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을산에 하루 이틀 사이에 봄꽃이 한꺼번에 폈다. 날이 갑자기 더워져서이리라. 3월인데 25도를 기록했다. 진달래, 목련, 개나리, 벚꽃이 줄줄이 반기는 길. 피어나는 생명의 몸짓에 심쿵하면서도 한편으론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봄을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이 숲을 다 태워서 어쩌나 걱정이 내내 따라왔다. 의성에서 안동 넘어 청송, 영덕까지 번진 산불 때문이었다. 화마가 하회마을 입구까지 갔다는데, 청송 주왕산 입구까지 갔다는데… 거길 다 태우면 어쩌나, 어쩌나… 무서워서 뉴스도 보지 않았다. 비극을 확인하는 게 무서워서… 동물들도 다 타죽을 텐데… 숲도 동물들도 어쩌나…
작년 가을, 경주 남산 이무기능선에서 신선대 쪽으로 하산할 때였다. 호젓한 산길을 내려가며 내내 가슴 벅찼다. 아름드리 소나무들 때문이었다. 내가 어렸을 적엔 나무가 이렇게 굵지 않았었는데… 이삼십 년 흐르니 이처럼 원시림이 되었구나… 나무가 희망이었다. 앞으로 50년 지나면 이 숲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뉴질랜드 같은 데서만 보던 아름다리 나무가 가득한 숲을 우리도 갖게 되겠구나. 미래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하면서. 정치적으로는 나라 안에 좋은 소식이라고는 없지만, 이 숲이 한국의 희망이구나 했었다. 자연이 우리의 진정한 희망이구나 했었다. 하산길에 계속해서 굵직한 소나무를 만나면서 내내 행복했다. 50년 뒤 숲을 상상하면 더 행복해졌다.
그 원시림이 다 타는가 싶어 내내 마음이 아팠다. 산불로 터전을 잃고 돌아가신 분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온다는 비는 기껏 3밀리라는데… 이 화마가 언제 잡힐까. 계엄은 헌재 판결이 늦어져 울화가 치밀지만 그래도 몇 달이면 해결되겠지 싶은데, 불타버린 숲은 어떡하나. 회복에만 수십 년은 더 걸릴 텐데. 집에 있으면서도 좌불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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