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에 김용택 시인의 작품을 읽는데 시골학교 아이들과 생활하는 모습을 이렇게 그려놓았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리밭에 오는 봄' 같다고. 그 얼굴들이 '나를 향해 피는 꽃' 같다고.
북한군이 못 쳐들어오는 것이 중2가 무서워서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예측 불가인 중2를 맡고 있던 나는 '어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역시 시인은 시인이구나', '시골 초등학생들이니까 예뻐 보이는 거겠지' 라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면서, 보리밭에 오는 봄이 얼마나 예쁜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 녀석이 묻는다.
"선생님도 이렇게 느껴보셨어요?"
순간 속으로 흠칫했다. 무슨 말만 나오면 꼭 '선생님은요?' 하고 묻는 애들이 있는데 아주 성가신 존재들이다.
"글....쎄.... 3월을 맞이하며 설렌 적은 있지만 보리밭에 오는 봄 같은 마음인 적은 없는 것 같네. 오히려 부담을 안고 시작한 적도 많고. 어떻게 하면 '보리밭에 오는 봄'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러자 한 아이가 큰 소리로 외친다.
"뭐든지 예쁘게 봐주시면 돼요."
"예를 들어?"
"자는 것도 예쁘게 봐주세요."
"또?"
"욕하는 것도 예쁘게 봐주세요."
"그래서 모든 학생들이 신나게 욕을 쓰면 아름다운 세상이야?" (농담)
까르르 주변 아이들이 웃는다.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바라는 건 단순하다. 그리고 그 단순함 속에 진실이 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건 복잡한 수업 이론도, 특별한 심리적 처방도 아닌, 자신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예쁘게 봐주는 시선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통제/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이 조직에서 교사들은 그런 다감한 시선보다는 누가 또 말썽을 일으키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바탕화면으로 깔고 아이들을 대하게 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몇 번 골치 아픈 사고를 겪고 나면 그 증상은 더욱 심해진다.
"뭐든지 예쁘게 봐주시면 돼요."
시인의 따스한 감수성을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내게는 이 말 한 마디가 '보리밭에 오는 봄' 같았다. 서로를 꽃으로 바라보는 시선, 인생에 그것보다 더 화사한 봄날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난의 시간을 거쳐 다시 인생의 봄날로 돌아가고픈 이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필요한 건 오직 이것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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