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문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소설가로서의 그의 재능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 감각적 문체의 끝이 허무로 잏닷아 있는 점이 내 취향이 아니다. 십 년도 더 전, '칼의 노래'를 접했을 땐 그 감각적 허무주의가 일순간 매력을 불려오기도 했지만, 이후 내가 살아온 시간은 김훈이 축조해낸 정서의 세계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므로 책을 빌려준 친구의 권유가 아니었더라면 '흑산'을 집어들지 않았으리라. 18세기라는 공간이 우리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천주교 박해 과정을 중심으로, 특히 정약전과 황사영 두 인물이 역사적 격변을 헤쳐가는 방식을 중심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 내 흥미를 끌었다.
후각과 미각을 강하게 환기시키며 장면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복원하는 묘사의 힘은 여전히 대단했다. 그 감각적 호소가 문득문득 거슬릴 때도 있지만(예컨대 죽은 여인의 시신에 정약전이 자신의 몸을 넣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그런 종류의 묘사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당시 민중의 처참한 삶에 대한 묘사 앞에서 나는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론 나도 모르게 울컥하면서 슬픔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오기도 했다. 주인공은 정약전과 황사영이지만, 이들보다는 아리, 마노리, 길갈녀, 강사녀 등 하층민들의 삶의 행로가 더 깊이 마음에 박혔다. 이들이 캐릭터의 개별성을 뚜렷이 드러내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김훈은 언어를 비수처럼 사용하며 신분제가 만들어낸 구체적인 아픔들을 우리 마음에 새겨넣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그처럼 놀라운 필력에도 불구하고 김훈이 삶의 비참에 대한 미학적 표현 이상의 '정신성'을 작품 속에서 구현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훈은 정약전과 황사영이 겪었을 고뇌의 어떤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조금도 다가가지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의 고민을 읽어내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조선 후기 격변의 시대에 그들이 품었을 희망과 그 희망의 좌절에 대해 그리고 있지 못하다. 대신에 김훈이 보여주는 것은 삶의 막막함과 그 막막함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실존의 조건이다. 그것은 사방 바다로 둘려쳐진 '흑산'이 의미하는 바이기도 하다. 인물들의 내면 의식은 조선보다는 오히려 '현대인의 고독'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훈은 그 막막한 실존으로부터의 탈출로서 당대 천주교를 이해하고 있다.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세상에 대한 갈망 같은 것. 저 세상을 택한 이들은 사라져갔고, 이 세상을 택한 정약전의 삶은 흑산에서, 그 막막함 중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진다. 흑산에서도 우리는 살아야하고 또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결말은 내게 작가에 대한 연민을 갖게 했다. 이 세계에 대한 그의 묘사는 언제나 우리의 감관에 들어오는 육체성, '살'에 대한 묘사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살이 이어지고 있는 한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그에게 삶은 언제나 비애일 수밖에 없다.
그는 이 살이 처한 비참으로부터의 도피 내지 구원으로 천주교를 택한 사람들을 그려내고 있지만 나는 이러한 이분법적 도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만 명 이상의 순교자를 낳은 천주교가 이 생에 대한 부정으로서 그토록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민중의 삶은 어느 시대나 고통스러웠음을 생각할 때, 당시 천주교가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조차 물리칠 수 있도록 한 힘이 과연 삶의 처참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한 인간으로서의 그들 존재에 대한 자각이 그들을 일으켜 세운 힘의 근원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그들 자신의 존재를 세속적 질서의 관점이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김훈이 그리는 고통은 살에 파고드는 고통이며, '살'이 겪는 고통은 보편적이다. 그가 이 '살'이 주는 보편적 아픔을 넘어서 한 인간의 독자적인 정신성, 그 고통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승화하는 한 인간의 개별적인 '정신성'을 그려낼 수 있을까. 특히 그가 여성을 '살'이 아닌 고유한 정신성을 지닌 존재로 파악하는 데 이를 수 있을까. 탁월한 감각적 묘사의 능력은 그의 재능이기도 하고 그의 한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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