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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을 적다

귀환, 유한과 무한

by 릴라~ 2025. 5. 12.

20여일 집을 비웠다. 식물들이 말라 죽을까봐 모친께 일주일에 한 번 우리집에 들러서 물 주라는 부탁을 드리고 갔었다. 모친이 갑자기 아파 서울 가시는 바람에 아무도 우리집 식물에 물을 주지 못했다. 많이 건조한 날씨에 남향 창가쪽은 볕이 잘 드니 다 말라죽었겠거니 했다.

긴 여정 끝에 집에 돌아와 깜짝 놀랐다. 베란다로 들어서는 순간, 아보카도 싹이 나무처럼 싱싱하게 자라 있었기 때문이다. 새싹 2개를 보고 갔는데 그건 훌쩍 자랐고, 소식이 없었던 마지막 화분에서도 싹이 돋았다. 언어로 표현하는 그 어떤 횐영인사보다 반가운 생명의 기지개였다.

아보카도씨가 크고 영양분이 많아서 보름 넘는 가뭄을 견뎌냈나보다. 나는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마음이 환해졌다. 마음에 번쩍번쩍 빛나는 등불이 켜진 것 같았다. 생명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이고 환희였다.

장미 화분은 흙이 많지 않아 다 죽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물을 주자 4개 중 한 개 화분은 살아났다. 나뭇가지가 푸르게 물이 오르더니 싹이 새로 돋았다. 나머지도 혹시나 살아날까 해서 기다리는 중이다. 방울토마토와 고추는 건재했다. 다 죽을 줄 알았는데 대부분 살아있었다. 그 작은 화분에 담긴 생명의 힘에 경탄했다. 유한한 피조물이 무한한 생명의 한 조각을 품고 있는 게 신기했다.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우리 모두는 유한한 존재들이다. 이 지상의 삶을 잠시 잠깐 향유하다 간다. 그런데 이 유한한 것들이 한데 모여 무한한 우주를 구성하고 지탱하고 있다. 우리들 각자는 유한하지만 이런 유한한 존재들 덕분에 생명은 영원히 지속된다. 유한한 것들 덕분에 무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덧없이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들 덕분에 우주는 무한하고 영원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졌지만 그 시간들은 모두 영원의 일부이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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