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몇 페이지를 설렁설렁 넘겼다. 단단하고 빡빡한 문장들을 보다가 오랜만에 손에 잡은 동화책의 문장들이 좀 헐겁게 느껴졌다. 그런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어갈수록 나도 모르게 이야기속에 빠져들었고, 결말이 궁금해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 밖의 사건을 이야기 속에 감추어두고 살짝살짝 꺼내는 서사의 힘, 상처 입은 자를 어루만지는 따스한 시선은 역시 김려령이구나 했다.
<완득이>만큼 재기발랄하진 않지만, 다 읽고 나서 작가가 들려주는 '그 사람'의 이야기가 한층 진한 영상으로 마음에 남는다. '건널목 아저씨'와 그가 돌보아준 아이들, 태석과 태희, 도희, 그리고 작가 '오명랑' 모두가 사람의 '고운 결'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보여주는 '마음결'이 너무 곱고 따스해서 그들이 우리의 이웃이라기보다는 어떤 하늘나라의 거주민들 같았다.
그 거주민들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가슴 속에 꽁꽁 숨겨둔 이야기, 그들을 가장 아프게 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아픔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사랑 이야기이다. 건널목 아저씨는 거리의 아이들에게 카펫을 펼쳐주면서, 작가는 아이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작가의 엄마는 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면서, 이 모든 이야기들은 하나의 사랑으로 합쳐지고, '그 사람'에 대한 진한 그리움으로 귀결된다.
이 세상의 진짜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가 만났던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우리가 그리워하는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 '그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면, 혹은 곁에 있어도 '그 사람'의 존재를 잊고 있다면, '그 사람'을 다시, 새롭게 만나기 위한 여행을 시작하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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