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서 해방 전후, 6.25 동란의 시대상을 우리에게 익숙한 '대한민국'의 시각에서가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지향했던 한 혁명가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빨치산 부대인 '남부군' 사령관이었던 이현상이라는 인물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통해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의 과정을 엿볼 수 있었고, 그 시대 많은 지식인들이 왜 남한이 아닌 북한을 선택했을까 하는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던지게 되기도 했다.
책의 서문이 인상 깊다. 저자는 원래 여순반란사건에서 우익에 의한 대량학살 사건을 조사중이었다. 그 와중에 그는 우익에 의한 민간인 학살(3000-7000명 추정) 못지 않게 좌익에 의해서도 끔찍한 학살(1200명 추정)이 저질러젔음을 발견하고는 고민에 빠진다. 그저 양쪽 모두의 잘못이라고 쉽게 단정하기엔 이 사건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고민하던 작가는 이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우연히 발견한다. 한 빨지산 생존자로부터 이현상은 여순반란 사건을 공산당 지도부의 계획과 승인 없이 개인들이 우발적으로 일으켜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을 나은 어리석은 사건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현상은 그 우발적 봉기에 한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여순반란사건의 여파로 지리산으로 숨어들어간 동지들을 버려둘 수 없어 산으로 향하고 끝까지 그들과 함께 하고, 빨치산 토벌작전이 대대적으로 전개되던 1953년에 결국 지리산에서 죽음을 맞는다. 작가는 그가 수집할 수 있는 사료는 다 모은 듯했다. 다양한 자료와 증언들, 그리고 소설가다운 이야기 솜씨를 통해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사건 전개 과정을 부드럽게 갈무리하고 있다. 그리고 한 혁명가로서의 그의 삶의 비범성을 전하고자 한다.
이 책을 다 읽고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조선조 말기 지주와 소작인의 뿌리 깊은 갈등이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에도 민족 분열의 큰 원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신분제도에서 비롯된 뿌리 깊은 계급적 갈등이 해방 정국에서 사회주의에 쉽게 동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낳은 것 같았다. 민족이 하나가 되어 외세를 물리쳐야 할 절박한 상황에서 계급적 갈등, 사상적 갈등 등 민족 내부의 분열은 더 심화되었고 이를 극복하고 민족을 통합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 큰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작가가 복원한 이현상의 행적은 그가 철저한 공산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선비'적 풍모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현상 부대는 다른 빨치산 부대와 달리 함부로 살상을 하지 않았고 민간인에게 관대했을 뿐 아니라 의경 포로들을 돌려주는 등 인간적 품위를 잃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김일성이 아니라 이현상이 세운 나라는 지금쯤 어떤 나라가 되었을까 하는 물음이 생기기도 했다.
이현상은 당시 김일성이 이끄는 북한을 진정한 조국으로 여겼다. 당시는 김일성 일당 독재 체제 및 세습 체제가 공고해지기 전이고,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이승만 정부보다는(김기협 선생의 말을 빌자면, 한 국가의 이념이 인권이나 평화 이런 게 될 수는 있어도 반공이 될 수는 없다) 북한이 더 정체성이 있는 국가 이념을 내세웠다고 볼 수 있으므로 그런 쏠림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6.25 전쟁 중 김일성은 남로당의 박헌영과 이승엽을 철저히 숙청했고 그 계열인 이현상도 평당원으로 강등된다.
더욱 슬픈 일은 6. 25 전쟁포로 협상에서 지리산 빨치산이 제외되었다는 점이다. 남한의 경우도 빨치산으로 골머리를 앓을 때라서 그들이 전쟁포로로 북으로 송환되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은 이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결국 이들은 모두 희생되고 만다. 당시 남로당이 숙청될 무렵이라서 남로당 직계인 이현상 또한 북으로 간들 무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이 몇년이나 산속에 갇혀 추위와 굶주림을 감내하며 신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들의 비참한 말로는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일제하 독립운동에 투신하면서도 살아남은 이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이념 갈등으로 인해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은 비극 중 비극이었다.
전주이씨로 왕실의 후손이기도 했던 이현상의 가족, 친척들은 이현상의 좌익 활동으로 인해 고향에서 살 수 없어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남한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북으로 가는 도중 죽거나 대부분 월북했다고 한다. 김일성은 빨치산은 버렸지만 전쟁 중 월북한 이현상의 자녀들에게는 지속적인 호의를 베푼다. 자녀들이 모두 북한에서 고위 관료로 성장했고, 이현상의 넷째딸은 외교관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행사장 안내를 맡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6.25가 발발하자 온갖 고초를 겪으며 지리산에서 북한으로 올라가는데 성공했던 빨치산들이 상부의 지령으로 다시 지리산으로 내려온 정황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게 기술되어 있지 않다. 북한 입장에서 본다면 지리산에 국군이 투입되어 있는 동안 다른 전선에서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지만, 당시 이현상이 다시 지리산행을 택했던 것을 두고 결국 동료들을 다 죽게 만든 무책임한 처사라는 비판도 있다(이병주의 소설 지리산). 지리산은 사방으로부터 고립되어 있고 어디서든 몇 시간이면 닿는다는 점에서 빨치산들이 몇 년이나 그곳에 버틴 것 자체가 기적이다. 그런 고립된 지형에서 게릴라전을 폈다는 것은 결국 북한이 전쟁에서 승리하지 않는 한 토벌대에 의한 죽음이 예고되어 있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이현상의 남하는 남부군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패착이라는 것이다. 그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하는 이유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지리산에서 벌어진 남과 북의 대결 이후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 우리는 이들 빨치산의 투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 신념 하나를 붙잡고 끈질기게 버티다 죽어간 이들, 대한민국으로 귀순한 이들, 끝까지 전향을 거부하다가 최근에 비전향 장기수로 북으로 송환된 이들. 우리가 왜 그러해야 했던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념 갈등이 모습만 달리했을 뿐 아직 반복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이 지루한 역사의 반복을 멈추고 갈등을 치유하고 새로운 정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사적 평가를 내릴 시점이 된 것도 같다. 국가란 무엇이며, 그동안 국가가 자행한 폭력이 무엇이며, 그 속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이들의 내적 고민을 이해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해방과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고, 이 민족이 나아갈 방향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사에 대한 그러한 철저한 고민과 방향의 모색 없는 민족의 통일은 또다른 비극을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 이것이 이 책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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