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중독'이라는 시대적 조류의 이면에 놓인 한국 사회의 욕망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책.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삶의 스킬마저도 학원이나 프로그램화된 교육과 각종 강좌에 의지하며, 시험 준비라는 '공부중'이라는 타이틀로 직접 삶에 뛰어들 기회를 유예하는 '한국적 현상'의 원인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결과들을 다각도에서 다루고 있다. 우리 시대에 대한 훌륭한 보고서라 할 만하다.
책장마다 새겨볼 만한 대목이 많지만, 이 부분이 특히 눈에 띄었다. 일본이나 서구 사회 등 선진국은 정치적, 경제적 자유주의가 심화되면서 라이프스타일을 굉장히 많이 조정했다는 것. 그런데 우리 사회는 IMF 이후 커다란 사회경제적 변화를 겪었지만 문화적 다원주의를 통해 숨구멍을 틔워주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엄청 시키는 등 표준화된 시나리오를 더욱 강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이것이 삶을 더욱 견디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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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맥락에서 보면 삶이라는 것이 굉장히 허약해지고 빈약해지고 있는 것이죠. 공부는 삶의 보조이고, 살아가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인데, 지금은 거의 공부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되었어요. 삶의 영역에서는 배움이 일어나지 않고 있고 배움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을 배움으로 인지하지 못하게 되고, 배움이 일어나더라도 계속 불안해지게 되는 거예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학원 가서 깔끔하고 매끄럽게 배우는 게 속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되는 것 같아요. 공부 중독인데 공부가 없어요. 그리고 결국 삶이 사라지고 있는 거죠.
공부라는 것이 삶에 통합되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근대 학교가 공부와 삶을 단계론적으로 분리시켜버렸어요. '공부를 하고 난 뒤에야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까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사는 것이 아닌 게 된 거죠. 삶이 유예되는 거예요. 지금 학교가 딱 그런 공간이잖아요?
학교에서 우리는 친구랑 만나서 싸우기도 하고, 정치도 하고, 비열한 짓도 하고 그러면서 '아, 이러면 안 되겠구나' 깨닫기도 하고 그래야 해요. 학교가 총체적인 삶의 공간이 되어야 하죠. 그런데 학교를 삶의 공간으로 인지하지 않고, '학교는 공부를 하는곳이다'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래도 학교가 공부를 하는 곳이라고 생각되어온 것은 공부를 하면 삶이 주어진다는 전제 때문이죠. 그 말은 '취직이 된다', '돈벌이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저제 하에서만 공부의 단계론이 성립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전제가 무너지고 있잖아요. 공부를 한다고 해서 삶이 주어지는가?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학교를 다르게 인지해야 하잖아요? 삶과 공부를 단계론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 그러니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자 그래야 하는데 그 방법을 못 찾다 보니까 오히려 그렇다면 '모든 것을 공부하자' 이런 형태로 나아가버리는 거죠.
성찰과 전환과 혁신의 결정적인 국면에서 굉장히 반동적 퇴행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더 이상 공부한다고 해서 삶이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면 이 단계론을 깨고 어떻게 삶과 공부를 통합할 것인가로 나아가야 하는데, 다 준비가 안 되었으니까 연애를 비롯해서 모든 것을 공부하면서 삶을 유예하는 것, 삶으로부터 도망가게 되는 것이죠. p127-128
전기 자본주의에서 후기 자본주의로 넘어가면 더 이상 구조를 조정해서 내 삶을 보호하려는 생각을 버리게 돼요. 구조가 쉽게 안 바뀔 것 같으니까요. 그래서 서구 같은 경우에는 앞서 말했듯이 라이프스타일을 조정하죠. 자신의 경제적 수준과 사회적 자원에 맞는 형태로 라이프스타일을 바꿔요. 혼자 산다든가,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를 한다든가, 섹스파트너만 둔다든가, 아이를 낳지 않는다든가, 공동가족을 만든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이렇게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출현하려면 하나가 없어져야 해요. 바로 사회적 압력이죠. 표준화된 삶의 시나리오에 대한 압력이 사라져야 해요. 서구 사회나 일본 사회만 하더라도 표준화된 삶의 시나리오라는 것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요. 왜냐하면 통치권력의 입장에서도 도움이 안 돼요. 그래서 미디어를 통해서 표준화된 삶의 시나리오에 대한 압력을 해체하는데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죠. 그 결과로 현대사회의 여러 '-족'들이 나타나게 되는 거고. 그래야 사람들이 삶을 견딜 수 있게 되니까요. 그런데 한국은 딱 그 시점에서 사회적 압력이 더 강력한 형태로 등장해요. 그 사회적 압력의 핵심이 부모거든요. p130
삶의 문제를 풀기 위해 공부를 하는데 공부와 삶을 분리시키고 공부에 올인하다보니 삶이 더욱 더 빈약하고 허약해지고 있다는 것. 그 빈약함과 허약함을 채우기 위해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을 또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만들면서 삶은 공부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고요.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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