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코우라에 온 이유는 돌고래를 보기 위해서였다.
카이코우라는 야생 돌고래 투어로 유명하다.
배를 타고 인근 해역에 서식하는 야생 돌고래 무리를 직접 찾아간다.
돌고래 투어는 새벽과 오후에 각 한 차례씩 있었다.
새벽이 돌고래를 만날 확률이 더 높다고 해서 나는 새벽 투어를 신청했다.
돌고래를 보는 방법은 두 가지다.
그냥 배에서 구경하는 것과 스킨 장비를 갖추고 돌고래들과 함께 수영하는 것.
수온을 물어보니 18도란다.
오픈워터 다이버인 나는 18도의 바닷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알기에
그 말을 듣자마자 수영을 포기했다.
하지만 서른 명쯤 되는 투어 신청자 중에서 나를 포함한 세 명을 제외하곤 모두 수영을 선택했으니
서양애들의 육체적 강건함은 알아줘야 한다.
다음 날, 투어용 배는 어스름할 즈음에 카이코우라 항구를 떠났다.
그리고 동이 터올 무렵, 드디어 야생 돌고래 무리와 마주치게 되었다.
아침 바다를 가르고 내 곁에 불쑥 다가온
이 다정다감한 생명체들과의 첫만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감히 말하건대, 내가 만난 이 지상의 생명체 중에서
이처럼 생의 환희로 충만한 존재들을 나는 여태 만나본 적이 없다.
녀석들은 그들 나름대로 반가움을 표시하는 듯 우리가 탄 배 주위를 빙빙 돌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어떤 녀석은 배를 신나게 앞질러 가고,
또 어떤 녀석은 쉴 새 없이 물 위로 방방 솟구치며 공중 돌기를 했다.
한 마디로 난리도 아니었다.
가이드 말로는 그냥 재밌어서 그런다고 했다. 물이 좋고 헤엄치는 것이 그냥 좋아서 저러는 거라고.
미칠 듯이 행복한 몸놀림, 넘쳐나는 에로스....
이보다 더 아름답게 생에 대한 찬미를 표현할 수 있을까.
신이 본다면 분명 미소지을 것 같았다. 돌고래들의 춤은 살아있음에 대한 최상의 기쁨의 표현이었다.
그들의 생생한 몸짓을 보노라니 나도 바다에 텀벙 뛰어들고 싶었다.
수영 신청을 안 한 것이 비로소 후회되었다.
(내 디카가 너무 느려서 순간 포착을 할 수 없었다. 위 사진은 캠코더 영상을 캡처한 것)
돌고래 무리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 알바트로스를 만났다.
알바트로스의 비행 속도는 실로 놀라웠다.
저 먼바다 끝에서 순식간에 나타나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날아
가까이에 다가왔다가 또 금새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내 느린 디카로는 순간 포착이 불가능했다.
호수에 떨어진 돌멩이가 표면에 파문을 남기고 사라지듯
알바트로스의 자취는 그가 사라지고 나서도 하늘과 바다 사이에 투명한 곡선을 그려내면서
그 낯모를 존재를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알바트로스를 보다가 갈매기를 보면 마치 갈매기가 날지 않고
뒤뚱뒤뚱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알바트로스를 좀 더 보고 싶어 여행사에 문의하니 알바트로스 투어가 따로 있단다.
알바트로스가 자주 나타나는 해역으로 가기 때문에 돌고래 투어 때보다 관찰이 더 쉽다고 했다.
하지만 배를 혼자 빌리기에는 가격이 너무 비싸고,
4명 이상 동행을 모으고자 시도했으나 관심 있는 이가 없어서 포기했다.
카이코우라에는 이밖에도 망원경으로 별자리를 관찰하거나
말을 타고 주변을 산책하는 등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이 있었다.
일주일쯤 느긋하게 쉬어가도 좋을 것 같았다.
아쉽게도 고래는 보지 못했다.
YHA에서 만난 룸메이트는 나보다 하루 먼저 돌고래 투어에 참여했는데,
야생 고래를 봤다며 활짝 웃었다.
고래도, 알바트로스도 다음에 꼭 다시 만나고 싶다.
카이코우라를 끝으로 뉴질랜드에서의 모든 여정이 끝이 났다.
스무 날의 뉴질랜드 남섬 여행, 그리 크지 않은 섬이지만,
자연이 허락한 색색의 아름다움을 한 곳에 모두 모아놓은 것 같은 섬.
새벽 바다의 돌고래떼, 아벨 태즈만의 녹색 바다와 물개들...
3000미터급 높은 산들과, 빙하가 조각한 피오르드랜드의 자연,
쏟아져 내리던 수백 개의의 폭포, 태고적 모습 그대로의 청명한 호수의 물빛......
세상의 첫아침 같았던 깨끗한 공기, 쏟아지던 비... 그 속을 시간을 잊고 걷던 날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아름다운 자연을 함께 나눌 벗이 그리웠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여행은 YHA에서 직접 요리를 해먹으면서 움직이는 여행이기에
솔로 여행보다는 동료들과 함께 오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카이코우라를 떠나는 날 아침, 마지막으로 뉴질랜드의 일출을 보러갔다.
카이코우라는 반도여서 일출과 일몰을 다 볼 수 있다.
옅은 구름층을 뚫고 태양빛이 바다와 하늘에 번졌다.
야생의 싱그러움이 마음의 모든 서늘함을 남김없이 지워버리는 일출이었다.
이 자연의 해맑음이 우리에게 이토록 감동을 주는 까닭은 무엇일까.
남태평양의 푸른 바다 위로 솟아오른 태양은 그저 말없이 내 가슴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내 느낌의 정체를 명확히 표현할 수 없고 내가 그것들을 왜 좋아하는 지 막연한 채로,
다만 내 정신의 한 부분이 자연의 그 풍부한 인상들을 필요로 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사실만을 확인하면서,
여행의 시발지이자 종착점인 크라이스처치로 향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