 소용 없고 부동산이 최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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