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못난 조상이 또다시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이 수기 속에서 중언부언했다. 왜냐하면 내가 광막한 중원 대륙 수수밭 속에 누워 침 없이 마른입으로 몇 번이나 되씹었고 또 눈 덩어리를 베개로 하고 동사의 기로에서 밤을 지새우며 한없이 울부짖었던 이 말이 곧 나라를 빼앗긴 우리의 못난 조상에 대한 한스러움과 다시는 후손에게 욕된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우리의 단호한 결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복 조국의 하늘 밑에는 적반하장의 세상이 왔다. 펼쳐진 현대사는 독립을 위해 이름 없이 피 뿜고 쓰러진 주검 위에서 칼을 든 자들을 군림시켰다. 내가 보고 들은 그 수없는 주검들이 서러워질 뿐, 여기 그 불쌍한 선열들 앞에 이 증언을 바람의 묘비로 띄우고자 한다. p6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가슴 시린 안타까운 역사의 한 부분에 대한 기록이지만, 이처럼 절절하고 뜨겁고 아름답고 진실한 한국말 문장으로 된 책을 오랜만에 보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원에서 삼십대의 십 년을 번역된 책들에만 둘러싸여 보냈다가 이처럼 입에 착착 감기는 한국말 문장을 접하고보니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가는 것이 정말 맛이 있었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고 내용을 전달하는 그릇이 아니다. 언어에는 그 사람의 피와 땀과 살과 혼이 배어 있다. 아니, 그런 글이 진짜 글이다. 1944년에서 46년까지 당시 이십대 초반이었던 장준하 선생이 일본군 부대를 탈출해 충칭의 임시정부까지 6천리 길을 걸어간 대장정의 기록을 읽으며, 진짜 글을 읽는 기쁨을 맛보았다. 주위 풍경에 대한 묘사는 물론이고, 숱한 고비마다 느꼈던 선생의 심정이 매우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상황마다 공감하면서 읽었다. 필력도 대단했지만 장준하 선생이 느낀 감정의 깊이와 뜨거움이 이 글의 깊이를 만들어낸 것 같다. 해방 직후에서 수기가 툭 끝나 더 읽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교과서에 실릴 만한 글이고, 한 부분을 발췌해서 실어도 좋을 만한 대목이 무척 많건만 왜 이런 글이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십대의 장준하 선생은 민족주의자이면서도 철저한 반공주의자였기에(1970년대에 이르면 선생은 반공주의자에서 통일주의자로 변모한다), 이념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데 국문학에서 선생의 글은 삭제된 느낌이다. 피천득 등의 수필보다야 천배 만배 나은 글이다.
에세이는 사실 문학의 본류이다. 국어교육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야 할 장르가 에세이이다. 한 사람의 삶을 관통해서 다가갈 수 있는 쉬운 장르이기 때문이다. 글 읽기는 작가와의 만남이다. 그가 자기 시대를 이해하고 소화한 방식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우리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귀결된다. 시와 소설도 좋지만 에세이가 좀 더 직접적이다. 또한 루소나 사르트르 등 모든 철학자의 글도 에세이이다. 그런데 한국의 국어교육에서는 가장 중요한 장르인 이 에세이를 내팽겨치고, 에세이라고 하면 신변잡기류의 가벼운 글만 싣고, 다른 엉뚱한 활동에 시간을 소진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민주국가라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면, 당연히 공교육은 구한말에서 해방정국에 이르기까지, 잃어버린 민족을 되찾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고민한 분들의 글이 교과서에 필독 작품으로 실어야 하지 않을까. 신채호, 박은식, 안중근, 안창호, 장준하, 김구, 이런 분들의 글은 단지 역사학의 연구 대상이 아니라 국문학에서 비중 있게 검토해야 할 글이라고 생각한다. 전태일의 글도 실려야 하고.
# 다만 김원봉에 대한 당시 이십대였던 장준하 선생의 평가는 너무 야박한 감이 있어 동의하기 어렵다. 장준하 일행과 일본군에 포로로 잡힌 자신의 부하들을 맞교환하자는 일본군의 제의, 정말 거절하기 어려운 제의를 한번에 거절함으로써 장준하 일행의 목숨을 구했던 중국군 장교가 공산당군에 의해 무참히 제거되었으니 장준하 선생의 공산주의자에 대한 반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물론 김원봉은 이념적 공산주의자라기보다는 민족주의자적 색채가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댓글